“호조(戶曹)와 사헌부(司憲府)·한성부(漢城府)에 명을 내리기를, ‘지금 큰 가뭄에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는데, 듣자니 여염(閭閻)의 우물을 간혹 차지하여 제 것을 삼고, 남이 물을 긷는 것을 금하며, 심한 자는 값을 받고 물을 팔아 장사를 하여, 사람들이 심히 괴롭게 여긴다고 하니, 그것을 엄히 금하도록 하라.’ 하였다.”
위 글은 성종 17권, 3년(1472년) 4월 27일 자 기록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가물면 인심도 흉흉하여 봉이 김선달처럼 우물물을 팔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왕조실록에는 우물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우물에 황룡(黃龍)이 나타났다고도 하고, 금이 나오는 우물이 있다고 헛소문을 퍼트렸다가 벌 받은 중도 있었다고 전하지요.
그런가 하면 이수광이 쓴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면 1591년 평양감사 권징이 몇 길이나 땅을 팠지만 물이 나오지 않고 큰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뚫자 물이 나왔는데 그 물에서 붕어와 연밥이 나왔다고 합니다. 또 평양은 땅 모양이 배처럼 생겨 우물을 파지 말라고 한 그 말을 어겼기 때문에 그 이듬해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모두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우물 하나 파는 일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