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족(遠足 ) 가는 날 -
나무는 잘라도 나무로 있고물은 잘라도 잘리지 않습니다.
산은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고물은 거슬러 오르지 않습니다.
(중략)
인생은 하나밖에 없습니다.시간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6월20일은 원족(遠足)가는날
벌써부터 동심으로 돌아가
설레인 마음만 가득히......... -다음 누리집-
올해 2010년 6월 1일자로 올라 있는 한 누리집 ‘원족’안내 글이다. 불과 5개월 전 이야기인데 아직도 ‘원족’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본말‘ 엔소쿠(원족)’를 그대로 따다 쓰는 말이다. 일본국어대사전<大辞泉>에 보면, ‘えん‐そく【遠足】:1 学校で、運動や見学を目的として、教師の引率で行う日帰りの小旅行。2 遠い所まで出かけること。’로 되어 있는데 번역은 우리국어대사전이 80%를 베꼈으니 이를 참조하자. 우리말사전에는 ‘소풍=원족’이라 해두었는데 소풍을 찾아보니 “소풍(逍風/消風):「1」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 ≒원족01「1」.「2」『교육』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일.‘로 되어 있다.
지금 50대 정도 되는 사람은 어렸을 때 ‘소풍’이라 하지 않고 ‘원족’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나 역시도 ‘원족’을 다녔는데 그땐 발음을 ‘원적’이라고 했다. 나중에 커서 일본어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것이 일본말 ‘엔소쿠(えんそく, 遠足)에서 온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원적(족) 가는 날은 김밥과 삶은 달걀을 먹을 수 있는 날이라 그 설레던 마음을 지금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길거리에 김밥집이 즐비하지만 그때는 김도 귀한 시절이라 ‘원족’ 가는 날이 아니면 ‘김밥’ 구경은 턱도 없다. 원족날 아침 어머니는 다꾸앙(단무지)을 굵게 썰어 넣고 당근과 시금치 이 세 가지로만 김밥을 말아 주셨다. 더러 부잣집 애들은 지금 생각하면 색소를 듬뿍 넣은 새빨간 소시지를 넣어 김밥을 만들어 온 애들도 있는데 그 빛깔이 밥에 새빨갛게 묻어 있었음에도 그것을 한입 얻어먹으려고 앞 다투던 기억이 빨간 소시지처럼 선명하다. 샛노란 다꾸앙의 물이 밥에 물든 것은 또 어떠하고... 그땐 식용색소를 무제한 써도 언론에서 떠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돌아보면 장사꾼들 돈 벌기 좋은 시절이었다.
재미나다고 해야할까? 이상하다고 해야할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소풍 = 원족’ 이라고 해놓고 같은 기관인 국립국어원 순화어방에는 ‘원족’을 일본어투 생활용어라고 규정하면서 ‘순화한 용어만 사용하라’고 못 박고 있다. 이 무슨 국어정책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소풍’이란 말도 요새는 듣기 어렵고 ‘현장학습’ 같은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