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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일본열도를 뒤덮는 '히나인형'의 의미















 





 

일본열도를 뒤덮는 “히나인형”의 의미




슬슬 한 쌍의 인형이 일본열도를 뒤덮을 시간이다. 그 한 쌍의 이름을 히나인형(ひな人形)이라 부른다. 히나인형은 남자와 여자 형상을 한 부부금실이 좋은 원앙처럼 꼭 쌍으로 만드는데 그 재료는 실로 다양하다. 도자기의 고장인 아리타(有田)나 이마리(伊万里)같은 곳에서는 도자기로 만들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은 현대식으로 응용해서 창작 히나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비단옷을 겹겹이 입혀 헤이안시대의 화려한 왕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규모도 왕과 왕비를 나타내는 달랑 한 쌍의 인형을 만드는가 하면 층층시하 상궁과 하녀, 악사와 잘 차린 음식까지 표현한 히나인형도 있다. 인형을 즐기는 층도 다양해서 개인이 사다가 집에다 모셔 놓기도 하지만 호텔로비나 기념관 등에 대규모 히나인형을 전시하는 곳도 있다. 아예 웬만한 도시에서는 히나인형을 전시하는 기간을 한 달씩 잡고 전국 구경꾼들의 발걸음을 끄는데 이름하여 히나마츠리(雛祭り)다.

이날을 위해 수백 년 가업으로 히나인형을 만들고 만든 인형을 전시하여 마을을 관광도시로 만든다. 히나인형을 새겨 넣은 과자며 액세서리 소품을 만들고 앞다투어 히나인형을 활용한 이벤트를 여는 등 일본의 3월은 히나인형이 먹여 살려준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히나마츠리는 언제부터 유래했을까?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대개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92) 교토에서 헤이안 귀족 자녀가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모셔두고 감상하는 게 아니라 여자애들이 가지고 놀았으며 어머니들은 냇가에서 종이 인형을 만들어 떠내려 보내면서 장차 딸에게 몰아닥칠 나쁜 악귀나 액(厄)을 막아달라고 빌었다. 이름하여 액막이 인형구실을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에도시대(江戶時代,1603-1868) 초기에는 겐로쿠인형(元祿雛)이라 해서 비단옷을 12겹씩 입히거나 쿄호인형(享保雛)처럼 대형인형이 등장하는데 점차 이들 인형에 금박을 입히는 등 호화롭게 변질하여가자 막부는 소비를 조장한다 해서 일시적으로 대형인형을 금지하기도 했다.

히나인형은 보통 집안에 손녀가 태어나면 외할머니나 친할머니가 선물한다. 이는 장차 손녀에게 닥칠 나쁜 액운을 막고 쑥쑥 잘 자라기를 바라는 뜻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딸이 있는 집이면 어느 가정이나 히나인형을 장식해둔다. 히나인형을 장식하는 히나마츠리는 명치시대(1868-1912)부터 양력 3월 3일을 히나마츠리날로 지내지만 동북(東北)지방처럼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곳에서는 아직도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원래 히나마츠리를 “모모노셋쿠(桃の節句)”라고 불렀는데 이는 “복숭아꽃이 필 무렵의 잔치”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보통 히나인형은 3월3일 이전에 장식해 두었다가 3월3일을 넘기지 않고 치운 뒤 다시 이듬해 꺼내서 장식하는 인형으로 도쿄처럼 집안이 좁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인형도 작은 것을 사지만 지방도시와 같이 넉넉한 공간을 가진 집에서는 5단짜리 히나인형 세트를 장식하므로 해마다 2월이면 상자에 담아두었던 히나인형을 장식하느라 분주하다. 그것은 마치 크리스마스날 트리장식을 해두었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다시 잘 거둔 뒤 이듬해 다시 장식하는 것과 같다. 다만, 히나인형은 3월3일을 넘기기 전에 거두지 않으면 딸의 혼사가 늦어진다는 믿음이 있어 가정집에서는 서둘러 3월 3일 이전에 히나인형을 갈무리해둔다.

히나인형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도쿄 인근의 사이타마현(埼玉縣)이고 판매지로 유명한 곳은 도쿄의 아사쿠사바시(淺草橋)이다. 그러나 오래된 가업으로 히나인형을 만드는 곳은 교토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 장인들이 포진하고 있어 인형이 누대의 가업으로 전승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에서는 해마다 히나인형전을 여는데 사가현의 히나인형 전시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가의 봄은 히나마츠리(佐賀の春はひなまつり)라는 주제로 올해도 어김없이 사가(佐賀), 이마리伊万里), 가라츠唐津), 아리타(有田) 4곳에서 다양한 히나인형을 선보이는데 사가현은 2~3월 한 달간 전국에서 히나인형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이쪽으로 여행을 갈 분들은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사가현의 히나마츠리 기간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고대에는 이렇게 사람에게 닥칠 나쁜 액을 인형이 대신 막아준다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에도 제용·처용이라고 해서 일찍이 《삼국유사》의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붉은 탈을 귀신 쫓아내는 구역신(驅疫神)으로 믿었으며 이것은 다시 민간신앙으로 확산하였다. 《동국세시기》정월 상원조에 “남녀의 나이가 나후직성(제웅직성)에 들면 짚으로 제웅을 만들어 머릿속에다 동전을 집어넣고 정월대보름 전날 초저녁에 길에 버려 액을 막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충청북도 음성군의 풍속에 제웅버리기, 제웅치기, 허재비버리기 같은 풍속으로 남아있다. 제웅은 짚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허수아비로, 제용 또는 한자어로 추령(芻靈)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이런 인형들이 인간의 나쁜 액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풍속의 하나였던 히나인형을 버리지 않고 전통행사로 승화시켜 잔치(축제, 마츠리)로 이어 가고 있다.


 
 
* 사가현의 히나마츠리 참고

① 사가죠카히나마츠리(佐賀城下ひなまつり) : 2012·2·18~3·31  
                                            사가시 역사민속관 외
② 지키히나마츠리(磁器ひいなまつり) : 2012·2·18~3·11
                                            이마리나베시마도자기회관 외
③ 가라츠히이나아소비(唐津のひいな遊び): 2012·2·25~3·11  
                                           가라츠 고대모리회관 외
④ 아리타히이나야키모노마츠리(有田雛のやきものまつり)2012·2·11~3·20
                                           아리타회관 외

* 일본어 히나(ひな)는 히이나(ひいな)로 부르기도 한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