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구로다 망언 부추기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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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오뎅’을 어묵으로 부르는 것이 어찌 ‘언어 내셔날리즘’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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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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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츠히로(黑田勝弘, 71) 씨의 조선닷컴 글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붓을 들었다. 조선닷컴(인터넷판 조선일보)에 소개된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는 “한국의 애국자들은 오뎅이라는 일본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뎅을 어묵꼬치로 바꿔 부르고, 일부 포장마차에서도 메뉴판에 그렇게 쓰고 있다.”며 상대가 일본이 되면 한국은 언어 내셔널리즘으로 고생한다고 했다.
이어 “와사비는 고추냉이로, 낫토는 생청국장이라고 바꿔 말해야 한다며 일본어를 거부하는데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까다로운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먹을거리에까지 일본을 트집 잡는 사람은 이제 옛날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담긴 글을 인용하여 “조선닷컴 토론장 2012-02-17”에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러한 구로다 씨의 말은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말이라고 제쳐 놓겠지만 그가 주장하는 ‘언어 내셔널리즘’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구로다 씨의 한국인 추종자들을 위해 두 가지만 짚어주고 싶다.
그 하나는 구로다 씨 주장의 논리가 억지라는 것이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일본인들도 한국 음식을 원어 그대로 부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먹거리인 불고기(bulgogi,ブルゴギ)의 경우 일본에서 불고기라고 부르기보다는 야키니쿠(焼き肉, yakiniku)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보라! 동경의 야키니쿠집의 번성을 말이다. 나는 동경에서 불고기집이라는 간판을 본 적이 없다.
▲ 조선닷컴에 실린 "산케이 서울지국장, "오뎅을 한국말 어묵으로 부르는 건 구태"라는 제복의 기사 © 김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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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처럼 불고기라 부르지 않고 야키니쿠라 부르는가? 그것은 한국이 싫어서 불고기란 말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야키니쿠라 불러야 얼른 불고기라는 음식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일본말로 야키(焼き)는 ‘굽다’이고 고기는 ‘니쿠(肉)’이다. 따라서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야키니쿠 하면 입에서 침이 돌지만 일흔 살 노인이라도 불고기 하면 침이 돌기는커녕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기인지 푸성귀인지 알 수 없는 요리로 전락하고 만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인은 오뎅이라고 하는 것보다 ‘어묵’으로 부를 때 아! 생선살을 이용한 음식이란 이미지가 얼른 전해지기 때문에 어묵으로 부르는 것이다. 구로다 씨는 오뎅을 포장마차에서 ‘어묵꼬치’라고 부른다고 조롱하지만 한국인들은 어묵꼬치라고 하면 뜻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에 이 말을 쓰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산 참기름에 구운 야들야들한 김을 좋아한다. 공항에 가면 선물용으로 단연 인기품목인 한국 김을 일본인들은 왜 '김(gim)'이라하지 않고 ‘칸코쿠노 노리(韓国の海苔, kankokunonori)’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일본인들이 ‘김’보다는 ‘노리’라고 말해야 그 의미가 얼른 전달되기 때문이지 한국인이 미워서 ‘노리’를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한류 붐이 일어 일본인의 한국여행이 흔한 요즈음은 비빔밥을 한국발음으로 비빈바(ビビンバ、bibinba, 일본인들은 비빔밥 발음을 못함)라고 하지만 필자가 30년 전 일본에 있을 때 한국 비빔밥은 반드시 마제고항(混ぜご飯, mazegohan)이라고 해야 알아들었다. 물론 지금도 비빈바(비빔밥) 보다는 ‘마제고항’이라고 해야 얼른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
요약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남의 나라 말을 자신의 언어로 고쳐 부르는 것은 이해하기 쉽고 편한 까닭이 그 첫 번째이지 민족감정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물론 한일간의 쓰라린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언어인식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구로다 씨가 그것을 비아냥거릴 자격은 없다. ‘불고기=야키니쿠’는 언어와 민족감정이 별개라는 것을 잘 말해주는 낱말이다.
그럼에도, 구로다 씨가 이러한 이치에 눈감고 일본이 미워서 ‘한국의 애국자’ 들은 ‘옛날 사람’처럼 ‘언어 내셔널리즘’에 빠져 고생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면 한국인들은 구로다 씨야말로 지독한 언어 내셔널리즘에 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원어(原語)를 자기식으로 부르는 게 언어 내셔널리즘이라고 한다면 일본처럼 지독한 언어 내셔널리즘에 빠진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일본에는 와세이에이고(和製英語,わせいえいご)라는 것이 있는데 일본에서 만든 영어풍(英語風) 일본어가 그것이다.
사이도브레이키(サイドブレーキ, 영어는 hand brake), 담프카(ダンプカー 영어는 dump truck), 베비카(ベビーカー, 영어는 baby carriage), 호치키스 (ホチキス, 영어는 stapler)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어가 일본에 들어가면 변형되어 버린다. 왜 일본인들은 원어 발음을 충실히 하지 않고 재조합해서 쓰는 것일까?
구로다 씨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인이 싫기 때문’이어야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억지다. 중국인들이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고 하는 것도 언어 내셔널리즘이라 할 텐가? 원어대로 발음해주지 않는 것은 언어인식의 편리성대로 고쳐 쓰는 것일 뿐 이를 내셔널리즘과 결부시키는 것은 철학 부재에서 나온 무지이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악취미다.
외국에 가서 살다 보면 그 나라의 장단점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한국에 와서 산다고 한국인에게 좋은 말만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나라 말을 갈고 닦으면서 외래어보다는 자신의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살려 쓰려는 한국인의 노력을 헐뜯고 “이상한 한국인” 취급하는 것은 특파원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비단 언어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도 국어인 일본어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호시나 코이치(保科孝一, 1872~1955) 씨는 국어학자로 문부성에서 50년간 국어정책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그는 <국어학 제1집(國語學第1輯: 9-13, 1948)>에서 국어(일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프랑스 국민은 모국어에 대한 존중심이 대단하다. 독일에서도 국어사랑 정신을 소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치며 영국에서는 언어사용에 대한 사회적 제재가 엄중하다. (중략) 일본이야말로 국어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아무런 통제 없이 둔다면 국어의 체재가 황폐화되어 갈 것이다. 특히 한어계(漢語系)의 말과 외래어가 남용되어 국어의 순수성을 해치고 있다. 독일에서도 16세기 이래 외래어가 유입되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국민이 반성하여 국어순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 일본도 민주일본 건설을 계기로 국어순화운동을 크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호시나 씨의 이러한 ‘국어통제 강화’ 의지는 현재 일본국립국어연구소에서 그대로 이어받아 해마다 쏟아져 들어온 외래어(동서양어)를 일본식으로 고쳐 신문지상에 발표하고 있는 것을 구로다 씨는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말을 갈고 닦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칭찬하고 본받을 일이지 흉보거나 조롱하면서 한국인이 ‘오뎅’을 ‘어묵’이라 고쳐 부른다고 투정을 부릴 일이 아니다.
국제화 시대에 음식용어가 되었든 의학용어나 사회용어든 간에 동서양의 교류가 빈번한 시대를 사는 세상이다. 그럴수록 자국의 언어의식이 강한 나라는 원어를 그대로 받아쓰지 않고 자국 나름대로 알기쉬운 말로 고쳐 쓰는 것은 상식이다. 앞으로 일본말을 그대로 발음하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구로다 지국장의 어처구니없는 생떼를 두 번 다시 듣지 않았으면 한다. 산케이신문의 얼굴을 봐서라도 말이다.
구로다 씨야 한국 헐뜯기가 취미인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조선닷컴의 ‘구로다 씨 발언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라는 누리꾼 대상 질문은 대관절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오뎅을 어묵으로, 노견을 갓길로, 추월을 앞지르기로 바꾸려는 한국인의 노력을 까뭉개는 구로다 씨 편에 서서 마치 이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 조선닷컴은 철없는 찬반토론을 벌이고 있다.
▲ 조선닷컴에서는 "일본어로 된 음식을 굳이 한국말로 바꿔 부르는 것은 구태?"라는 제목으로 찬반톨혼을 벌이고 있다. © 김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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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한심한 것은 조선닷컴의 이러한 행태를 나무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닷컴은 이런 조잡한 토론으로 누리꾼의 시간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언어철학을 가진 글을 자주 실어 누리꾼들의 정립되지 않은 국어사랑 정신을 깨우치는 작업에 앞장설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 기사입력: 2012/03/07 [23:37] 최종편집: ⓒ 대자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