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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268. 잠자는 조선여자 깨워 횃불 들게 한 ‘김마리아’

   

“흰 저고리 고름 날리며 / 일본 칸다구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칼 찬 순사 두려워 않고 / 2·8 독립의 횃불을 높이든 임이시여!
그 불씨 가슴에 고이 품고 / 현해탄 건너 경성 하늘 아래
모닥불 지피듯 독립의지 불붙이며 / 잠자는 조선여자 흔들어 깨워
스스로 불태우는 장작이 되게 하신 이여!“

위는 이윤옥 시인의 <잠자는 조선여자 깨워 횃불 들게 한 ‘김마리아’> 시의 일부입니다. 오늘은 김마리아(金瑪利亞, 1892.6.18-1944.3.13) 애국지사가 고문후유증으로 눈을 감은 날입니다. 김마리아가 세 살 먹던 해에 34살이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과부가 된 어머니는 99칸 종갓집 맏며느리 자리를 뒤로하고 세 딸의 교육을 위해 학교시설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는 열성을 보인 덕으로 1910년에는 광주 수피아여학교에서 교사를 시작으로 1913년엔 모교 정신여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 뒤 김마리아 애국지사는 동경유학 길에 오르지만 1919년 2·8독립운동에 가담하는 것을 계기로 유학을 포기하고 〈독립선언서〉10여 장을 베껴 변장한 일본 옷띠인 오비 속에 숨기고 차경신 등과 2월 15일에 부산항에 들어옵니다. 3·1만세 운동의 도화선은 바로 동경유학생을 주축으로 한 이들이 목숨 걸고 삼엄한 왜경의 눈을 피해 국내에 소식을 전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이 일로 왜경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무리 나를 고문한다 해도 내 속에 품은 내 민족, 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너희가 빼내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당당히 맞섰는데 이때 머리를 심하게 내리친 고문 탓으로 코와 귀에 고름이 생기는 병에 걸렸고 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을 평생 달고 살아야 했지요.

이후 김 애국지사는 미국의 파크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황애시덕·박인덕 등과 함께 근화회(槿花會: 재미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재미한국인의 애국정신 진작과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서방국가에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섰으며 귀국해서도 교육에 헌신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조국의 독립을 눈앞에 둔 1944년 3월 13일 오늘 52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3월 하면 설레이는 봄 이야기가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리 겨레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김마리아 애국지사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분들의 이야기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