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응일(安應一)은 문성공(文成公)의 11대손으로 어버이를 섬기면서 효성을 다하여, 밤낮으로 곁에 모시면서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부모가 잠든 뒤에 곁에 누웠다. 낚시와 사냥으로 맛있는 반찬을 올리고, 옷과 이불이 더러워지면 손수 세탁하였으며, 어버이가 병들자 변(便)을 맛보아 증세를 징험했다. 상을 당하여서는 몹시 늙고 쇠약한 몸으로 집상(執喪, 상제 노릇 하는 일)에 예를 다하여 질대(帶, 상복의 띠)를 벗지 않았고, 채소와 과일을 입에 대지 않아 몸이 몹시 여위어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위 이야기는 안향의 19대 손인 안정구(安廷球 1803~1863)가 쓴《재향지(梓鄕誌》에 나오는 효자 이야기입니다. 또 여기에는 전주사람 이약림(李若霖)이 40년을 한결같이 어버이를 봉양하며 곁에서 조금도 곤궁한 모습이나 근심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진주사람 강흡(姜恰)은 항상 몸으로 어버이의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하였고, 저녁마다 손수 땔감의 무게를 달아 알맞게 덥혀드렸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화천사람 권윤석(權胤錫)은 어머니 안씨(安氏)가 백 살을 살았는데 끼니마다 반드시 수저를 대신 잡아 드렸고, 오물을 손수 치우고 이불을 손수 빨래했으며 상을 당해서는 일흔 살의 나이로 예를 다하여 상제 노릇을 하느라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이었다고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옅어져 가는 효(孝) 사상을 다시 새겨보는 것도 좋을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