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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6. 마치 스승이 곁에 앉아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 같은 합자보

 
 
 


지난주 속풀이 <55>에서는 우리음악을 기록해 온 방법으로 율자보를 소개하였다. 대개 각 음의 길이가 일정하거나 또는 빠르기가 일정한 음악에 쓰이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성균관 안에 있는 공자의 사당, 문묘에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율자보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또한, 율명을 쓰고 읽는 것이 어려워 10개의 아주 쉽고 간단한 글자로 줄여 써 왔던 기보방법도 있고,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내 적어 놓은 구음(口音)의 육보도 소개하였다.

<덩, 둥, 당>으로 표현되는 현악기 육보가 있고 < 나, 리, 로 > 등의 관악기 육보가 오래전부터 쓰여 왔다. 이러한 육보에는 한글로 된 것과 한자로 된 것이 있으며 현재까지 많은 거문고의 악보가 육보로 전해온다는 점, 우리음악의 역사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이 육보의 해독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에는 합자보를 소개한다. 합자보란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기보법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음 이름은 표시하지 않고 줄을 어느 손가락으로 집는가 하는 표시와 줄의 이름, 탄법(彈法, 타는 법) 등을 약자로 만들어 이들을 합해 놓은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문고라는 악기는 고구려 시대부터 연주되어 오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여섯 줄로 되어 있다. 6현 중에서 제1현ㆍ제5현ㆍ제6현은 마치 가야금처럼 안족(雁足, 기러기 발처럼 생김)위에 버티어 세웠고, 나머지 제2현ㆍ3현ㆍ4현은 16개의 괘(줄받침) 위에 얹혀져 있다. 그리고 연필 크기의 대나무로 줄을 내리치거나 위로 치떠서 소리를 낸다. 거문고의 줄을 치는 도구를 ‘술대’라고 부른다. 셋째 줄의 이름이 대현(大絃)인데, 악보에 大五가 나온다면 셋째 줄 제5괘를 짚고 치는 것이다.

그 기보법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은 단점이나, 줄 이름이나 손가락 짚는 법 등을 알 수 있기에 어디에 있어도 선생 없이 악보를 보며 거문고를 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조선조 선조 때 『금합자보』를 펴낸 안상은 그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글자를 모으는 규칙을 모른다면 마치 담벼락을 보는 것과 같다. 벽지에서 거문고를 배우고 싶어도 선생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금보를 보면 마치 스승이 곁에 앉아서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 같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합자보는 혼자서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독창적인 기보법이 아닐 수 없다.

조선조 세조시대에 창안한 기보방법으로 오음악보라는 것도 있다. 이 기보법은 다섯 음으로 줄여 쓴다는 의미이다. 이것도 역시 12율명을 쓰지 않고 그 음계의 중심되는 음을 궁(宮)으로 정한 다음, 한 음 위는 上一, 두음 위는 上二, 세음 위는 上三으로 적고, 반대로 한음 아래 는 下一, 두음 아래는 下二, 세음 아래는 下三 등으로 적는 방법이다. 이 악보의 장점은 문자를 암기하지 않아도 한눈에 음의 높고 낮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점이지만, 5음을 표기하기는 좋으나 6, 7음 음계는 부적당하다는 점이다.

연음표라는 것도 있다. 가락이나 창법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 기호를 만들어 사용해 온 연음표도 일종의 기보방법인 것이다. 주로 노래의 사설 옆에 여러 종류의 부호를 표시해 놓고 음의 높이나 표현을 기억할 수 있게 한 일종의 부호보인 것이다. 1800년대 중반에 제작된 유명한 가집,≪가곡원류(歌曲源流)≫에는 여러 종의 부호가 그려져 있어서 당시의 가객들이 이러한 연음표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기보방법은 부호 자체가 음높이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의 음높이는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노래의 높낮이나 음의 장단 이외에 표현하는 방법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서는, 곧 소리를 떨거나 흘리거나 미는 등 여러가지 표현법을 살리려면 다양한 부호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이 기보 방법은 노래를 배운 사람이 아니면 그 부호를 해독하기 어려운 단점도 안고 있다.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구전심수로 전해오던 전통성악 대부분도 기억을 돕기 위해 여러가지 기호를 만들어 썼던 것이다. 대중가요가 유행하기 시작하던 1950년대 이후 녹음기가 없던 시대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가사를 받아 적고 그 옆에 자기만이 알 수 있도록 각종 부호를 붙여 기억하던 방법도 일종의 연음표라 할 수 있겠다. 이 연음표는 서양 5선보의 모체인 네우마와 비슷한 것으로서, 주로 가객들 사이에 많이 쓰여 오던 기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