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한낮 기온이 28도까지 올라 무더운 날씨에 우리는 생존해 계신 오희옥 애국지사 집안 3대 독립운동가 산실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이날 답사는 오희옥 애국지사와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펴낸 이윤옥 시인 그리고 민족정신을 구현하는 수원일보 이화련 선임기자가 함께했지요. 오희옥(吳姬玉, 1926. 5. 7~ ) 애국지사는 경기도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오광선(吳光鮮)의 둘째 따님으로 87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과 화산면 일대는 오희옥 애국지사의 외가와 친가가 있는 곳으로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부터 3대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기리는 <의병장 해주 오공인수 3대 독립항쟁 기적비>가 세워져 있어 오씨 문중의 쟁쟁한 독립운동의 함성을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죽능면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1867-1935)은 용인·안성·여주 일대에서는 그의 솜씨를 따를 자가 없을 만큼 명포수로 이름을 날렸지요.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자 의병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일진회 송종헌의 밀고로 8년형의 징역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한 뒤 1920년 겨울 만주 통화현 합리화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던 아들 오광선을 찾아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했습니다.
아버지 오광선 장군 (1896-1967)은 이청천(李靑天) 장군과 함께 만주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제1대대 중대장으로 활약하는 한편,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광복군을 양성하면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의 중대장으로 맹활약을 하였지요. 또한, 어머니 정현숙 (일명, 정정산, 1900-1992) 역시 중국땅에서 독립군의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임무를 수행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당원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언니 오희영 (吳熙英, 1924-1969)과 형부 신송식은 민족혁명당원으로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처 제1과에 소속되어 광복군 참령(參領)으로 복무한 애국지사이지요. 따라서 오씨 일가 3대의 독립운동은 길이 기려야 할 위대한 업적입니다.
그런데 이 독립운동의 산실은 이제 안타까움을 줄 뿐이었습니다. 먼저 화산면 요산골에 있는 오희옥 여사의 친정어머니 정현숙 애국지사의 생가는 다 쓰러져가고 있었고 원산면 느리재 죽능골에 있던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의 생가는 헐려 버린 채 지금은 외지인의 전원주택 주차장으로 쓰는 모습을 보니 그 처연함이 이루 말할 데 없었습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도 지자체의 돈으로 생가를 복원하여 화려한 팻말을 세워두는 판에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을 한 이들의 생가는 돌보는 이없이 쓰러지기 직전이거나 헐려나가 버린 채 작은 팻말 하나 없는 현실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