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조혼이 성행하였습니다. 남자는 10살쯤, 여자는 14살쯤 되면 혼인을 서둘렀지요. 9살 어린 나이에 장가간 신랑이 적지않았고 여자가 18살쯤 되면 혼인이 늦었다고 걱정했습니다. 또 예전엔 어린 신랑이 연상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신혼풍습 가운데 “신방 엿보기”라는 것이 있었지요.
“신방엿보기(신방지키기)”는 첫날밤에 친척이나 이웃들이 신방의 문구멍을 뚫고 엿보는 풍속인데 무엇 때문에 신방을 엿보았을까요? 전하는 얘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백정이 있었는데 아들이 장가갈 때 무조건 벗겨야 한다고 했고, 신부의 어머니는 시집가서 고통스러워도 잘 참아야 한다고만 일러 주었답니다. 신랑은 옷을 벗기라는 말을 착각해 살을 벗기고, 신부는 ‘참아야 한다’는 말만 생각하고, 참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 뒤부터 신방을 지키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보통은 신부가 연상인데 신랑이 너무 맘에 안 들면 신부가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신랑을 죽이고 자살하는 일이 간혹 있었기에 지킨다고도 하고, 서산 지방에서는 사람이 보지 않으면 귀신이 보기 때문에 ‘망을 본다.’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본뜻은 신랑 신부 놀리기일지도 모릅니다. 신혼 때의 풍습으로 신부의 친척과 이웃들이 신랑을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는 “신랑 매달기”라는 것도 있었지요. 이제 그 신방을 엿보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