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있는데 손가락이 모두 달라붙어 물건을 잡지 못했다. 반면에 발가락은 가늘고 길어 바느질하거나 절구질하고 다듬이질할 때 편리하였다. 걸어가야 할 때는 손바닥을 짚신에 넣어 거꾸로 서서 비틀비틀 길을 걸었다. 밤이면 심지를 돋우고 삯바느질을 하여 생계를 꾸려갔다.”
위 내용은 조선후기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쓴 ≪추재기이(秋齋紀異)≫에 있는 “거꾸로 걷는 여성 장애인[倒行女]” 일부입니다. ≪추재기이≫는 타고난 이야기꾼 조수삼이 조선후기 소수자집단(마이너리티)의 이야기를 쓴 책입니다. 책에는 여러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이 “거꾸로 걷는 여성 장애인” 편은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사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좌절하거나 나약하게 행동하지 않고 꿋꿋하게 인생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최근 법관 임용마저 가로막았던 장애를 딛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 힘써 온 김신(55) 울산지법원장이 29년 만에 대법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또 양손 합쳐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희아 양이 있고, 그런가 하면 23년간 날마다 천 배를 하며 뇌성마비를 극복한 한 여류화가의 인간승리 소식도 들려옵니다. 점점 세상살이가 각박하다고 하지만 신체적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많은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