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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330. 서울 시내 속의 계곡, 백사 이항복 선생 별장지에 가다

   

“정자 앞에는 멀리 산봉우리가 열 지어 서서 동천(洞天)을 둘로 만들었다. 이 두 동천에서 나오는 물은 마치 흰 규룡(龍)이 구불구불 굼틀거리며 가는 것과 같은데, 한 가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또 한 가닥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두 가닥이 이 정자 밑에서 서로 합하여 돌아나가서 한 물줄기가 되었다. 이 물은 넓이가 수백 보쯤 되고 깊이는 사람의 어깨에 차는데, 깨끗한 모래가 밑바닥에 쫙 깔려 있어 맑기가 마치 능화경(菱花鏡)과도 같아서 오가는 물고기들이 마치 공중에서 노니는 것 같았다. 시냇가에는 흰 돌이 넓고 편평하게 깔려 있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낚시터를 이루었고, 현(玄) 자의 형세로 흐르는 시냇물은 이 정자의 삼면(三面)을 빙둘러 안고 돌아서 남쪽의 먼 들판으로 내려갔다. 나는 평생 구경한 것 가운데 일찍이 이러한 경계(境界)는 본 적이 없었다.”

이는 《백사별집》 제4권에 나오는 글로 조선 중기 문신 백사 이항복(1556~1618)이 꿈속에서 본 백사실 계곡을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백사 선생의 별서(별장)으로 알려진 종로구 부암동 산 7번지에는 백사 선생이 말한 정자 터가 연못 끝자락에 있고 건너편에 집터도 남아 있습니다. 지금 가보아도 빽빽한 도심 속에 이러한 무릉도원이 있을까 싶은 데 백사 이항복이 이곳에 머물 때의 그 비경(秘境)이란 어떠했을지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백사 이항복은 권율(權慄) 장군의 사위로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져 오성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선생은 선조ㆍ광해군 시기의 명재상이자, 임진왜란을 맞이하여 큰 공을 세운 분이지요. 비가 제대로 왔으면 백사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도룡뇽, 버들치, 가재들이 뛰어놀고 있으련만 며칠 전 찾은 계곡은 완전히 말라붙어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고 있어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도 백사실 터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백사 선생을 그리는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