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위 노래는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의 “전우여 잘 자라”는 노래로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군가 중 가장 유명한 것입니다. 예전 군대에 다녀온 사람치고 담배 한 대에 얽힌 추억쯤 없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군대 졸병 시절 애연가 병사는 화랑담배 나눠줄 때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고된 훈련 뒤에 기합까지 받았던 졸병에게는 이 화랑담배 한 모금이 서러움을 씻어주는 청량제였지요. 훈련 도중 휴식시간이 되면 언제나 조교는 “담배 일 발 장전, 발사”라는 구령을 외쳤고, 졸병들은 입에 문 화랑담배가 꿀맛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49년 5월 필터 없는 최초의 군용담배 ‘화랑’이 생산되어 연초비 명목으로 흡연 장병에게는 이틀에 한 갑의 화랑담배를, 비흡연 병사에겐 사탕 한 봉지를 지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화랑은 1981년 12월까지 무려 32년을 넘는 기간 생산되었는데 이 담배의 생산수량은 무려 27억 갑이나 됐다고 하지요. 남초(南草)·연초(煙草)라고도 했던 담배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중앙부 고원지대로 우리나라에는 1618년(광해군 10) 일본을 거쳐 들어왔거나, 중국의 북경(北京)을 내왕하던 상인들에 의하여 도입된 것으로 짐작합니다. 지금은 군대에서도 담배 보급은 없어지고 매점(PX)에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을 사야만 한다고 하는데 이제 화랑담배도 추억의 저편에 머물러버린 물건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