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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2373. 알렌의 유성기와 조선 선비의 반응

   

대한제국 말기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은 어느 날 공관에서 연회를 열고 대신을 초대했습니다. 이때 알렌은 여흥으로 당시에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유성기를 틀어 놓았지요. 난생처음 보는 물건을 앞에 두고 조선의 대신들은 한결같이 못 본 체, 못 들은 체 했습니다.

그러자 알렌은 짧은 연설을 하고 이에 대한 한 대신의 답사를 모두 녹음하여 반시간 정도 뒤에 유성기로 다시 들려줬습니다. 알렌 생각에는 모두 놀랄 것으로 생각 했는데 대신들은 조금 전 했던 말이 그대로 재생되어 나오는데도 역시 눈만 조금 크게 뜰뿐 천장을 보거나 창밖을 보는 등 애써 태연자약하더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랬을까요? 옛 선비들은 희비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고(喜怒不形於色) 요사스러운 것은 뜻을 상하게 한다(玩物喪志)는 유교의 가르침을 금과옥조처럼 받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단지 눈물이 고였다는 것만으로도 벼슬하는 데 지장을 받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유성기를 처음보고 신기해할 대신들이 속으로는 놀랐겠지만 겉으로는 짐짓 태연한 척 했던 것입니다. 유성기 이후 크게 발달한 오디오를 비롯한 무선전화, 사진기, 노트북 따위의 문명의 이기를 당시 대신들이 보게 된다면 역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대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