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빌어먹는 사람을 구휼(救恤)하는 법이 이미 상세한데, 이웃과 족친(族親)들이 전혀 구휼하지 아니하여도 관리들이 검거(檢擧)하지 아니하니 미편(未便)하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구휼하지 아니하는 자는 규찰(糾察) 검거(檢擧)하여서 추핵(推劾)하여 아뢰도록 하라.”세조실록 8년(1462) 10월 26일자 기록입니다. 세조임금은 어려운 이들을 구하는 것이 법에도 있는데 이웃과 친지가 거들떠보지 않고 이를 관리들이 잡아들이지 않는 것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휼(救恤)이란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금품을 주어 구하는 일”을 말합니다. 또 성종실록 13년(1482) 3월 23일자 기록에는 수령들이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돌려보내 구걸하다 죽는 일을 아룁니다. 그러면서 백성은 갓난아기이고 임금은 부모이며, 수령은 유모 또는 보모인데도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당상에 앉아 큰소리만 치고 구휼을 제대로 못하고 있음을 개탄하지요. 백성을 제대로 구휼하지 못하면 수령자리를 빼앗으라고 호통치기까지 합니다.
조선시대는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의 한(恨)도 가뭄이 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구휼하는 것은 나라가 할 중요한 일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구휼을 하면 가뭄을 풀어주는 비가 내렸다고도 하지요. 조선왕조실록에는 구휼(救恤)과 관련된 내용이 무려 622건이나 나오는데 그 만큼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뜻일 겁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헐벗은 이웃이 없나 돌아 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