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弓裔)는 호를 미륵불(彌勒佛)이라 하고 금모자를 쓰고 몸에는 방포(方袍, 네모난 가사)를 입으며 장자(長子, 큰아들)를 청광보살(靑光菩薩), 계자(季子, 막내아들)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하고 나아갈 때에는 채색(綵色, 비단빛깔)으로 장식한 백마를 타되 동남동녀(童男童女, 어린 아이) 100명으로 하야금 일산과 향화(香花, 향기로운 꽃)를 밧들고 압흘 인도하며 승니(僧尼, 스님) 200여 인(人)으로 염불을 하고 뒤로 따르게 하얏다."
위는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 제29호(1930년 6월 1일) “라말괴걸 태봉왕 궁예 비사(羅末怪傑 泰封王 弓裔 秘史)”의 일부입니다. 신라말기에 태봉왕 궁예라는 사람이 스스로 미륵이라 일러 사람들을 현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륵(Maitreya, 彌勒)이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6억 칠천만년이 지나면 세상에 와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미륵불신앙이 오랫동안 백성들의 희망 신앙으로 받아들여 폭넓게 이어져왔지요. 그래서 마을 곳곳에 가면 친근한 모습의 돌미륵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려말에는 바닷가 개펄에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었는데 이도 역시 미륵신앙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자주 출몰하던 왜구 때문에 고통 받던 백성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여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이 오시기를 빌었던 것이지요. 오늘은 성탄절, 서양의 구세주와 우리나라의 미륵불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