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이 살며 구차스러운 가운데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은 오직 책 한 시렁ㆍ거문고 한 틀ㆍ벗 한 사람ㆍ신 한 켤레ㆍ지팡이 한 개 ㆍ차 달이는 화로 하나ㆍ등을 대고 따뜻하게 할 기둥 하나ㆍ서늘한 바람을 끌어들일 창 하나ㆍ잠을 맞이할 베개 하나ㆍ타고 봄 경치를 찾아 다닐 나귀 한 마리면 그만이다. 이것이 열 개의 버리지 못할 하나들이다. 늘그막을 보내는 데 이 밖에 또 무엇이 필요하랴.”
위 글은 조선 중기의 학자 권별(權鼈)의 문헌설화집 ≪해동잡록 2 본조(本朝), 김정국 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선비에게 꼭 필요한 것 가운데는 시렁에 가득한 책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문헌에 등장하는 “시렁”은 많습니다. 정약용의 ≪경세유표 12권 창릉지저 3≫에는 “곡식을 쌓는 법은 움집 안에 옆으로 가자(架子 : 시렁)를 많이 설비하고 복판에는 통로를 둔다.”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또 세종실록 18년(1436) 11월 17일 기록에는 “좋은 음식물을 얻으면 시렁 속에 갈무리해 두고서는, 손수 그릇 속에 있는 것을 꺼내서 먹고 다시 손수 이를 갈무리하니”라는 부분도 있지요.
여기서 시렁은 “물건을 얹어 놓기 위하여 방이나 마루 벽에 두 개의 긴 나무를 가로질러 선반처럼 만든 것”을 말합니다. 그 비슷한 것으로 “살강”이란 것도 있는데 이는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으로 발처럼 엮어서 만들기 때문에 그릇의 물기가 잘 빠집니다. 시렁과 살강은 두 개의 긴 막대를 가로질러 선반을 만든다는 것은 같지만 살강은 두 개의 긴 막대 사이에 발처럼 가는 막대를 가로질러 놓았다는 것이 시렁과 다른 점입니다. 한옥이 사라져가는 요즘 시렁이나 살강 모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