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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86. 서원숙의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재현(再現) (Ⅰ)

   

 

 

지난 11월 22일 밤, <경기국악당>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심상건류의 가야금 산조> 발표회가 열렸다. 단국대 서원숙 교수가 단절위기를 맞은 심상건의 산조음악을 재현하여 청중들로부터 갈채를 받은 것이다. 서원숙 교수는 이미 국악고교 재학 때에 5·16 민족상 대통령상을 받음으로써 그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단국대와 이대 대학원을 졸업 후 본격적인 연주가로, 대학의 교수로 활동범위를 넓혀 왔다.

그는 국내외에서 가야금 독주회를 20여회 이상 열었는가 하면, 유명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도 십 수차에 이른다. 평생 한번 갖기도 어려운 독주무대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열정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을 했는가 하면 플로리다 대학교나 알라바마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를 지냈을 정도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현재도 그는 가야금 연주자들의 모임인 《금우악회》를 이끌고 있는 한편, 숨 끊어진 음악들의 재현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여류 국악인이다.

국악속풀이 86부터는 심상건류 가야금산조와 관련하여 심상건은 어떤 사람이고, 이 음악의 전승과정이나 음악적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산조(散調)는 1890년경 판소리, 또는 시나위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음악으로 각 악기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개성 있게 표출해 내는 기악 독주곡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산조는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작곡된 음악이 아니라, 전승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동안, 하나의 형식미를 갖추고 틀을 갖춘 음악으로 정착된 장르이다. 그러므로 선율악기에 장고나 북으로 반주하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기악독주곡 형태가 곧 산조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다양한 선율 악기들이 저마다의 산조를 특징 있게 연주하고 있지만, 그 효시는 가야금산조로 보는 데에 이의가 없으며, 그 조종(祖宗)을 김창조 (金昌祖 1865~1919)로 설명하는 데에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야금이 제일 먼저 산조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다음으로는 거문고, 대금 등이 연주되었으며 현재는 해금, 아쟁, 퉁소, 태평소, 피리, 단소 등 가락을 연주할 수 있는 전 악기들로 파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산조는 진양, 중모리, 자진모리의 3부분 형식이 기본이다. 악기에 따라 또는 명인이나 유파(流派)에 따라 악장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인 형태는 느리게 시작해서 보통의 속도를 지나 빠르게 진행하는 형식이다.

이는 저 유명한 ‘정읍(井邑)’의 만기-중기-급기의 형식이나, 정과정(鄭瓜亭)의 삼기곡(三機曲), 또는 대엽조에 보이는 만(慢)-중(中)-삭(數)의 세틀형식과 맥을 같이 하는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 본태는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우리민족 기층의 역량이 응집된 시대성을 지닌 양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조의 장단형태는 진양조-중모리-자진모리 의 기본 틀 외에 제(制)나 유파에 따라 엇모리도 넣고 중중모리나 굿거리도 첨가하며 휘모리, 단모리 등의 장단이 삽입되기도 한다. 대체로 장단형이 바뀌는 각 악장의 시작은 독주악기가 기본 장단형을 연주하기 때문에 구별이 쉽다.  

가야금 산조는 김창조, 한숙구, 박팔괘, 심정순 등이 거의 동시대에 산조음악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에 기여했으며 이들의 뒤를 이어 한성기, 최옥삼, 강태홍, 안기옥, 박상근, 심상건, 김병호, 김윤덕, 김죽파, 성금연, 함동정월, 서공철, 유대봉 외에도 수많은 명인들이 가야금의 산조음악을 오늘날까지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산조는 연주자의 기법이나 표출력이 최고도로 발휘되어야 하는 예술음악이다.

그런데 왜 예술성이 높은 이 음악을 <산조-散調>라고 불렀을까 하는 점은 의문이다. 산조라는 이름과 관련하여 옛 명인들에 따르면 <산조는 마음 내키는 대로 타는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헛튼 짓> 또는 <헛튼 수작>이라는 말에서 이미 그 진실성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고, 허드레는 <허드렛 일>이라는 말에서 중요치 않은 일이나 잡스런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겠다. 그러므로 산조를 한자어로 풀은 말이 마치 <하찮은 음악>이라는 의미가 짙다.

하지만, 예술음악의 극치라고 알려진 산조의 명칭을 <하찮은 음악>이라는 표현은 당치 않다. 아마도 이러한 표현은 정악(正樂), 정음(正音)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음악을 낮추어 부르는 겸손이 깔린 표현이 아닐까 한다. 마치 내 글을 잡문(雜文)이나 졸문(拙文), 졸작(拙作)으로 낮추어 부르듯 말이다.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은 표출력을 발휘해야 하는 산조음악을 처음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필자는 2011년 가을, 《문화재 보호협회》가 주관한 <산조의 세계로 떠나는 가을여행>이라는 음악회의 해설을 통하여“오늘날의 산조 음악의 의미는 <헛튼가락>이나 <허드렛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 아니라, 음악적 요소와 구성이 훌륭해서 널리 <확산되어 나가는 가락>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산조>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은 산조음악을 채보해서 악보화하고 반복적으로 연주해 온 탓에 점차 고정된 가락을 연주하는 형태로 변화되었으나 전통사회 명인들의 연주는 탈 때마다 다르게 탔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 표출력이나 기법의 세련미를 강조하는 산조음악에 있어서 자유분방함’이나‘즉흥성’이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