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는 짧은 취악기(吹樂器, 입으로 불어서 관 안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는 40여 cm정도, 내경의 지름이 1.2~1.3cm 정도여서 그 이름처럼 작은 악기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세로 부는 악기인 퉁소가 있는데, 퉁소는 단소보다 굵고 긴 형태이며 단소는 퉁소에 비해 작은 소(簫)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단소의 재료는 검은 색깔의 대나무인 오죽(烏竹)이나 오래된 황죽(黃竹), 또는 소상(瀟湘)의 반죽(半竹)이라 하여 유명 강가에서 자라고 있는 얼룩무늬의 대나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는 황죽이다. 그런데 마디가 촘촘하지 않은 일반 대나무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더워질 경우, 또는 가벼운 충격에도 쉽게 갈라지기 쉽게 때문에 비교적 단단한 재질의 쌍골죽이 악기의 재료로 좋다.
이러한 쌍골죽은 대밭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일종의 비정상적인 대나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죽제품을 위한 재료로 적합하지 않기에 일찍 베어 버리기 일쑤다. 때문에 주인의 눈을 피해 살아남은 쌍골죽 만나기는 쉽지 않다.
단소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윗부분에 U 자 형태의 취구(吹口), 즉 입술을 대고 김을 넣는 곳이 있고, 죽관에는 음공이 모두 5개 뚫려 있는데, 제1공은 뒤에 뚫려 있고 왼손의 엄지손가락(모지-母指)으로 열고 닫는다. 제2공부터는 앞에 뚫려 있는데 제2공은 왼손의 집게손가락(식지-食指), 제3공은 왼손의 가운데손가락(長指), 제4공은 오른손의 가운데손가락으로 여닫는다. 그리고 마지막 제5공은 오른손 약손가락(무명지-無名指)인데, 이 음공은 특별한 악곡을 제외하고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열어놓고 연주한다.
단소는 연주법 또한 까다롭지 않다. 소리 내는 부분인 취구(吹口)와 음의 고저를 만들어 가는 음공(音孔)의 자리만 익히면 쉽게 연주에 성공할 수 있다. 음역은 약 두 옥타브이고, 음색은 곱고 맑은 편이다. 단소를 처음 대하는 초심자들은 소리내기가 약간 까다롭다고 말한다. 그렇긴 하다. 누구나 입에 대기만 하면 소리가 저절로 잘 나는 악기는 아니다. 그러나 소리 내는 요령을 잘 이해하고 숙지하여 5분 정도만 실습해 본다면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다.
처음에는 모든 지공을 다 열고 소리내기를 시도해야 한다. 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위아래의 입술을 최대한 넓혀서 < 휘 >의 발음을 내는 것처럼 입술의 모양이 만들어 입김을 넣어야 한다. 이와 함께 단소를 드는 각도도 위로, 또는 아래로 숙여 보는 등 다양하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약하게 김을 넣어야 소리가 잘 난다는 이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음공을 열고 실습하다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뒤의 음공을 닫고 내도록 한다. 뒤의 음공을 닫았는데도 소리가 나면 앞의 제2공, 제3공, 제4공을 차례로 닫아 가면서 실습을 하도록 한다. 결국 모든 음공을 다 막고 낮은 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실습이 필요한 것이다.
한번 소리 내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쉽게 가락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단소는 소리 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다정한 친구 같은 악기이다.
필자는 1970년대, 국립국악고 교사를 지내면서 학생들에게 이론, 합주 등의 과목과 함께 단소를 필수로 지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매우 악명 높은 선생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단소가 소리내기는 비록 만만치 않다고 하지만, 조금만 정성을 기울이면 그렇게 어려운 악기도 아닌 점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음악교육에서 국악교육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기에 장사훈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악교육연구회》에서는 국악교육의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1인1기 음악교육으로 국악계에서는 단소를 지목하였던 시기였다.
만일 훗날 국악교육이 정상화 된다면 제일 먼저 일반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국악기가 단소였기에 나의 제자들에게 다소 엄하게 지도하였던 것이다. 그 날 배운 악곡은 다음 주까지 완전 암기하도록 과제를 주고 일일이 확인을 하여 합격,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불합격자들은 당일 합격을 받아야만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피리나 대금과 같은 관악 전공생들은 비교적 쉽게 과제를 이행해 왔지만 관악 이외의 학생들은 무척이나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유명 대학의 교수가 되어있는 옛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당시의 고충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만든다. 어떤 제자는 단소 숙제가 부담이 되어 학교를 자퇴하고 싶었다는 충격적인 고백도 듣게 되는 것이다. 그걸 잘 참아준 옛 제자들이 고맙고 학생들 앞에 당당히 서있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흐뭇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