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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거리와 꾸미개

풍차바지·개구멍바지 보셨나요?

[전시회] '옛 어린이옷, 그 소중한 어여쁨전' 열려



                                     

                                ▲ 색동두루마기(까치두루마기) ⓒ2005 경운박물관


우린 이제 전복, 봇뒤창옷, 동다리저고리, 사규삼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예전 우리의 어머니들이 사랑스런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지어주던 옷들이다. 온통 청바지가 유행하는 지금 그런 옷을 입기는커녕, 그런 옷에 관심을 가질 사람도 없다. 그 아름다운 옷들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옷들을 볼 수 있는 귀한 전시회가 있단다. 개포동 경기여고내 경인박물관에서 4월 19일부터 7월 15일까지 열리는 '옛 어린이옷, 그 소중한 어여쁨전'이 그것이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본다. 들어가자 화려한 아름다움에 눈이 번쩍 뜨이는 색동두루마기가 나를 압도한다.


소매를 색색으로 한 줄 한 줄 이어붙인 데다 길, 깃, 무 등을 각각 다른 색으로 지었으며, 깃 둘레에 색동으로 잣을 물렸고, 앞섶은 색동 조각 천을 이어붙인 그야말로 정성의 극치이다. 다른 말로는 까치두루마기, 오방장두루마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런 예쁜 옷을 아이에게 왜 입히지 못하는 걸까? 이 박물관은 경기여고 동창회에서 운영하는 것인데 동창들이 보관해왔던 옛 어린이옷들을 기증하여 그것을 토대로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한다. 길게는 100년이 넘게 김씨 집안, 조씨 집안, 민씨 집안, 윤씨 집안 등 4집안이 물려온 옷 100여 점이 다른 박물관에서 빌려온 옷 일부와 같이 전시되고 있다.


                                     

                                    ▲ 사규삼(관례복, 돌복으로 입었음) ⓒ2005 경운박물관


이중 색동두루마기 말고도 또 눈에 띄는 옷이 있는데 바로 '사규삼((四揆衫)'이다. 사규삼은 원래 왕세자의 예복이었지만. 공주의 예복인 활옷이 백성들의 혼례복으로 쓰였듯이, 이 사규삼도 관례복으로 쓰이게 되었으며, 뒤에 남자 아이의 돌 옷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소매가 넓고, 맞깃이며, 양옆은 겨드랑이까지 트였고, 소매, 깃, 도련, 겨드랑이 부분에 검정 선(縇)을 대고 그 위에 깃은 국화무늬를, 나머지는 '수복강녕(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의 글씨를 금박으로 놓았다. 여기 전시된 사규삼은 정승을 지냈던 김좌근의 5대손이 입었던 옷이라고 한다.


이 사규삼과 같이 전시된 도포는 왕실 침선장의 바느질이라고 한다. 그 증거로 왕실의 금박장은 부귀다남(富貴多男)을 찍을 때 '富' 자의 위 꼭지를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왕실의 바느질을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또 재미있는 이름의 '개구멍바지', '풍차바지', '배냇저고리', '두렁이', '봇뒤창옷', '동다리저고리' 따위도 전시돼 있다. 개구멍바지는 어른 남자바지와 같지만 용변을 보기 쉽도록 밑을 터서 만든 바지로 5~6살 어린 아이가 입었으며, 풍차바지는 개구멍바지와 비슷한데, 뒤가 길게 터지고, 그 터진 자리에 풍차(좌우로 길게 대는 헝겊 조각)를 달아 지은 바지다.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돌띠저고리, 동다리저고리, 개구멍바지, 풍차바지 ⓒ2005 경운박물관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냇저고리, 봇뒤창못, 배두렁이, 두렁이 ⓒ2005 경운박물관


배냇저고리와 두렁이, 봇뒤창옷은 갓난아이가 입는 옷들이다. 이중 배냇저고리는 다른 말로 '깃저고리'라고도 하는데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처음 입는 옷으로 깃을 달지 않고, 고름도 몇 가닥의 실로 만들어 부드럽고 편안하게 만든다. 또 두렁이는 어린 아이의 배를 둘러주는 치마 같은 옷이며, 특히 '배두렁이'는 제주도 지방에서 삼베로 만든 옷인데 생활력이 강한 지역 색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봇뒤창옷은 아기집에서 떨어져 나온 뒤 입는 큰 옷이란 뜻으로 배냇저고리를 제주도에서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 아주 특별한 옷이 또 있다. 연두색 두루마기인데 짧은 고름의 길에 붙은 쪽 일부와 섶코 부분이 좀더 짙은 색이다. 어떻게 이런 옷을 만들었을까?


운영위원장은 말한다. "예전엔 옷감을 이어서 바느질을 하면 장수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론 남은 자투리 천을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옛 사람들의 검소한 생활을 말하는 듯하여, 오히려 의미 있는 옷으로 생각됩니다."


                                

      ▲ 주홍색 두루마기, 고름 일부와 섶코를 짙은 색의 다른 옷감을 댄 두루마기 ⓒ2005 경운박물관


그리고 아이옷 바지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분명 대님이 있다. 스스로 잘 입지 못하는 아이의 바지에 대님이 있다는 건 요즘 불편하다며, 한복에서 대님을 없애기 일쑤인 한복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옛 사람들은 대님의 소중함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 전시회에는 옷만 전시된 것이 아니다. 조바위, 굴레, 풍뎅이, 복건, 호건 따위의 머리에 쓰는 쓰개, 토시와 타래버선, 누비버선과 함께 태사혜, 운혜, 나막신 등의 신발도 소개된다.


또 아름다운 각종 노리개와 주머니, 댕기들도 전시장을 빛내준다. 덧붙여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다. 동아시아 3국의 복식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전에 생활한복을 입으면 일부 사람들은 중국옷처럼 보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복과 중국옷 복식의 다름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중국의 한족, 묘족, 회족 그리고 몽골과 일본의 옷들이 전시되어 있다.


                                      

           ▲ 전시회를 관람하는 학생들, 기모노 앞에 몰려선 학생들 ⓒ2005 김영조


이 전시회에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 옷들이 대단히 화려했다는 것이다. 남자 아이 옷임에도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흔히 여성의 색으로 알려진 주홍색, 분홍색 또는 연두색 따위를 썼으며, 색동저고리 따위도 많이 입었다는 점이다. 어른 한복의 관념을 아이 옷에 적용하려는 모습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여자 아이 옷이 아주 작은 것이 좀 아쉬웠다. 어쩌면 대를 잇기 위해 남자 아이를 특별히 원했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전시회를 돌아보며, 그동안 우려했던 생각이 현실로 다가온 듯한 일이 생긴다. 얼마 전 한 여고생은 청소년들이 한복은 외면하면서 일본 기모노를 좋아하고, 사 입기도 한다는 말을 하기에 의아해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마침 전시회를 보러 왔던 학생들이 한복 앞에서는 대충 보고 지나가더니 기모노 앞에 가서는 예쁘다고 소란을 떨었다.


안내하던 운영위원장이 "안 보던 옷이라 신기해서 그렇지?"하고 물으니 학생들이 "네"하고 대답했지만 바로 내가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대답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물으니 모두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기모노가 예쁘다고 하는 것이야 흉볼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복은 외면하고 남의 옷, 그것도 일본 옷을 좋아하는 일이 그저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지 않을까? 청소년들의 이 문화사대주의적 모습은 어른들의 행동에서 배운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먼저 반성해야 될 일일 것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지휘하고 있는 경운박물관 이덕실 운영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경운박물관 이덕실 운영위원장 ⓒ2005 김영조


- 특별히 옛 어린이옷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부여하고 싶은 의미가 있나요?

  "요즘 출생률이 떨어지는 세태를 우려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옷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느끼고 활용하려는 마음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습니다. 또 기성복이 아닌 어머니들이 한 땀 한 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정성들여 만든 옷을 보여주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 아직 작은 박물관으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경운박물관 얘기 좀 부탁합니다.

  "아직 경험도 일천하고, 2명의 학예사 외에는 모두 아마추어 자원봉사지만 동창 중에는 전문가들이 많아서 많은 자문을 받고 있기에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근세 복식 전문 박물관'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로 다른 박물관에 많지 않은 근세복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운영계획은?

   "근세 복식 전문박물관에 맞게 주제별로 전시회를 가지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속옷전, 혼례복전, 외출옷전 등을 열 수가 있겠지요."


이 경운박물관은 대형박물관들에게 견주면 규모로는 보잘 것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시회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눈에 띄는 정성과 노력이 있기에 규모로만 박물관을 평가할 수는 없다. 나름의 전문성과 소박한 전시는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음이다. 우리의 한복은 세계인이 감탄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복은 이 시대에 진정한 참살이(웰빙)옷, 생활의 지혜를 드러내는 옷이라는 증거가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가정의 달에 우린 이 '옛 어린이옷, 그 소중한 어여쁨전'에서 아름다움과 삶의 지혜를 감상하고, 동시에 어머니의 소중한 사랑을 느껴보면 어떨까?


                                              

                             ▲ “옛 어린이옷, 그 소중한 어여쁨전” 포스터 ⓒ2005 경운박물관


경운박물관 가는 길 :

전철 분당선 개포동역 7번 출구로 나와 200m쯤 가면 경기여고 정문이 있다. 정문에 안내판이 있으며, 수위아저씨에게 문의를 하면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문의 02-3463-1336 2005/05/03 오후 5:36 ⓒ 2005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