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중화로 만든 한자, 우리 문화의 재앙
559돌 한글날 기념 한글학회 학술대회 참가기
▲ 559돌 한글날 기념 한글학회 학술대회 모습 ⓒ2005 김영조
559돌 한글날을 맞아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그중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행사인,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가 한글학회 주최로 상명대학교 밀레니엄관에서 15일 아침 10시부터
‘국어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이란 주제로 열렸다.
한글학회 김계곤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제 1부 ‘국어 정책의 근본 뜻’ 발표가 있었다.
먼저 김영환 부경대 교수는 철학자답게 ‘한글로만 쓰기와 말글 정책의 방향’이란
제목으로 한글과 한자의 문제를 철학으로 풀어낸다.
“중국의 정치적 안정은 곧 중화 세계의 단결이며,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대학’의 ‘평천하’는 바로 이런 목표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유가의 경전에는
중화사상이 그 본질적 성격으로 들어있다. 유가 경전 곳곳에 나타나는 화이론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러한 화이론을 따를 때, 문화는 중국의 한족만이 갖는 것이며, 한족의 문화만이
보편적이다.
오랑캐는 짐승과 사람의 중간에 속하는 것으로 되었다. 오랑캐는 열성적으로 중화를 본떠
예의의 나라가 되려고 애써야 작은 중화라도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유학을 섬겨
‘동방예의지국’이 된 조선도 작은 중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한자로만 된
유학의 졍전을 섬긴 것은 결국 우리의 문화를 가난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유학은 우리
문화에 치명적 해독을 끼친 재앙이었다.”
▲ 발표자 김영환 교수와 토론자 최기호 교수 ⓒ2005 김영조
김 교수는 그런 까닭으로 한자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과 동화되면 문화이고,
다르면 오랑캐로 가르치는 유학은 일제의 민족동화, 말살정책과 다를 게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마지막에 국립국어원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한글전용이 우리 말글
정책의 큰 흐름이라 하지만 정책을 맡고 있는 국어원은 한글전용에 확신도 없고,
이를 거스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지적한다.
이에 토론자로 나선 상명대 최기호 교수는 “대통령 이름이 DJ, YS로 양말은 BYC,
KJC로 한글 이름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도 한중일 3국의 한자 표준을 만든다는 말이
안되는 소리만 한다. 우리의 말글은 영어에 심각한 병이 들어 있는데 이를 놔두고
무슨 국어 정책이냐?”라고 나무란다.
다음 발제는 경북대학교 이광석 교수의 ‘국어 정책의 참뜻 - 정책학의 관점에서’라는
제목이다. 그는 ‘국어학자들이 미시분야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이 지나치게 기술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정책의
기본적인 문제를 분석해 나간다.
“사회문제화 되어 나라가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 국가가 이를 받아들여 정책으로
내놓는 것이다. 따라서 국어운동은 일반 대중과 같이하여 사회문제화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정책 평가인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국어 정책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데 이를 규제하기 보다는 온당한
방법으로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외래어, 외국어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여야 하며, 새로운 외국어가 통용되기 전에 적극적으로 개입, 미리 걸러내는 게
중요하다.”
▲ 발표자 이광석 교수와 토론자 김영명 교수 ⓒ2005 김영조
이에 대한 토론은 한림대학교 김영명 교수가 맡았는데 국어정책은 민간 즉 시장에
맡겨두면 힘이 없는 국어는 죽게 된다며 때로는 타협할 필요도 있겠지만 적절한 나라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그는 영어를 같이 쓰지(병기) 않아도 논문을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이 발표문에 쓸데없는 영어가 많이 섞여있다고 꾸짖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국영문 혼용이 쟁점화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이 발표와 토론을 듣고 있던 경북대학교 김종택 교수는 중요한 의견을 말한다.
“선조임금이 내린 400년 전의 언문교지는 나라의 공식문서였지만 전문 493자 모두 한글
전용을 했다. 또 소설 ‘구운몽’도 한글본은 완전 한글로만 쓰였다. 이렇게 세종임금 이후
오랫동안 한글전용을 지켜왔는데 오히려 조선말기의 서유견문록을 보면 토만 한글로 적고,
완전 한자뿐이다.
그런데도 한 원로 국어학자는 ‘창제 이래 나라글자 구실을 못하다가 갑오경장 이후 찾았다는
거짓말을 말했다. 이는 학문적으로 완전히 잘못되었다. 따라서 한글전용은 오히려 철학적으로,
국어사적으로 정당성, 정통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또 일제 식민문화를 떨어내는 운동이다”라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 발표자 이관규 교수와 토론자 김세중 부장 ⓒ2005 김영조
이어서 2부로 홍익대학교 이관규 교수가 ‘국어기본법 시대의 국어 정책의 방향’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그는 국어가 단순히 도구만인 아니라 민족의 얼을 담고 있는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국가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하든 그렇지 않든, 또 정치 제제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국어가 갖는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즉, 국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매개체라는 도구적
기능 외에 그보다 더 민족의식을 담은 내용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글날을 단순한 기념일로만 보지 말고 국가 차원의 국경일로 하여 대대적으로 기념행사를
하게 되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매우 크리라 생각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 국민들은
물론이고, 또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이들은 모두 이 날을
관심을 갖고 바라볼 것이다. 한글날을 경제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무궁무진하게 이용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글날을 국경일로 하면 공휴일이 늘어나고 그러면 경제적으로 잃는 게 많다며 반대를
하는 정부와 재계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그는 한글날 국경일 승격을 요구했다.
이에 토론자로 나선 국립국어원 김세중 부장은 “국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만 보지 말고,
한민족의 사상을 담은 것이므로 국어의 내용에 대한 교육도 소홀히 하면 안 되며, 문법 능력,
문학 능력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고 한 발표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하지만 국어사용 능력의
신장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언어 기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내용적 지식에 대한
교육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자칫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것으로 비칠까 우려한다”고
말한다.
▲ 발표자 허재영 교수와 토론자 주세형 교수 ⓒ2005 김영조
이후 호서대 허재영 교수의 ‘국어 교육 정책과 대학의 국어과 교육 : 국어과 교육과정 및
교재를 중심으로’란 발표에 이은 서울대 주세형 교수의 토론, 최남희 동의대 교수의 ‘고구려
음운 체계 연구’란 제목의 발표와 연세대 임용기 교수의 토론, 허원욱 고려대 교수의 ‘17세기
어찌마디의 통어적 연구’란 제목의 발표에 상명대 김미형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한 나라 국어의 운명은 어쩌면 국어정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런 점에서
이날의 국어정책 학술대회는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저 국어가 어떻게 흘러가도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이에 관심을 갖고 나라의 국어정책에
관한 꾸준한 주문과 감시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은다.
▲ 559돌 한글날 기념 한글학회 학술대회 모습 2 ⓒ2005 김영조
2005-10-16 11:33 ⓒ 2005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