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가람 기자]
아막산성은 백제와 신라의 옛 성으로 상호 중요한 요새인데 수도 없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백제에서는 아막성, 신라에서는 모산성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아막성은 1,500여년전의 산성으로서 성벽을 이루었던 석재들이 무너져 수북이 쌓여 있으며, 산 중턱에는 4~5m 높이의 돌기둥처럼 생긴 돌탑이 서있다. 금방 바람만 불어도 넘어갈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세월 넘어가지 않고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돌탑은 성 돌로 쌓은 데다 덩굴들이 탑을 감고 있어 오랜 세월 버텨낸 것이다. 이 돌탑을 쌓은 것은 아영이 고향인 박철수씨가 1967년 스무 살 새내기 때 아래 문성암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면서 쌓은 것으로 아침이면 일어나 새로운 대학생활과 삶의 꿈을 하나씩 돌덩이 싣고 쌓고 또 쌓았다고하니 더욱 놀라운일이다. 얼마전 TV 사극에서 삼국의 영토분쟁사를 본 뒤 백제와 신라의 모산성(아막성)에 대한 얘기에 눈길이 갔다. 602년 백제와 신라의 아막산성 전투에서 산화한 두 젊은 신라장수 귀산과 추상의 임전무퇴 정신이 이야기 되고 있으며, 백제의 왕자도 목숨을 잃었다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남원용성지의 기록에 의하면, 아막산성(阿莫山城)성지는 신라와 백제의 옛성루로 매우 중요한 요새인데 수도 없는 전쟁은 매번 치열했다. 아막산성은 산아래 흥부의 발복지인 흥부공원에서 한 시간가량 올라가면 나온다. 아막산성에서 백두 대간을 따라 봉화산 방향의 매봉주위는 철쭉으로 온통 붉게 불타고 있다. 또한 옛 가야의 고분군락과 고인마을의 고인돌이 곳곳에 산재하여 선사시대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주위에는 변강쇠전의 이야기인 산내면과 이성계장군이 아지발도를 잡은 황산벌전투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 함은 물론, 英과 莫은 글씨를 흘겨쓰면 혼돈하기 쉬워 아영(阿英)이란 지명도 아막(阿莫)성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아막성은 역사속에서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으로서 또한 젊은 장수들의 충성심과 애환이 함께한 역사의 현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