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슬옹 문화전문기자] 세종은 조선의 태종 임금인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이 세워진 지 5년째인 1397년 음력 4월 10일, 지금의 서울인 한양 준수방 어느 저택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아버지 이방원이 임금이 되기 전이었으므로 궁궐 밖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한양을 열두 구역으로 나눴는데, 세종이 태어난 준수방은 그중 하나였다. 준수방은 현재 서울 종로구 통인동으로 추정한다. 세종이 태어난 집은 현재 남아 있지도 않고 복원하지도 않은 상태다. 다만 그 부근에 돌비석 하나만이 외롭게 세워져 역사를 말하고 있다.
▲ 돌비석 / 설명 : 세종이 태어난 곳을 알리는 돌비석(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옛날에는 임금과 같이 귀한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이름을 지어 주신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도를 ‘원정(元正)’이라 불렀다. ‘원정’이라는 이름에는 ‘으뜸바름’이란 뜻도 있고, ‘처음’이란 뜻도 있다. 이도는 훗날 이름답게 으뜸이면서 바른 글자 훈민정음을 만든 으뜸 임금이 되었다.
이도는 남달리 책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느라고 방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 이도를 볼 때마다 아버지 태종은 걱정이 많았다. 사내아이가 힘차게 뛰놀며 용맹을 길러야 하는데, 허구한 날 책만 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종은 하는 수 없이 아들의 방에 있던 책을 모두 감춰 버렸다. 그 뒤로 이도는 부모의 뜻을 어기지 않으려고 몰래 책을 봤다고 한다. 이러한 이도의 어린 시절 책읽기 습관은 임금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세종 1년인 1419년 3월 27일자 『세종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임금은 정사에 부지런하고 천성이 글 읽기를 좋아했다.
▲ 독서도 : 세종의 어린 시절 독서도(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그뿐만이 아니라 이도는 임금이 된 다음 날마다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이도가 책을 좋아한 것은 책을 통해 세상의 온갖 지식을 배울 수 있고,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도 잘 해낼 수 있었다. 이도는 책 읽기만이 아니라 음악과 그림에도 뛰어났다. 세종 7년인 1425년 5월 3일자 『세종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임금이 되기 전 사가에 있을 때부터 거문고와 비파, 그림에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도는 기녀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만 듣고도 음의 높낮이를 정확히 알아맞힐 정도였다. 임금이 된 뒤에 ‘정간보’라는 악보를 직접 만들고 작곡까지 한 걸 보면 이도의 음악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도는 무언가를 보면 그대로 따라 그릴 정도로 그림 실력 또한 뛰어났다. 글씨 연습을 하다가도 붓은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부드러운 난의 곡선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글씨 연습이 마냥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이도에게는 큰형 이제와 작은형 이보가 있었다. 나중에 이도는 충녕대군, 이제는 양녕대군, 이보는 효령대군이라고도 불렸다. 큰형 양녕대군도 글씨를 잘 썼다. 작은형 효령대군은 형제들 사이에서 곧잘 따라 글씨를 썼다. 그러다 보니 세 형제가 글씨 쓸 때만큼은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