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한글로 살려 낸 인어공주 안다운 김슬옹 ◈ 작품 이해하기 ㅂ, ㅁ, ㅅ, ㅇ, ㅣ를 이용해서 가방을 디자인 했습니다. ㅂ은 가방의 덮개로 ㅁ과 ㅅ, ㅣ는 쇼핑백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ㅇ을 이용하여 동화책에 나오는 비눗방울을 불어 만들어낸 듯한 물방울무늬를 가방의 끈과 연결되도록 했습니다. 가방 전체에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서 프린트 느낌이 나도록 표현했습니다. 전체적인 색상은 반짝거리는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글 프린트 무늬는 회색을 사용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거품 모양의 무늬는 약간 반짝거리는 느낌을 주도록 표현하였습니다. ◈ 작품 속 숨은 이야기 색다른 인어공주 이야기 옛날, 옛날 바다 속 산호초 나라에 인어공주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인어공주는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몹시 빛나는 한글 디자인 가방을 보게 되었습니다. 앗, 이게 웬일입니까? 인어공주는 한글의 맵시에 금방 매혹이 돼, 그 가방을 너무너무 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통장 잔고는 0원! 인어공주는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그 가방 생각뿐이었습니다. 결국 큰마음을 먹고 바다 마녀에게 사채를 빌린 인어공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기자] 연재를 시작하며 누구나 디자이너가 되게 하는 한글, 이제 우리 모두는 한글 맵시꾼이다. 한글을 흔히 그래픽 문자라고 한다. 마치 화가가 정교하게 그린 그림 같다는 것이다. 굳이 명칭을 붙인다면 도형 미술이다. 단순한 몇 가지 도형으로 온갖 글을 만들어 내는 마치 마술과 같은 도형 미술이다. 세종대왕은 단순한 점과 선과 원만으로 기본 문자 28자를 만들고 28자로 온갖 글자를 생성해 낼 수 있는, 그래서 온갖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예술문자를 만들었다. 미적인 아름다움에 과학적인 기능성이 더해진 문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곧 한글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도형 미술이면서 온갖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실용 미술이기도 한 변신의 글자다. 그렇다면 이런 글자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디자이너(글맵시꾼)가 될 수 있다. 문자 자체가 디자인이므로 이를 조금만 변형하고 바꾸면 실제 멋진 문자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미술에 소질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한글 맵시꾼이 될 수 있다. 한글이 아름다운 것은 조화로움 때문이다. 조화는 어울림이다. 곧 조화롭다는 것은 여러 요소가 만나 또 다른 세계를 만들되 여러 요소가 제 색깔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극동대학교가 2014년 1학기부터 교양 온라인 강좌로 한글학을 개설하기로 했다. 한글학이 얼마나 필요하며 왜 중요한가에 대한 글쓴이의 의견과 제안을 극동대학교가 받아 들여 개설되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우리말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말까지도 제대로, 바르게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한 훈민정음을 가리킨다. 한글은 한국어를 적는 고유 문자 이름으로서의 특수성과 사람의 문자가 지향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보편성을 갖춘 문자이기도 하다. 이제 국제 사회에서는 언어와 문자를 제대로 아는 이라면 한글을 최고의 문자 체계로 평가하는데 전혀 이견이 없는 듯하다. 2012년에 리커슨(E.M.Rickerson)과 힐튼(Barry Hilton)이 엮어 펴낸 《he Five-Minute Linguist: bite-sized essays on language and languages(2nd ed.).》라는 책에서 피터 다니엘스(Peter T.Daniels)는 지구상의 문자 체계를 총정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 최고의 문자 체계는 중국으로부터 배운 음절 접근법을 인도로부터 배운 자음-모음 접근법과 결합한 한국어, 한글(Ha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1443년 음력 12월은 훈민정음 28자가 세상에 공개된, 그야말로 훈민정음 28자의 기적이 일어난 달이다(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김슬옹, 아이세움, 참조). 그 기적은 세상에 소리 없이 드러났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자(세종실록 온라인판 영인본에 의함)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본뜨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자에 관한 것과 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간결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 《세종실록》 25년(1443년) 12월 30일자 기적이라 하는 것은 여섯 가지 측면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훈민정음은 사람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문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리 문자인 셈이다. 곧 훈민정음은 사람의 말소리뿐만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 저 한자는 무엇인가? 한자 모르는 백성은 이순신 장군을 몰라도 된다는 것인가 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조선은 만백성이 소통할수 있는 한글을 만들고 지켜낸 위대한 나라였다. ▲ 공화문 네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 이순신 동상에는 忠武公李舜臣將軍像이라고 한자로 쓰여있다.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필자는 주로 국어선생이 될 국어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학기 초에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여러분은 보고서를 아래한글로 내게 될 것이다. 엠에스워드 문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만 허용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니다. 전 세계 문서작성기는 다국적 기업인 엠에스워드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아래한글도 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것은 아래한글 만든 사람들이 잘 만든 탓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의 힘이었고 한글의 자부심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 앞에 토종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그 기적의 의미를 국어 교사가 지켜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이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가꾸는 것이다. 둘째 정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지키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학생들한테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줄 것이다. 나 또한 1989년 아래한글 1.0부터 정품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왜 특정 회사의 홍보맨이라는 오해를 가끔 받아가면서까지 이렇게 교육하는 핵심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래
▲ 한자로 먼저 크게 쓰고 작은 한글로 토를 단 《석보상절》 ▲ 한글로 먼저 크게 쓰고 한자로 작게 토를 단 《월인천강지곡》 ▲ 훈민정음 언해본 첫장 ▲ 청농 문관효 서예가가 《월인천강지곡》과 같이 먼저 한글을 크게 쓰고,작게 한자로 토를 단 작품을 선보였다. * 월인천강지곡식 훈민정음 언해본 전시(청농 문관효 서예가) 2013년 10월 7일 ~ 10월 10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부근 ▲ 훈민정음 언해본을 청농 문관효 서예가가 쓴 작품
[그린경제=김슬옹 기자] 글쓴이는 2004년 북한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중국의 중국조선어신식학회. 남한의 국어정보학회가 공동 주최한 , 2004 코리언 컴퓨터처리 국제학술대회(남북 정보기술 교류 10주년 기념International Conference on Computer Processing of Korean Language 2004((ICCKL, 2004, Shenyang, China)에서 한국어를 가리키는 남북 공동 명칭으로 한말글을 제안한 바 있다. 남한과 북한의 우리말글 명칭이 달라 코리언이란 외국식 용어를 쓰고 있어 새 용어를 제안한 것이다. 북한 학자들은 남한 쪽 한글 용어의 변종이라 한사코 반대해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단 남한만이라도 공식적으로 써야 한다. 분단의 비극은 우리말글의 이름까지도 갈라놓았다. 남한의 한국어는 사전에서 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 형태상으로는 교착어이고, 계통적으로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 한반도 전역 및 제주도를 위시한 한반도 주변의 섬에서 쓴다. 어순(語順)은 주어, 목적어(또는 보어), 술어의 순이며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의 앞에 놓이는 것 따위의 특성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풀이하고 있다. 반면에 북
[그린경제=김슬옹 기자] 행소박물관과의 아름다운 인연 2010년 4월 27일. 저는 행소박물관 초청으로 훈민정음 특강을 위해 계명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교 캠퍼스에 들어선 순간, 저는 얼떨결에 무릉도원에 빠진 사람 모양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실제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었다니. 그동안 가장(?) 아름답다는 여러 대학의 캠퍼스를 두루 보았지만, 그 어떤 대학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격이 달랐습니다. 마침 꽃피는 봄이라 더욱 아름다웠던 듯싶습니다. 제가 안 가본 수많은 외국 대학 캠퍼스를 합친들 이보다 아름다울까요? 저는 저도 모르게 무릉도원의 신선이 되어 캠퍼서 여기저기를 누비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는 발을 담그고 싶었으나 겨우 억제하고 기분만을 만끽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 흥에 겨워 저의 주특기인 명강의(?)를 신명나게 펼칠 수 있었습니다. 행소박물관장님을 비롯한 모든 직원 분들의 친절함은 캠퍼스 풍광만큼이나 포근했고 강연 참석자의 열의까지 더해 저는 제 생애 최고의 열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캠퍼스를 거닐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린경제=김슬옹 문화전문기자] 조선왕조 22대 정조 임금은 한글과 관련된 흥미로운 세 통의 편지를 남겼다. [사진 1]은 원손(영조의 맏손자) 시절에 외숙모인 민 씨(홍봉한의 며누리)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현대말로 옮겨 보면 이렇다. ▲ 정조의 원손 시절 한글 편지 숙모님께 가을바람에 몸과 마음이 평안하신지 안부를 여쭙습니다. 뵈온 지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봉서를 받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오니 기쁘옵니다. _원손 영조 35년(1759년)인 여덟 살 무렵 썼다고 하는 이 편지는 받는이와 보내는이만 한자이고 나머지는 정겨운 한글 글씨로 되어 있다. 정조는 바로 여덟 살 때인 이 해(1759년) 2월 12일에 세손으로 책봉된다. 그러니까 이 편지는 세손으로 임명되기 직전인 연초에 쓴 편지로 보인다. 어린 나인데다가 여성과의 편지 왕래는 한글로 하는 것이 일반 관습이고 보면 한글 편지가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린 나이에도 편지틀에 맞추어 외숙모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외할아버지의 건강에도 마음 쓰는, 효성스러운 손자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 2]는 세손 시절의 편지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