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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호의 한시산책 3] 두 개의 명당

투자시(投刺詩)

두 개의 명당


[그린경제=소병호 기자] 삼정승 보다는 사정승!

한 지관이 수더분하게 생긴 촌부(村夫) 구산자(求山者)에게 지세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자리는 천금을 주고도 못삽네다.”

좌청룡자락과 우백호자락이 대칭을 이루며 앞들을 소쿠리처럼 보듬고 있고 앞들언저리를 활처럼 감아 흐르는 도랑 너머로 탕건 모양의 안산(案山)이 다소곳이 업드려 있다. 그 뿐이랴? 뒷 날등이 힘차게 뻩어 내려오더니 용머리처럼 불쑥 치솟았다가, 다시떨어지듯 미끄러져 내리다가 딱 멈춘 곳! 굳이 지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명당 터다.

“윤생원, 이 안에 묘자리가 두 개 있소. 하나는 삼정승 날 자리이고 또 하나는 사정승 날 자리요. 어떤 자리에 쓰시겠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시고 말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정승 날 자리에 써야지. 정승이 뉘집 강아지 이름인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나온다는데 이런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처음에는 그저 가난이나면하기를 바랐던 구산자는 욕심이 발동하여 앞뒤잴 것 없이 사정승 날 자리에 조상을 이장했다. 
 

정승의 버릇을 고친 영특한 소년

윤효순의 아버지 윤처관(尹處寬)은 의정부 녹사로 있었다. 처관은 어느 날 영의정 박원형댁에 공무로 심부름을 갔다. 청지기는 처관이 들이미는 명함을 정승께서 주무신다는 핑계로 받아주지 않았다. 일개 청지기 따위가 세력만 믿고 공무집행을 방해한 셈이다. 처관은 해가 둥둥 뜰 때까지 기다리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처관은 아들 효손(孝孫)에게 미관말직의 서러움을 하소연했다. 처관의 아들 효손은 그 때 15~6세의 소년이었는데 문장에 능했다. 효손은 아버지 몰래 명함말미에다가 투자시 한수 써 놓았다. 처관은 이튿 날 다시 박정승댁에 가서 가까스로 명함을 들일 수 있었다. 정승은 명함에 쓰인 시를 보고 효손의 재주에 탄복하여 사위로 삼았다. 효손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종일품 좌찬성에 이르렀다.
 

사정승(四政丞)인 줄 알았더니 사정승(死政丞)일 줄이야

구전에 의하면 추계 윤효손 공은 사후에 정승이 되었다고 해서 사정승이라고 한단다. 조정에서 내린 정승교지가 대문에 당도하자마자 추계공은 숨을 거두어 교지를 받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차라리 삼정승 날 자리를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남원은 긴 것이 아닌 체하고 아닌 것이 긴 체 하는 곳

그후 남원하면 알송 달송한 꼬리표가 하나 붙어 다닌다. '긴 것이 아닌체하고 아닌 것이 긴 체 하는 곳’필자가 이 말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선생님 한분이 나에게 고향을 물으셨다.
“남원이구만요”

했더니 그 선생님은

“호 오! 그랴? 긴 것이 아닌 체하고 아닌 것이 긴 체 하는 데서 왔구나”

필자가 알송 달송한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십 년도 더 지나서 였다.

‘남원의 영광 류(柳)씨는 유자광 때문에 한사코 영광 류씨가 아니라 하고 윤효손의 후손들은 조상이 정승이 아닌데도 정승인 체 한다’고

 

<출전 :대동기문, 구비설화>

1)投刺詩(투자시)

相國酣眠日正高(豪)
ㄱㄱ○○ㄱㄱ◎

門前2)刺紙已生毛(豪)
○○ ㄱㄱㄱ○◎

夢中若見3)周公聖
ㄱ○ㄱㄱ ○○ㄱ

爲報當年吐握勞(豪)
○ㄱ○○ㄱㄱ◎

(상국감면일정고)

(문전자지이생모)

(몽중약견주공성)

(위보당년토악로)

명함을 들이다.
- 면회를 청하는 일 -

 

정승께서 해가 둥둥 뜨도록 주무시니
문전의 명함에 보푸라기가 날 지경이오.
꿈에 혹 주공이라도 만났거든
그 당시 토악의 노고나 알려 주시지요.

 

윤효손 약력

윤효손(尹孝孫). 1431(세종 13)~1503(연산군 9). 자는 유경(有慶). 호는 추계(楸溪). 본관은 남원. 단종1년(1453)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세조 1년(1455). 성균관 저작. 원종 공신 2등에 책록. 경국대전과 오례의주를 수찬. 호조. 예조참의·전주부윤 형조판서를 거쳐 우참찬과 좌참찬을 역임. 시호는 문효(文孝). 남원의 방산(方山)서원에 배향되었다.

 

Sending in a Name Card

 


You’re still sleeping while the sun’s high, my dear prime minister,
The name card at the front door is about to grow a whisker.
If you’re meeting the sage Ju Gong in your dreams,
Tell him the story of To Ak in those years.

Yun Hyo Son, aka Chu Gye (1431 ~ 1503) Minister of justice

 
▣주해(註解)
1) 투자 : 명함을 내 놓음. 면회를 청하는 일
2) 자지 : 명함을 적은 종이
3) 주공 : 옛날 주나라 무왕의 동생 주공단(周公旦), 성왕을 잘 보필했다.
4) 주공은 어진 사람이 찾아오면 머리를 감다가도 머리를 움켜 쥔 채 만나러 나왔고 밥을 먹다가도 밥을 뱉아 내고 나와서 만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