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제산 시조시인] 春日哀傷 (봄날의 애상) 哀悼四月十六日歲月號 沈沒犧牲者英靈 세월호 침몰 희생자 영령을 애도하며 소병호 삼가지음 四月誰稱殘忍月 누가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하였는가? 三春佳節冷於氷 삼춘가절 볕뉘가 얼음보다 차갑구나 國家海喪未來棟 미래의 일꾼을 바다에 빼앗긴 이 나라와 父母胸埋希望燈 희망의 등불을 가슴에 묻은 어버이들 痛哭衝天人不返 통곡이 하늘을 찔러도 죽은이는 대답 없고 哀傷渡境世皆應 슬픔은 국경을 넘어 세계를 울리나니 怒濤萬里黃昏沒 해저무는 수평만리 물결만 드높은데 何處芳魂待救繩 꽃다운 넋들 어디서 구원의 밧줄을 기다리나?
[그린경제/얼레빗 = 제산 기자] 봉황대 _화산(華山) 정상수(鄭相秀)_ 鳳凰一去復來亭 (봉황일거부래정) ᄀᄋᄀᄀᄀᄋ⊚ 竹谷溪山倍有靈(죽곡계산배유령) ᄀᄀᄋᄋᄀᄀ⊚ 掃石當時隨筆古(소석당시수필고) ᄀᄀᄋᄋᄋᄀᄀ 披雲今日見天靑(피운금일견천청) ᄋᄋᄋᄀᄀᄋᄋ 詩情謾發狂忘老(시정만발광망로) ᄋᄋᄀᄀᄋᄋᄀ 花事頻仍醉不醒(화사빈잉취불성) ᄋᄀᄋᄋᄀᄀ⊚ 第待斜陽芳草路(제대사양방초로) ᄀᄀᄋᄋᄋᄀᄀ 許多歸意暫車停(허다귀의잠거정) ᄀᄋᄋᄀᄀᄋ⊚ ▲
[그린경제/얼레빗 = 제산기자] 봉황정 -덕헌 이삼기- 鳳凰臺上鳳凰亭 (봉황대상봉황정)ᄀᄋᄋᄀᄀᄋ⊚ 聞道鳴岩千古靈 (문도명암천고령)ᄀᄀᄋᄋᄋᄀ⊚ 捿鶴啼猿惟日樂 (서학제원유일락)ᄋᄀᄋᄋᄋᄀᄀ 孤松脩竹四時靑 (고송수죽사시청)ᄋᄋᄋᄀᄀᄋ⊚ 半宵淸趣月光好 (반소청취월광호)ᄀᄋᄋᄀᄀᄋᄀ 白首閑情塵夢醒 (백수한정진몽성)ᄀᄀᄋᄋᄋᄀ⊚ 活畫江山皆悅眼 (활화강산개열안)ᄀᄀᄋᄋᄋᄀᄀ 如雲賀客去還停 (여운하객거환정)ᄋᄋᄀᄀᄀᄋ⊚ ▲ 봄의 기쁜 눈 (운곡 강장원) 한글
[그린경제/얼레빗 = 제산 기자] 봉황정 예찬시 13 조정희 鳳凰臺建鳳凰亭(봉황대건봉황정) ᄀᄋᄋᄀᄀᄋ⊚ 天闢鳴岩地秘靈(천벽명암지비령) ᄋᄀᄋᄋᄀᄀ⊚ 一帶柳川流水活(일대유천유수활) ᄀᄀᄀᄋᄋᄀᄀ 千重楓岳捲雲靑(천중풍악권운청) ᄋᄋᄋᄀᄀᄋ⊚ 聊將詩賦爭相賀(요장시부쟁상하) ᄋᄋᄋᄀᄋᄋᄀ 更擧壺樽醉未醒(갱거호준취미성) ᄀᄀᄋᄋᄀᄀ⊚ 慶祝美哉輪奐頌(경축미재윤환송) ᄀᄀᄀᄋᄋᄀᄀ 入聞客子返車停(입문객자반거정) ᄀᄋᄀᄀᄀᄋ⊚ ▲ 선비들은 시문을 서로 겨룬다
안처순과 조광조와의 해후(邂逅) 사제당(思齊堂)과 영사정(永思亭) [그린경제=제산 기자] 남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금지면(金池面) 내기(內基) 마을에 사제당과 영사정이라는 고옥(古屋)이 있는데 관광가이드가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특히 2000. 9. 2에 설립된 사제당 기념관에는 1994년 각각 보물 제 1197호와 제 1198호로 지정된 기묘제현수필(己卯諸賢手筆)과 기묘제현수첩(手帖)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보물은 한국학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황폐를 겪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기묘제현수필은 사제당(思齊堂) 안처순(安處順)선생이 구례현감으로 부임할 때 동료와 붕우(朋友)들이 송별의 정표로 써준 서(序)와 시(詩)들을 모아 하나의 첩(帖)으로 장정(裝幀)한 것으로 이 속에는 조광조김정김구기준 등의 글이 들어 있다. ▲ 영사정(永思亭) 2代에 걸친 효도 지금으로부터 사백여년 전에 사제당을 처음 지은 안처순 선생의 약력을 먼저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1492(성종23)~1534(중종29). 자는 순지(順之). 호는 사제당 또는 기재(幾齋). 본관은 순흥(順興)으로 문성公 안향(安珦)의 9대손. 기(璣)는 성균관
화산옹(華山翁) 바위의 전설 [그린경제=제산 기자] 남원에서 서쪽으로 50여리 떨어진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에 책여산(冊如山)이라는 명산이 있다. 산 중턱에 화산옹이라는 이름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옆에서 보면 흡사 가을 메뚜기가 벼 이삭에 앉아 입질하는 것 같고 뒤에서 보면 몸집이 우람한 장군이 투구를 쓴 것 같다. 앞모습은 도포 입은 백발노인옹이요. 머리는 영락없이 미륵불이다. 그래 그런지 별명도 가지가지다. 메뚜기바위. 장군바위. 미륵불. 화산옹. 아마도 이렇게 많은 별명을 여러 개 가진 명물도 없을 것이다. 아득한 옛 날부터 화산옹은 신기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풍년이 들려면 아름다운 백색을 띄웠고 흉년이 들려면 흑색을, 큰 불이 나거나 돌림병이 퍼질 때에는 청색을 띄었다. 그리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에는 적색으로 변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행인이 채계산(책여산)을 지나갈 때, 화산옹에게 경의를 표하고 가면 무사하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다리를 삐거나 하는 사고를 당하기 일 수였다. 말이나 수례 탄 이도 이와 같았다. 그리하여 화산옹은 외경과 민간신앙의 기복 대상이 되었으니, 흉년이 들
영광에 부활한 유자광 고향에서 배척받는 무령군 유자광 [그린경제=제산 기자] 전장(前章)에서 무령군(武靈君)은 희대의 영걸이라고 언급되었거니와 이는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그를 미화하거나 우상화하기 위한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검증된 객관적인 사료(史料)를 토대로 하여 제 3자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냉정하게 내린 평가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령군은 탯자리인 남원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배척당해 왔다. 지금도 유자광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보다는 가로 젓는 사람이 더 많다. 따라서 그에 대한 인식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령군의 묘소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최근에 이백면 영광 유씨 선산에서 훼손된 망주석(望柱石)이 발견되었는데 그 지점이 무령군의 묘역(墓域)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무성할 뿐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오래된 거구(巨軀)의 유해가 한 구 나와 유씨 문중에서 이를 무령군의 유해가 분명하다고 믿고 행정당국에 그 유전자를 검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관계자로부터 역적의 유전자 검사에 쓸 예산이 어디 있느냐?라는 투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일도 있다고 들었다. 역
[그린경제=제산 기자] 노진과 강릉기생 ◑산 넘고 물 건너 장가길 천리 여기는 강릉도호부. 부사가 대청마루에서 기생 서너 명과 술판을 벌이고 있다. 그래 네가 예까지 나를 찾아온 연유가 무엇이냐? 부사는 통인의 안내를 받고 들어온 애띈 초립동에게 퉁명스럽게 묻는다. 당숙. 우선 제 절부터 받으시지요. 초립동은 나붓이 큰절을 올리고 나서 어머니의 심부름이라며 서찰을 꺼내 올린다. 서찰을 읽는 부사의 표정이 굳어진다. 참으로 얌체들이로군.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총각은 눈이 캄캄해진다. 너 듣거라! 관청은 공무가 아니면 함부로 들어오는 법이 아니다. 이곳은 네가 사사로이 머물 데가 못 된다. 시장할 테니 요기나 하고 가거라. 동기(童妓)하나가 한쪽 구석에 밥상을 차려준다. 개다리소반에 노잣돈 몇 닢과 함께 밥 한 그릇과 나물 몇 가지가 전부다. 부사의 식전방장(食前方丈)의 주안상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부사는 당질에 대한 덕담이나 가족에 대한 안부는 한마디도 묻는 법이 없고 그저 기생들과 수작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순간! 초립동은 발로 밥상을 냅다 걷어찼다. 밥상이 천정까지 치솟았다가 마루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나 산산이 흩어진다. 네 이놈 이
두 개의 명당 [그린경제=소병호 기자] 삼정승 보다는 사정승! 한 지관이 수더분하게 생긴 촌부(村夫) 구산자(求山者)에게 지세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자리는 천금을 주고도 못삽네다. 좌청룡자락과 우백호자락이 대칭을 이루며 앞들을 소쿠리처럼 보듬고 있고 앞들언저리를 활처럼 감아 흐르는 도랑 너머로 탕건 모양의 안산(案山)이 다소곳이 업드려 있다. 그 뿐이랴? 뒷 날등이 힘차게 뻩어 내려오더니 용머리처럼 불쑥 치솟았다가, 다시떨어지듯 미끄러져 내리다가 딱 멈춘 곳! 굳이 지관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명당 터다. 윤생원, 이 안에 묘자리가 두 개 있소. 하나는 삼정승 날 자리이고 또 하나는 사정승 날 자리요. 어떤 자리에 쓰시겠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시고 말 것이 어디 있겠는가? 사정승 날 자리에 써야지. 정승이 뉘집 강아지 이름인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나온다는데 이런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칠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처음에는 그저 가난이나면하기를 바랐던 구산자는 욕심이 발동하여 앞뒤잴 것 없이 사정승 날 자리에 조상을 이장했다. 정승의 버릇을 고친 영특한 소년 윤효순의 아버지 윤처관(尹處寬)은 의정부 녹사로 있었다. 처관은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