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가람 기자] 남원문화대학에서는 답사활동을 통하여 호남3대석물로 알려진 윤효손선생, 최상중선생, 최시옹 선생의 묘동을 답사하였다. ○문효공 윤효손(文孝公 尹孝孫) 묘동
-윤효손 신도비 (국가보물 584호) 전남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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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공 윤효손의 화려한 묘이다. 상석 및 석비 그리고 석등 등 그 예술성이 뛰어난다.
▷문효공(文孝公) 윤효손(尹孝孫)은 병자호란 때 삼학사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에 붙잡혀가 끝까지 절의를 굽히지 않은 충정공(忠貞公) 윤집(尹集)을 들 수 있는데 윤효손이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의 사위가 된데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윤효손의 이야기..
“제 아들놈이 장난을 친 모양입니다.” |
최상중(崔尙重)은1551(명종6)∼1604(선조37) 자는 여후(汝厚) 호는 미능제(未能薺) 영의정 항(恒)의 6대손 어모장군(御侮將軍) 영(穎)의 아들 류희춘(柳希春)의 문인 1575(선조9)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89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의 계청(啓請)으로 그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었다. 1600년 헌납(獻納)·지평(持平)을 거쳐 이듬해 장령(掌令)·부수찬(副修撰)·교리(校理)를 역임하고 1602년(선조35) 사간(司諫)을 마지막으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도승지(都承旨)에 추증(追贈), 이어 아들 연(衍)의 공으로 대사헌(大司憲)에 가증(加贈) 남원(南原)의 노봉서원(露蜂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
↑전남 구례군 구례읍 신월리 잔수에 자리한 최시홍 선생의 묘동, 커다란 규모의 상석으로 한덩어리인 원석을 사용하여 아름다운 상다리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최시옹(崔是翁)은 1646년(인조 24)∼1730년(영조 6).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한신(漢臣), 호는 동강(東岡). 부는 최휘지(崔徽之)이다. |
↑최시옹 선생의 묘동은 규모나 짜임새가 웅장하고 조화롭다. 특히 상석과 묘비
그리고 문관석 등이 규모도 있으며, 조화를 잘 아루고 있다.
남원시 사매면 계수리 (수동부락)에 자리한 최상중 선생의 묘역으로 묘비 및 상석
그리고 문관석 규모가 대단하다. 짜임새나 조화움 보다는 규모가 웅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