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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김슬옹, 창비≫ 책 표지 |
김 박사는 이번에 창비를 통해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를 펴냈다. 이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는 창비가 소년 출판 분야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자 제정한 창비 청소년 도서상 제3회 학습 기획 부문 수상작에 당선되어 나온 책이다. 이 책은 문자의 힘을 일찍이 간파한 임금 세종과 그가 만든 문자 ‘훈민정음’에 대해 풀어 쓴 청소년 교양서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는 물론, 세종이 새 문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사회적 배경, 많은 난관을 이겨 내며 훈민정음을 만들고 반포한 사연과 한글의 우수성까지 문자 안팎에 얽힌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짚어 냈다.
책을 열자 맨 먼저 다가서는 것은 만화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청소년들에게도 흥미로운 시작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리라. 만화에서 김훈민이라는 아이와 윤정음이라는 아이가 타임머신 세종7호를 타고 1449년 10월 9일 세종대왕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폭포수처럼 훈민정음창제와 반포에 관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첫 이야기는 책과 음악을 좋아하던 ‘이도’‘라는 아이이다. 임금이 되기 전의 이도는 얼마나 책을 좋아 했던지 아버지 태종이 책을 감출 정도였다. 이후 이 책은 한글 창제 원리만을 단편적으로 서술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세종이 정치적․사회적인 사건을 겪고 공부하며 새 문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또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 창제하고 반포하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으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도 살펴보면서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일화와 약간의 허구를 보태 독자들이 한글 창제 과정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특히 이 책에는 청소년에게 아직 생소할만한 한글 자료가 소개되어 독자의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정조가 원손과 세손 시절에 쓴 한글 편지는 가족 간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지금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1장에 소개된 정조가 신하에게 보낸 한문 편지는 한문으로 써내려간 글귀 중간에 한문으로 옮기지 못해 ‘뒤쥭박쥭(뒤죽박죽)’이라는 표현을 한글을 그대로 가져다 쓴 부분이 재미있다.
그밖에도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포로로 잡힌 조선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적은 한글 포고문과 땅을 빼앗긴 억울한 사연을 구구절절 적어 관아에 제출한 백 씨 여인의 “발괄(지방관에게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문서)”을 소개하여 조선 후기의 한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세종 당시와 현대의 한글만을 점찍듯 배우고 마는 청소년들이 오해하기 쉬운 한글창제와 보급에 관한 내용이 재미나게 소개되고 있어 이 책의 진가를 더해준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지닌 장점은 각 장의 시작에 현대의 중학생 ‘훈민’이와 ‘정음’이가 세종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만화 ‘세종에게 묻다’가 실려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고 계속 읽어 보고 싶게 이끈다. 그리고 각 장 끝에 자리한 ‘이야기 주머니’는 역사적 일화에 지은이가 상상력을 더 한 것으로 청소년들이 이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도록 한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 가장 뛰어난 글자로 디지털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의 주역이 되게끔 한 일등공신 한글이 왜 뛰어난 글자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창제와 반포가 이루어졌는지 잘 모른다. 이제라도 우리는 이 책을 청소년과 함께 읽음으로써 자랑스러운 한글 겨레임이 부끄럽지 않도록 할 일이다.
세종학 전문대학원과 세종학연구소를 설립하는 게 꿈
“창제 과정은 일종의 비밀 프로젝트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고민은 세종이 자신이 직접 쓴 이른바 ‘어제 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 그래서 (한자를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한자 모르는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우리나라 말과 중국말은 말소리도 다르고 어순도 매우 다른데 중국말을 적는 한자와 한문을 가져다 쓰는 절대적 언어 모순이 답답했을 것이다.” -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자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워낙 좋아했던 세종은 문자를 통한 또는 책을 통한 소통을 중요하게 여겼다. 세종은 누구나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책을 통해 백성을 가르치고 싶었고 그래서 한자 모르는 백성들도 글을 읽는 세상을 꿈꾼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 반포를 준비할 때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최만리 외 6인이 반대 상소를 올린 시점은 훈민정음 28자 창제가 완벽하게 끝난 두 달이 지난 때였다. 최만리는 창제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반포를 반대한 것이었다. 이들에게 세종은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에는 자음과 모음이 몇이나 있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누가 이를 바로잡을 것이냐’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 소리와 문자에 관한 자연의 이치를 아느냐는 것이었다. ‘하늘이 맑다.’라고 말하고 그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 소리와 문자를 정확히 연구해서 우리가 쓰는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문자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문자 반포를 반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 훈민정음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던 정책은 무엇일까? “세종 당대에는 하급 관리 과거 시험 과목으로 훈민정음을 도입한 것이었다. 국가 시험은예나 지금이나 뭔가를 가장 빠르고 널리 퍼뜨리는 힘이다. 불경언해서와 같은 백성들과 친근한 책을 새 문자로 번역하여 펴낸 것도 매우 중요한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조선시대 내내 이어진다.” - 훈민정음이 백성 사이에 완전히 정착된 것은 대체로 언제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5세기 말에서 16세기로 추정한다. 그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삼강행실도 언해본 같은 책 지방 보급이 15세기말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세조 때 간행된 각종 불교언해서가 지방 사찰로 전달된 것도 이 때이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한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삼강행실언해서≫와 같은 국가 이념서에 의해서였다. 성종은 15세기 후반기인 1471년 3월 28일(성종 2)에 ≪삼강행실≫을 여러 고을의 교생(校生)으로 하여금 강습(講習)하게 할 것을 명했다. 이것이 언해서를 통해서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과정으로 보았을 때 지방 양반들과 양반 집안의 부녀자들, 각 지방의 서당이나 향교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이 15세기 후반에 지방에까지 보급되었을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1485년에는 한성 시장에서 언문 투서 사건까지 벌어진다. 또한 1488년에는 ≪향약집성방≫처럼 일상에 절실한 것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 펴게 하였고, 이런 흐름 속에서 16세기 초인 1504년(연산 10) 익명으로 된 그 유명한 연산군을 욕하는 언문 투서 사건이 벌어진다.“ - 한글의 우수성 중 가장 훌륭한 것이라면? “그크끄, 드트뜨, 브프쁘”와 같이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와 같은 섬세한 우리말소리를 짜임새 있고도 쉽게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곳에서 나는 글자끼리 닮아 있는데다가 예사소리 글자는 예사소리 글자대로, 거센소리는 거센소리 글자대로, 서로 닮아 있어 기억하기도 편하고 쓰기도 편한 것이 가장 우수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 훈민정음을 연구하는 학자로 애로사항이 있다면? “훈민정음 연구자를 제대로 대우해 주는 대학도 연구소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연구를 위해 일단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훈민정음 연구에만 몰입할 수가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세계 최고의 글자를 가진 나라가 그 글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 지은이는 이번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말고도 수많은 책을 낸 것으로 안다. 대충 몇 권이며, 어떻게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단독 저술 17권, 공동 저술 21권 모두 38권을 냈다. 철도고등학교 1학년 때 한글운동에 뛰어들어 우리말글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책을 내게 되었다. 또한 공부하는 게 직업인 학자이기에 1989년 대학원에 입학한 뒤 지금까지 사회봉사 시간 외는 오로지 학문 연구에만 매달려 왔던 것이 자연스럽게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또 나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다. 그래서 그 비결은 우리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일단 이 책을 1,000만권쯤 팔고 싶다. 그 인세를 모아 세종학 전문대학원과 제대로 된 세종학연구소를 설립해야만 한다. 그리고 ‘훈민정음학(한글학)’과 ‘세종학’이란 학술서를 5개 국어로 펴내는 것. 이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