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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금석문 톺아보기 33]인각사보각국사비(麟角寺普覺國師碑)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수리 인각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고승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 : 1206, 희종 2∼1289, 충렬왕 15)의 비.

민지(閔漬)가 짓고 문인 죽허(竹虛)가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1295년(충렬왕 21)에 세웠다. 현재 비는 비신의 극히 일부가 남아 있다. 왕희지 글씨를 얻기 위해 일찍부터 과도한 탁본이 이루어져 비의 손상이 심했지만 대신 탁본이 20여 종 남아 있어 비의 전면은 완전히 복원이 가능하고 음기도 거의 복원할 수 있다.

비문의 내용은 보각국사가 경주에서 태어나 출가하여 승과에 급제하고 포산에서 수행하다 몽고 침공을 맞아 포산에 은거하고 선월사 오어사 인홍사 운문사 등에서 주석하다 국사가 되고 인각사에 물러나와 입적한 생애를 기술하였다.

원 간섭기에 국사(國師)라 칭하지 못하고 국존(國尊)이라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 비 제액에서는 보각국사라고 하는 등 칭호의 문제를 살필 수 있고, 입적하기 전에 제자들과 문답한 내용이 상세하며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백 여권의 저술을 나열한 것도 특이하다.

   
▲ 인각사보각국사비(麟角寺普覺國師碑)

음기는 문인 산립(山立)이 지었는데 국사의 행적 몇 가지와 문도들을 승려와 재가로 나누어 열거하였다. 대선사, 선사, 수좌는 각각 사찰 이름과 함께 그리고 삼중대사 이하는 이름만 승계에 따라 열거하였는데 대선(大選), 입선(入選), 참학(參學) 등이 눈에 띄며 재가신도는 십 여인의 재추를 비롯하여 40여 인이 확인된다.

연대:1295년(충렬왕21년)
문화재 지정:보물 - 428호
크기;높이 6척(尺), 폭 3척(尺) 5촌(寸), 글자크기 6분(分)

출토지, 소재지: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

<출처;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