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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아한글은 왜 제2의 한글 창제였나?

한컴, 아래아한글의 역사적 의미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기자]   필자는 주로 국어선생이 될 국어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학기 초에 꼭 하는 얘기가 있다.  

여러분은 보고서를 아래한글로 내게 될 것이다. 엠에스워드 문서는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만 허용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국수주의가 아니다. 전 세계 문서작성기는 다국적 기업인 엠에스워드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들이 아래한글도 삼키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것은 아래한글 만든 사람들이 잘 만든 탓도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의 힘이었고 한글의 자부심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 앞에 토종 소프트웨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그 기적의 의미를 국어 교사가 지켜가지 않는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이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가꾸는 것이다. 둘째 정품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디지털 시대의 한글을 지키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학생들한테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줄 것이다. 나 또한 1989년 아래한글 1.0부터 정품을 사용하고 있다.   

필자가 왜 특정 회사의 홍보맨이라는 오해를 가끔 받아가면서까지 이렇게 교육하는 핵심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래아한글이야말로 디지털 시대 제2의 한글 창제이고 국어 선생이라면 그런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가꿔나갈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편리하게 글을 쓰고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고 나누게 된 것이 제 2의 혁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혁명이란 말인가.
 

   
▲ 한글과컴퓨터사의 <아래아한글 2010>

한글 혁명은 6단계로 진행되어 왔다. 1단계 혁명은 세종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한 것이다. 2단계 혁명은 1986년에 독립신문이 한글전용 띄어쓰기(세로쓰기)로 창간된 것이다. 한글 편지와 한글전용체 전통은 이미 있었으나 근대적 공공 매체로서는 독립신문이 획기적인 것이었다.  

3단계 혁명은 1933년 일제 강점기 때에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을 제정한 것이다. 우리 손으로 한글 맞춤법을 제정함으로써 한글을 좀 더 합리적으로 편리하게 부려 쓰게 되었고 한글을 통한 독립운동의 힘을 더 키울 수 있었다. 4단계는 1988년 한겨레신문이 가로쓰기 한글전용 신문을 온 국민의 힘으로 창간한 것이다. 5단계가 1989년에 컴퓨터 문서작성기 아래아한글 1.0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한글 시대를 연 것이다. 6단계가 모바일에서의 한글 자판 개발이다.  

그렇다면 5단계 혁명이 왜 제2의 한글 혁명인지를 따져 보자. 한글 창제와 반포는 한자와 한문으로 인한 문자 생활의 절대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였기에 혁명이었다. 지배층은 그런 절대 모순에 안주하여 한자와 한문을 그들만의 특권으로 만들었다. 문자(한자)의 독점은 지식의 독점이었으며 권력의 독점이었다. 

사람다운 삶은 문자를 통한 소통이 가능해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와 한문으로는 근본적으로 그런 소통이 불가능했다. 굳이 신분제가 아니더라도 한자가 가지고 있는 뜻글자로서의 어려움과 우리말과 구조가 다른 한문쓰기가 자유로운 소통의 절대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18세기, 19세기 때의 정약용을 비롯한 실학자들의 실학 정신이 반쪽으로 머문 것은 그런 한문의 절대 모순을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글과 같은 쉬운 문자를 통한 지식의 소통과 나눔을 거부하였다.  

흔히 한글은 컴퓨터와 찰떡궁합이라고 얘기한다. 컴퓨터 자체가 서양에서 개발되어 마치 컴퓨터와 잘 어울리는 문자는 영어 알파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컴퓨터의 단순 과학 원리와 일치되거나 어울리는 문자는 한글이 더 적합하다.  

컴퓨터가 0과 1의 숫자만으로 무궁무진한 세계를 연출해 내듯이 한글의 과학적 원리 또한 소수의 문자와 규칙적인 결합으로 무궁무진한 조합된 글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한글의 과학 원리를 제대로 된 컴퓨터용 문서서 작성기로 탄생된 것이 아래아한글 1.0이니 이를 어찌 제 2의 혁명이라 하지 않겠는가. 

아래아한글 상호를 ‘ᄒᆞᆫ글’이라 하여 아래아(·)를 넣은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비록 아래아를 지금은 쓰고 있지 않지만 그 글자야말로 세종과 훈민정음의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루 알다시피 아래아는 ‘하늘아’로 하늘을 본뜬 글자이다. 하늘은 우주의 중심이며 자연의 중심이다.(‘·’의 명칭을 ‘하늘아’로 고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김슬옹(2013). 옛한글 아래 아(·) 명칭 '하늘 아'로 고치자. <경인일보> 2013.5.29. 12쪽” 참조.)  

하늘을 중심으로 땅과 사람과 어울리되 위와 오른쪽에서 어울리니 가 되고 아래와 왼쪽으로 어울리니 가 되고, 하늘이 두 번씩 어울리니 각각 , 가 되었다. 이렇게 기본자 11자가 완성된다.  

   
 

여기에서도 세종의 독창적인 생각이 담겨 있다. 보통 전통 동양 사상에서는 음양 이분법의 조화를 얘기하지만 여기서는 중성까지 삼조화로 나아갔다. 이러한 사상 체계가 비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호호/하하, 후후/허허”와 같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우리의 말소리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 문자로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말소리를 가장 정확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과학적으로 적기 위한 전략으로 보아 한다. 이런 전략이 있었기에 기본자 11자 이외에 무려 18자의 모음의 복합 낱글자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모음을 가장 정확히 적을 수 있는 모음 짜임새가 되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영어의 ‘strike[straik]’는 문자로 보면 모음이 두 개 들어가 있고 발음으로는 이중모음 하나가 들어 있어 1음절 낱말이다. 그러다 보니 s와 t는 모음 없이 발음해야 하므로 혀를 필요 이상으로 굴리게 된다. 또한 이때의 자음 발음이 자음 단독 발음인지 약간의 모음이 들어가 있는 건지 논란이 된다.  

그런데 한글에서는 ‘스트라이크’와 같이 자음과 모음이 균형 있게 결합이 된다. 모음이 체계 있게 발달되어 있는 가능한 음의 조합이다. 물론 strike를 우리식대로 ‘스트라이크’라고 발음하면 콩글리시가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우리말이 자음과 모음이 조화롭게 발달되어 있고 세종은 그런 우리말의 특성을 실제 문자로 구현하여 천지자연의 문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글은 과학의 글자이기 이전에 자연의 글자이다. 자연의 소리, 자연스런 사람의 말소리를 가장 잘 적을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은 사람을 작은 우주라 생각했고 그러한 사람과 천지자연의 우주가 잘 어울려야 진정한 천명에 의한 사람의 길이라 생각했다. 문자를 통해 그러한 생태주의 천명사상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 한글이다.  

한컴의 아래아한글을 ‘ᄒᆞᆫ글’로 적으면 현대 맞춤법에는 어긋나지만 상품의 브랜드로서의 상징성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아래아한글에서 위에서 보기를 든 아래아가 결합된 모음들이 기본 자판이나 전각자로 구현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국제 코드와 글꼴 개발의 복잡한 문제 때문이겠지만 한컴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문체부의 훈민정음체로 변환하면 글자로는 구현이 되지만 가능하면 아래아한글의 기본 글꼴로 구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