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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담긴 세상, 말로 바꾸는 세상

교과서의 ‘말에 담긴 세상’을 깁고 다듬으며

[그린경제/얼레빗 = 김슬옹 교수] 

이 글은 전국국어교사모임(2002). 중학교 2학년을 위한 우리말 우리글[대안 교과서]. 나라말. 218-221.”에 최초로 실렸다. 그 뒤로 말의 중요성, 7<독서> 교과서, 민중서림 , 244”, “말에 담긴 세상. 2007 교육과정 교과서(2011-2012)”, “말에 담긴 세상, 2012학년도, 비유와 상징 출판사. 중학교 2학년 1학기 교과서. 133-135.”, “말에 담긴 세상, 2012학년도 중학교 생활국어 교과서, 금성출판사, 중학교 2학년 1학기 생활국어 교과서 118-121.”, “김슬옹(2013). 열린 눈으로 생각의 무지개를 펼쳐라. 글누림. 254-259에 실리는 과분한 영예를 누렸다. 일부를 다듬어 여기 싣는다.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고, 말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다. 거울에 세상의 온갖 것이 비취듯 말에는 세상살이의 온갖 모습이 비취고, 그릇에 살림살이의 갖가지 것들이 담기듯 말에는 세상살이의 갖가지 속살들이 담긴다. 아래 사진의 표어를 보자. “앞 차는 가족처럼, 뒤차는 친구처럼이라고 했다. 비록 짧지만 이 두 마디 말에도 우리 사회의 속살과 겉모습이 드러나 있다. 우선,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며 양보하려는 마음을 넉넉히 지니지 않아서 안타까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필 가족처럼, 친구처럼이라 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는 아낀다는 사실도 알 만하다. 그 밖에도,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는 표어가 많은 것에서 우리나라의 교통질서가 어지럽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표어 하나에서도 세상의 겉과 속을 적잖이 들여다볼 수 있다. 

   
▲ 한강다리 펼침막 "앞차는 가족처럼, 뒷차는 친구처럼"

말은 세상을 담는 거울
 

이제 우리가 나날이 쓰는 말을 조금만 살펴보자. 먼저, 아래 만화를 보면 어떤가. 이 만화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청소년들이 캡숑, 같은 말을 서슴없이 쓴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말을 사랑하자고 하면서도 그런 말들이 마치 본디 우리말인 것처럼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쓴다는 것을 걱정하는 만화다.  

사실, 요즘에는 청소년들끼리 자주 쓰는 말을 어른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수가 많다. “우리 오늘 번개 있는 거 알지?” 하는 말은 이제 제법 널리 알려진 말인데, 여기 쓰인 번개는 컴퓨터 통신에서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 만나는 것을 뜻한다. 컴퓨터의 누리그물(인터넷)을 널리 쓰면서 생겨난 말이기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쉽게 들을 수 없던 말이다. 아직도 컴퓨터 통신을 잘 모르는 어른들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지난날에는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러 밥맛이 없다.’ 또는 밥맛 떨어진다.’ 하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인지 이럴 때에 밥맛이야!’ 하고 말하게 되었다. 똑같은 느낌을 나타내면서󰡐~이 없다고 하다가 이야로 바뀐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밥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 밥맛을 잃는 것은 아주 큰일 날 일이었으나 요즘 젊은이들에게 밥은 여러 먹거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밥맛이 없으면 피자나 라면을 먹으면 그만인 것이다. ‘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니까 말의 쓰임도 바뀐 것이 아닐까? 

말은 삶을 아로새기는 무늬 

북극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복잡한 말을 쓰지 않지만 눈을 나타내는 말은 놀랄 만큼 여러 가지라 한다. 그것은 사시사철 눈이 쏟아지고 생활이 거의 눈 오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에스키모라고 부리는 이누이트족의 눈에 관한 어휘들은 눈발만큼이나 다채롭다.

바람에 날리는 눈은 피크투룩’, 눈보라가 되어 내리는 눈은 피크투룩투크’, 내리는 눈은 콰니크’, 가볍게 내리는 눈은 콰니아라크’, 가을에 내리는 첫눈은 아필라운’, 깊고 부드러운 눈은 마우야’, 쌓여서 녹는 눈은 아니우’, 가볍고 부드러운 눈은 아쿨루라크’, 설탕 같은 눈은 푸카크’, 축축한 눈은 마콰야크’, 젖은 눈은 리사크’, 젖어서 내리는 눈은 콰니크쿠크’, 표면에 쌓이는 눈은 아푼이라 부른다.  

우리 겨레도 오랫동안 벼농사에 기대어 살아 왔기 때문에 벼와 쌀을 나타내는 낱말이 아주 여러 가지로 발달했다. 이를테면, 모판에 뿌리는 벼의 씨앗은 볍씨’, 그게 모판에서 싹이 나 자라면 ’, 알맞게 자란 모를 쪄서 논에 심으면 ’, 벼에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나락이라 한다. 나락이 익으면 벼베기를 하고 타작을 해서 열매를 떨어버린 벼는 ’, 짚과 갈라진 나락을 말리려고 멍석에 널면 우케’, 우케를 방아에 찧어서 껍데기를 벗기면 알맹이는 이고 껍데기는 .  

겨에서도 잘게 부수어진 가루는 등겨’, 부수어지지 않고 굵게 남은 것은 왕겨’, 방아에 찧어도 껍질이 벗겨지지 않고 남아서 쌀에 섞인 나락은 ’, 나락이 익도록 기다리지 않고 벼를 미리 베어서 열매를 떨어 삶아서 찧은 알맹이는 찐쌀’, 방아를 찧다가 부스러진 쌀의 조각은 좁쌀이다. 쌀을 솥에 넣고 물을 부어 지으면 인데, 물을 약간 적게 부어 단단하게 찌면 고두밥’, 물을 아주 넉넉하게 부어 오래 쑤면 흰죽’, 물을 더욱 많이 붓고 낟알이 없어지도록 쑤면 미음이 된다. 밥이라도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는 밥은 또는 멧밥이라 부른다.  

북극 지방의 사람들이 눈 속에 살면서 눈을 나타내는 말을 아주 여러 가지로 쓰듯 우리도 비가 많이 오는 자연 환경 속에 살기 때문에 비를 나타내는 말을 갖가지로 쓴다. 가랑비, 눈비, 는개, 먼지잼, 바람비, 보슬비, 부슬비, 안개비, 여우비, 이슬비, 장대비, 진눈개비, 호미자락……. 이런 낱말들이 모두 비의 이름들이다. 요즘은 온갖 산업들이 일어나 농사의 값어치가 떨어진 탓에 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상이 되어서 그런 말들을 알뜰하게 쓰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비에 농사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말과 세상이 얼마나 서로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서로 얽혀 있는지를 알 만하다. 

말은 세상을 바꾸는 힘 

   
▲ 말은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바꾼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말로 이 세상과 어우러져야 좋을지 생각해 보자. 부모 가운데 한 분만 살아 계시면 편부모라고 말해 왔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이 편부모라는 말을 버리고 한부모`라는 말을 쓰려고 한다. 왜 그럴까. 편부모라는 말에는󰡐완전하지 않은 결손 가정의 부모라는 편견이 깔려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때문인 듯하다.  

살다 보면 언제나 두 분 부모가 함께 살아 계시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반드시 두 분 부모가 모두 계셔야만 완전한 가정이 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장애인장애우로 부르려는 것이나,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이라 하지 않고 비장애인이라 부르려는 것도 그런 노력들 가운데 하나다.  

물론 말을 바꾼다고 세상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장애우라고 바꾸어 말하는 것이 평등하고 따뜻한 세상으로 다가가는 첫걸음이 되지는 않을까? 이처럼 말은 세상을 비추고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구실도 한다.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 이 세상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쓰는 말을 곰곰이 살피면서 삶과 세상의 모습도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쓰는 말들을 자주 돌아보고 살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다를 터이기 때문이다. 

* 볍씨: 경상도, 전라도에서는 씻나락이라고 한다.
* : 경상도에서는 라고 한다.
* 고두밥: ‘지에밥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