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5 (월)

  • 구름많음동두천 15.2℃
  • 구름조금강릉 14.3℃
  • 구름많음서울 15.2℃
  • 구름많음대전 16.8℃
  • 흐림대구 14.9℃
  • 구름많음울산 13.9℃
  • 구름많음광주 16.4℃
  • 흐림부산 15.4℃
  • 구름많음고창 16.3℃
  • 흐림제주 16.7℃
  • 흐림강화 14.4℃
  • 구름많음보은 13.2℃
  • 구름많음금산 16.3℃
  • 흐림강진군 15.9℃
  • 흐림경주시 14.5℃
  • 구름많음거제 15.2℃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첨단과학 자명종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어라

“세종정신”을 되살리자 7, <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의 의미 >

[그린경제/얼레빗=김슬옹 교수]  때는 조선시대, 1434년 어느 겨울. 하루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어스름이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더욱 짧았다. 남루한 한 상인이 한양 도성을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성남 남한산성 근처 모란 시장으로 물건을 팔러 나갔던 이막동이라는 상인이었다. 한양(서울) 도성 근처에 왔을 때 도성 쪽에서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아이쿠.. 큰 일 났다. 곧 도성 문이 닫히겠구나. 얼른 뛰어가야겠다.” 

다행히도 상인은 종이 열 번 정도 울렸을 때 도성문에 도착했고 아슬아슬하게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들어오고 한 숨 돌렸을 때 28번의 종소리가 끝이 났다. 그 상인은 성 안 한양 시장이 있는 운종가(지금의 서울 종로) 종루 근처에서한 동료 상인의 집에서 잠을 잤다. 새벽이 되자 종루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장이 열리는 이천 쪽으로 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났다. 꼬끼오 닭이 우는 새벽이었다. 33번 울리자 성 밖으로 나서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 조선시대 4대문의 하나인 숭례문, 4대문은 도성을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 33회의 파(바라)와 28회의 인정(인경)을 쳐서 성문을 여닫았다.

이렇게 조선 시대 때는 성이 닫힐 때는 인경이라 하여 종을 28번 치고 성이 열릴 때는 파루라 하여 33번을 쳤다. 성 문을 닫는 인경은 보통 13점에 쳤고 성 문을 여는 파루는 53점에 쳤다. 종은 낮 12시쯤인 정오에도 쳤다. 밤 시간은 초경(1)부터 오경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밤 길이에 따라 한 경의 길이는 달랐다. 한 경은 밤이 가장 길 때는 두 시간쯤으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가 초경, 9시부터 11시까지가 211시부터 밤 1시까지가 3, 1시부터 새벽 3시까지가 4, 3시부터 새벽 5시까지가 오경이었다. 밤이 짧은 때는 한 경의 길이가 줄어들었다. 한 경 사이를 다섯으로 나눠 점이라 하였다. 한 경이 두 시간일 경우 한 점은 24분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13점은 저녁 7시를 기준으로 보면 7시에 3점 곧 24분씩 3분을 곱하면 812쯤이 된다. 파루는 53점이므로 아침 612분쯤이 된다. 

백성의 삶에 무척 중요한 이러한 종을 치기 위해서는 밤에도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물시계가 필요했다. 물시계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시계였다. 그러나 1434년 세종과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를 발명하기 전에는 관리나 군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시간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래서 군사가 때로는 조느라고 미처 확인 못해 시간을 늦게 알리기도 했는데 이럴 때 담당 군사는 벌을 받아야 했다. 곤장을 맞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다. 세종은 이런 병사들의 어려움까지도 세심하게 헤아리는 따뜻한 성군이었는데 세종실록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임금께서는 시각을 알리는 사람이 잘못 알리게 되면 중벌을 면치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장영실에게 명하여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길 시보인형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이에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리므로 사람의 힘이 들지 않았다.” _세종 16, 143471 

따라서 이때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自擊漏)는 시각을 알리는 군사가 억울하게 매를 맞지 않게 하려는 세종임금의 백성사랑이 담긴 자명종 시계의 하나다. 이 시계는 14347월부터 본격적으로 썼는데 이 자격루 시계는 장영실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 수 없었으니 벼슬을 올리도록 하라.”고 세종이 황희에게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 자격루는 경복궁 경회루 옆에 보루각(報漏閣)이라는 시계 보관집을 만들어 설치하고 시계 담당 관청인 서운관(書雲觀, 천문과 기상관측을 담당하던 관청) 관리들이 번갈아 감독하게 했다. 자격루가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 주지만 딴 곳으로 시각을 알려주어야 하니까 경회루의 남문과 월화문, 근정문에 쇠북을 각각 설치하고, 광화문에도 큰 종을 세웠다. 그 날 밤에 각 문의 쇠북을 맡은 사람이 자격루가 알려주는 소리를 듣고 차례로 종을 치고 영추문에 세운 북을 쳐서 백성에게 알렸다.  

결국 보루각에서 알리는 시각 신호는 종루에 전달되어 53점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33회의 파(바라)13점에 통행금지 시작을 알리는 28회의 인정(인경)을 종소리로 알렸다. 오시에 광화문에 전달되어 그 곳의 대종을 울려 궁궐과 관가의 오전 업무를 끝내고 오찬을 준비하는 시각을 알려주기도 했다. 

자동 물시계로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는지 관리 김빈은 자동 물시계의 감동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 동물 신이 종과 북과 징 하나씩을 나누어 가지고서 닭 울음을 대신하니, 그 소리 질서 있네. -(줄임)- 번갈아 기계가 발동하여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 번개처럼 빠르네. 기계가 닿는 곳에 나무인형이 시간을 정확히 알려 주니 보는 이가 감탄하네. 거룩하구나. 이 제도는 하늘 따라 시간 법을 만든 것이니, 천지조화가 틀림없네. 시각 아껴 써서 모든 공적 빛났도다. 백성 스스로 감동하여 표준을 세우고 무궁토록 보이도다.”- 세종실록143471일 기록  

그러나 성종이후 자동시보장치가 달린 자격루는 사라지고 그냥 물시계만 여기저기 설치되었었다. 그러다가 자동시보장치 달린 완벽한 자격루가 2007년에 복원되어 고궁박물관 지하에 전시되어 있다.

   
▲ 2007년에 복원되어 고궁박물관 지하에 전시된 자동시보장치 달린 물시계, 자격루, 사진 김영조

자격루는 크게 물을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물항아리와 쇠구슬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제어 내부 장치, 그리고 종과 북과 징을 울리도록 하는 장치인 시보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물항아리는 물을 내려 보내는 대파수호(큰물항아리), 중파수호(중간물항아리), 소파수호(작은물항아리)가 있고 물을 받는 항아리인 물받이통(수수호)이 있다 

자동제어장치를 움직이는 쇠구슬은 다른 쇠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 북을 울리면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든 나무인형이 나타나 시간을 알려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맨 위에 있는 큰물항아리(대파수호)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가운데물항아리(중파수호)를 지나 작은물항아리(소파수호)를 거쳐, 가장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통(수수호)에 흘러든다. 수수호에는 높이를 나타내는 잣대가 있다. (그림 참조)

   
▲ 복원된 자격루 물항아리들, 왼쪽 위에 큰물항아리가 있고, 그 아래에 가운데물항아리, 오른쪽 아래에 작은물항아리가 있다., 사진 김영조

 

   
▲ 자격루 물항아리의 물흐름도

곧 물항아리에서 물의 흐름을 일정하게 물받이통으로 보내 그 안에 띄운 잣대가 일정하게 올라가면 자동제어장치 안에 들어있는 작은 구슬을 떨어뜨린다. 이는 마치 아날로그 신호(수수호의 수위 상승)를 디지털 신호(작은 구슬 낙하)로 바꾸는 것과 같다.

떨어진 작은 구슬은 쇠구슬방출장치에 저장된 시기 작동용 큰 구슬을 방출시켜 인형이 종을 울리게 한 다음 대기하고 있는 12지신 인형을 차례로 작동시켜 교대로 상승과 낙하하면서 대기하고 있는 12지신 인형을 회전시킨다. 

시간을 알리는 쇠구슬은 떨어지면서 1경부터 5경가지 숫자대로 북을 울리고 이어서 징을 한번 씩 울려 매경의 초점을 알린다. 수수호는 매일 정오부터 대기 중인 수수호에 물을 주입시키고 다음 날 오정이 되면 대기 중인 수수호로 교체하여 물을 주입한다.

 

   
▲ 자격루 자동 제어장치 내부 복원 모습(국립고궁박물관). 사진 김영조

 

   
▲ 하루 열 두 번 두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시간 동물신, 1경에서 5경까지 북과 징을 울리는 시간 동물신구, 사진 김영조

이렇게 자격루는 자동제어자치에 의해 움직이는 물시계로 백성 삶의 표준 시계 역할을 하였다.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 임금의 의무였지만 세종은 더 나아가 과학정신으로 모두에게 공평하고 정확한 시간을 알게 한 것이다. 이 자동시보장치 달린 물시계는 중국에도 없었던 최첨단 기계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세종 당시 자동시보장치 달린 자명종물시계 자격루의 발명은 세종의 끔찍한 백성사랑과 끊임없는 자기 혁신 그리고 출신성분을 가리지 않는 개혁인사로 성공한 세종정신을 깨닫게 한다.

 

   
▲ 고궁박물관 자격루 복원팀과 글쓴이(왼쪽부터 글쓴이, 나일성 교수, 남문현 교수, 서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