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홍사내 기자]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일제말기 한국 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서울대학교출판부, 2003)에서, “저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은 ‘독자들이 제일 궁금하게 생각할 것은 이 책을 쓴 임종국이는 친일을 안 했을까?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이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필자는 자화상을 그려야겠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하면서, 강점기 시대의 작가가 선택해야 했던 글쓰기의 방법과 삶을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일문제는 사상 검증처럼 돌이켜 구별 져야 하는가보다. 작가의 삶이나 작품 속에서 친일 색깔을 찾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저울의 덫처럼 균형 잡기 힘든 작업이다. 수평잡기를 못하면 항일운동가가 되거나 친일매국노로 몰리기 쉽고, 그렇다고 수평을 잘 잡은 자도 매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방관자 혹은 도피자, 회색분자 따위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우리 역사 속에서도 많은 정변으로 적대자가 생기고, 그들이 다시 복원되는 일을 숱하게 본다. 사람의 한평생을 선악의 잣대로 구별하거나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분단 이후 자의든 타의든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 있고, 태평양전쟁에 징병되어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은 돌아오지 못하고 남이 되어 있다. 1942년 5월 강제로 지원된 조선인 3200명은 부산에서 두 달 훈련을 받은 뒤 타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지에 일본인으로 배치됐다는 조사가 있다.(<한겨레>2008.12.19.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학원대학 명예교수의 말)
조국의 잣대나 가족의 잣대, 혹은 친구의 잣대, 파벌의 잣대, 지연과 학연의 잣대 따위 또한 이른바 동굴의 우상처럼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굴레이다. 그러므로 그 수많은 잣대는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한 개인이 그 여러 잣대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는가, 가치 있게 보는가에 따라 다른 많은 잣대로 보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된다. 물론 그런 비난조차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며, 그런 비난의 결과를 미리 짐작하면서도 선택해야 하는 일 또한 개인의 몫이다.
어찌되든 흔히 ‘잣대를 대다, 잣대로 삼다’라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면서도, 잣대로 삼았던 가치가 계속 이어지는 한 후세 사람들은 그 가치관으로 수정하고 보완하고 편집하고 심판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친일은 나라와 겨레의 잣대로 한 개인을 판단할 때 절대적인 죄가 되며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 자취를 반성하고, 대가를 치르며, 흔적을 지우는 데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역사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완결을 볼 수 없도록 머금고 흘러가지만 말이다.
우리 말글이 그렇다. 말이란 본디 나라와 겨레는 물론이고, 지역・지방에 따라 달라지고, 계층․사회에 따라 달라지며, 글말과 입말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거기에다가 문화의 흐름에 따라 나라 밖에서 들어와 정착한 수없이 많은 외국말이 모양새와 발음이 다르면서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들어온 말 때문에 우리말이 뒤틀리는 것을 왜곡이라 하여 배척하는 노력을 벌이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는 이런 수만 가지 들어온 말과 지역말, 지방말, 계층말, 사회말, 글말, 입말이 혼재하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본말은 아주 가까운 때에 강점기를 지내면서 수탈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우리 겨레에겐 치욕의 흔적이 아닐 수 없기에, 목숨을 걸고 분별하여 징벌하고 없애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말법처럼 슬그머니 자리 잡은 일본 말법과, 제도가 들어오면서 고스란히 따라 쓰는 제도말, 일본식으로 바꾼 땅이름, 창씨개명의 흔적들, 전문용어, 법률용어, 심지어는 신조어까지 일본말을 쓰는 것이 주변에 널려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한글학회가 《큰사전》 보유 작업을 하면서 새로 원고 카드를 만들고 말을 다듬을 때, 글쓰는 이가 몇 해(1990~1992) 일을 도왔던 적이 있는데, ‘국어’, ‘철학’, ‘총리’ 따위처럼 일본말이 들어와 우리말로 읽히는 낱말에는 말밑(어원)에 (일)이라는 표시를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 원고 카드를 입력하여 출판사에 넘길 때는 그 (일) 표시를 빼야 했다. 사회적 충격을 생각해서다.
지금 우리 가운데 대다수는 제가 쓰는 말이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쓸 것이다. 당연하다. 어찌 그 많은 낱말을 일일이 구별할 수 있을까? 다 알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경주의 금성이 흉노족 금일제가 투후라는 관작을 받아 다스리던 중국 성 이름을 붙인 땅이름이라는 학자의 주장도 듣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전문가나 연구집단이 하나하나 말밑을 분석하며 추적해야 할 것이다.
해방 뒤 우리는 일본말 찌꺼기를 몰아내려고 가진 애를 다 써 왔다. 이른바 ‘국어순화운동’이 그것이다. ‘한글 사랑, 나라 사랑’ 운동, 한글 전용 운동, 쉬운 우리말 살려 쓰기 운동, 신문 가로 쓰기 운동 따위가 모두 일본말 안 쓰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이, 국가가 제도와 규정을 정하여 벌이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며 민간단체, 연구 단체가 중심이 되어 벌여 옴으로써, 크게 구속력을 잃고 스스로 안 쓰도록 계몽하는 단계에서 끊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였고 큰 진전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이제까지 벌이던 운동에 새로운 변화가 일었다. 그것은 금지 조항만 수두룩하던 운동이 한글의 과학성, 실용성을 앞세워 가치 높음을 알리는 운동으로 바뀐 것이다. 세종대왕의 15세기 세계사적인 과학 기기 발명과 더불어 글자를 만든 원리와, 민본 통치에 묻어 있는 대왕의 백성사랑을 새롭게 조명하고, 한글의 아름다움과 실용성, 쉽고 간편함을 세계에 알리는 운동으로 힘을 쏟게 된 것이다.
▲ 한글은 자체로 자랑스러운 것이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동안 한자 쓰지 말자, 일본말 찌꺼기 쓰지 말자, 영어 쓰지 말자 하면서 말글생활을 조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면, 이제는 ‘우리말과 한글에 놀랍고 훌륭한 가치가 박혀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바탕으로, 세계 석학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글자임을 증명하고 디자인하고 보여주는 운동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과 한글을 썼을 때 나라 안은 물론이고 나라 밖에서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말글임을 일깨우려는 노력이었다.
그것은 자랑으로만 그치지 않고 과학(정보 통신)이 되고 예술이 되며,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나아가 한글 사용이 우리나라와 겨레, 그리고 우리 문화의 수준 높음을 나타내는 데 가장 쉽고 빠른 길임을 증명해 주고자 하였다. 제도적으로도 국어기본법을 만들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진전을 볼 수 있었다.
내 흉허물과 그것을 보는 거울을 깨끗이 닦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 얼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임을 일깨우는 일이 더욱 가치 있는 것처럼, 친일이란 문제로 과거의 동굴에 집착하면서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바라보는 운동과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말글 정책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를 느끼게 된 것,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일 것이다.
내 얼굴이 아름답고 자랑스럽다고 느껴질 때 날마다 스스로 말끔히 씻고 닦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맞는 지구촌 곳곳의 우리 겨레들이 늘 깨어있는 심정으로 우리말과 글을 오래오래 지켜낼 것이고, 그러면 분명히 한글이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높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