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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둘레길, 올레길, 산티아고로 가는 길 모두 소통

[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17]

[그린경제/얼레빗=이규봉 교수]  지리산 둘레를 걸으면서 지리산의 정취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둘레길이 만들어졌고, 제주 둘레를 걸으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올레길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길이 인기를 끌면서 전국에 산책길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등산을 한다면 반드시 산 정상을 올라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는 주변을 산책하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자 제주 올레길의 모델이 된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일명 산티아고로 가는 길(Cameno de Santiago)’이 관심을 끌고 있다.


   
▲ "지리산 둘레길" 1 (남원시 제공)

   
▲ "지리산 둘레길" 2 (남원시 제공)


산티아고로 가는 길 

한 달을 넘게 걸어야 완주할 수 있어 끈기를 요구하는 이 낭만적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역사적인 슬픔이 있다. 이 길은 9세기 초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2세가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성 야고보의 무덤에 성당을 세우고,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봉하면서 유럽에 알려졌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의 시민들이 성지 순례에 나서면서 자연스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국토수복운동(Reconquista)으로 연결된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는 스페인의 기독교 왕국을 지원하기 위해 야고보의 묘를 성지로 선포하고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의 죄를 감해준다는 칙령을 발표하여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이슬람 세력과 싸우게 되고 기독교 세력은 점차 확장되었다. 1492년 페르난도와 이사벨라 스페인 여왕은 이슬람 최후의 거점인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하였다. 

이 길은 스페인의 국토를 회복하는 데 매우 큰 이바지를 했으나 그 과정에서 큰 비극이 벌어졌다. 이사벨라 여왕은 스페인을 가톨릭 국가로 만들기 위해 인종청소에 가까울 정도로 이슬람교 신자와 유대교 신자들을 축출했다. 개종을 거부하는 이교도를 화형에 처하거나 재산을 몰수하고 나라밖으로 쫓아냈다. 가톨릭의 탐욕으로 일어난 십자군전쟁 때도 역시 이 길을 통하여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갔고 많은 희생자가 났다.  

스페인의 가톨릭 세력은 20세기까지 이어져 스페인의 가톨릭교회는 1936년 좌파 연립정권인 합법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프랑코의 파시스트 세력을 지원했다. 그러다 프랑코가 사망하자 가톨릭이 국민의 반감을 사며 영향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7년 이 길을 거쳐 산티아고를 방문하여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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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로 가는 길" (혜초여행사 제공)

   
▲ 기독교와 연결되었던 "산티아고로 가는 길" (혜초여행사 제공)

이 길을 걸으면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겉으로만 이웃 사랑을 부르짖는 종교인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을 떠 올리며 평화와 종교에 관한 생각에 잠겨 보는 것은 어떨까?  

진정한 종교는 타종교를 배척하지 않는다  

세계의 주요 3대 종교 중 가장 일찍 생긴 불교의 가르침 중에 육바라밀이 있다. 그중 처음 나오는 보시(布施)남을 대할 때는 주는 마음으로 대하고, 보수 없는 일을 연습하는 것으로 이것이 탐심을 제거하는 보시바라밀이다.”라고 가르친다. 또한 세 번째로 나오는 인욕(忍辱)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며 부처님의 인욕을 배우고 깨쳐볼 일이니 이것이 치심을 제거하는 인욕바라밀이다.”라고 가르친다. 

재물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7가지 보시로서 무재칠시(無財七施)는 남을 대할 때 항상 얼굴에 온화하고 환한 빛을 띠고, 말에 친절을 담으며,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고, 웃는 눈빛으로 보며, 물으면 친절히 잘 가르쳐 주고, 앉은 자리를 양보하며, 잠자리를 깨끗하게 해주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다음 생긴 기독교를 살펴보자. 기독교 신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10계명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내용이 자그마치 6개 조항이나 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중 가장 중요한 말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이다. 곳곳에 이와 비슷한 말이 많이 나온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잃은 양 한 마리를 비유하면서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첫째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최근 방한한 교황의 메시지는 소통이었다.

이슬람교는 관용의 종교라 한다. ‘이슬람이란 아랍어는 원래 순종과 평화를 뜻한다. 이슬람교의 창조자는 알라이다. 무함마드(일명 마호메트)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주요 경전에는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예수의 복음서가 들어있다. 가장 중요한 경전인 꾸르안은 종교에는 강제가 있을 수 없다.”라고 하여 신앙의 자유를 강조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여호와나 기독교의 하느님 같은 다른 교의 유일신을 배척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유일신인 만큼 숭배하라고 한다.  

참고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모두 셈족이 만든 종교로 유대교의 여호와와 기독교의 하느님 그리고 이슬람교의 알라는 결국 같은 존재이다.  

이슬람을 관용의 종교라 하는 것은 인간은 원래가 착한 존재이므로 실수나 죄, 불의 같은 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용서할 수 있다는 이슬람의 종교적 이념에서 온 것이다. 이슬람의 생사관은 삶의 아름다움을 구가하고, 현세에서 선행과 삶을 오래 즐길 것을 권장하며, 원죄가 아닌 후천성에서 비롯된 죄는 자진 회개하고 알라의 용서를 빌며, 헛된 죽음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호전성을 상징하는 한 손에는 코란, 다른 손에는 칼을이란 말은 사실이 아니고 조작된 것이다. 이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13세기 중엽 십자군이 이슬람 원정에서 최후의 패배를 당하던 시기의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십자군 전쟁이나 기독교인의 아메리카 침략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칼이 훨씬 더 어울린다.  

불교도 타 종교를 배척하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미 그 당시 있던 민족 종교의 신앙을 오히려 장려하였다. 불교를 숭상한 인도의 아소카왕은 다음과 같은 칙령을 발표했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만을 숭앙하고 다른 종교를 저주해서는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면서 다른 종교에도 봉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자신의 종교에 무덤을 파는 것이며 다른 종교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나 교의에도 귀를 기울이라.

- 백찬홍, <종교의 안부를 묻는다>, 평사리, 2010, 146 

이처럼 대부분의 종교는 타 종교를 비난하지 않고 이웃 사랑을 그 근본 교리로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처님이나 하느님이나 알라를 믿는다면 그들이 가르치는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이웃이란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와 관련 없이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을 뜻한다.  

자신의 종교를 선교함에 있어서 절대 무력을 동원하거나 강제로 개종시켜서는 안 된다. 신자의 행동 하나하나 그 됨됨이로 사람들은 그가 믿는 종교를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신자들의 생활 그 자체 하나하나가 선교를 대신한다. 참된 신자라면 어떻게 자기들의 삶이 자신이 믿는 종교를 나타내는지 다음번에 수학을 통해 살펴본다. 

(*)수학과 교육2014105호에 실린 내용을 재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