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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

첫 해외진출 태국 고속도로 공사 '혹독한 신고식' 치르다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27>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낙동강 고령교 복구공사로 입은 타격으로 회사가 무너지다시피 한 위기를 헤쳐 나올 무렵이었다. 그런데 4·19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와 기업 사이는 정경유착 관계고, 부정축재한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많다.”라고 시끄러웠다. 웬만한 큰 공사는 으레 정부 공사였기에 큰 건설업자는 정부를 끼고 치부했다고 덮어놓고 공격을 당했다. 

이때 현대건설은 정경유착이 아니라 자력으로 컸음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을 하지 않으면 국내 건설기업은 조만간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견되었다. 그래서 정주영은 60년대 초부터 현대건설의 전환점을 해외 진출에 걸었다. 

태국 고속도로 건설 공사, 큰 적자 그러나 도약 

19659월 태국 파티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540만 달러에 따냈다. 한국 건설사상 나라밖 공사로는 처음이었다. 서독, 이탈리아, 덴마크 건설업자들이 이미 진출해 난공불락의 성을 쌓고 있는 가운데 뒤늦게 태국 현장에 뛰어든 현대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기후, 풍속, 법률이 모두 생소할 뿐더러 언어가 다른 외국 노동자를 쓰면서 겪어야 했던 현대의 시련은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투입한 장비는 대부분 국내 도로 공사에 사용하던 재래식이었다. 최신식 장비를 구입해 봐도 사용방법을 모르는 기능공들이 두 달도 못 되어 고장내기 일쑤였다. 그러나 현대는 그런 우여곡절 속에 진동식 롤러, 압착기(컴프레셔), 믹서를 직접 만들어 썼고 시멘트를 싣는 차도 만들어 썼다. 비록 초보적인 장비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건설장비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현대는 태국에서 29000만 원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우리나라 건설업 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낙담이라곤 하지 않는 정주영. 그는 "새로운 도전에는 수업료가 필요한 법이다."라고 생각했다. 이후 현대는 태국을 시작으로 해서 영하 40도의 알래스카 산 속 교량 공사, 괌의 주택과 군사기지 공사, 파푸아뉴기니의 지하 수력발전소 공사, 70년 여름에는 호주의 항만 준설공사를 수주하고 해냈다. 그 손해는 손해가 아니라 더 큰 도약으로 나아가는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목숨을 건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준설공사 

현대는 막대한 손해를 본 태국에서의 공사 다음해 19661월 월남 메콩강 준설공사를 수주했다. 사실 정주영으로서는 이 공사는 기피하고 싶었다. 전쟁이 기업인에겐 중요한 기회라고 말하지만 총탄이 오고가는 전쟁터에서 공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사실 없을 것이다. 현대건설이 전략 요충지이던 캄란만 준설 공사를 마칠 즈음의 일이다. 

메콩강 삼각주 하구에서 준설공사를 하던 미국의 8000마력짜리 준설선 자메이카호가 베트콩에 의해 침몰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월 미군 사령부는 작전에 큰 장애가 되는 시야를 가리는 수풀을 신속하게 제거해야만 했다. 따라서 자메이카호의 침몰은 미군에 일대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은 자메이카호를 대신할 준설선으로 2550마력짜리 현대1호를 지목했다. 미군과 베트콩 사이에서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었지만 총으로 위협하는 미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쟁의 한복판 메콩강 삼각주에 도착한 준설선. 하지만 24시간 매복해 있는 베트콩 앞에서 메콩강 토사를 퍼서 주변의 숲을 덮는 작업을 진행했다. 포탄과 총알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강 한복판에서 현대건설 직원들은 헬리콥터가 공수하는 비상식량으로 허기를 채우며 공사를 해야만 했다. 

4000마력짜리 현대2호가 추가로 투입되면서 공사는 1년 반 만에 끝났다. 험난한 과정 속에서 현대건설은 준설 공사에서 돈을 주고도 결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은 물론 돈도 제법 벌었다. 특히 태국에서의 고속도로 공사 경험은 나중에 경부고속도로를 뚫을 때 밑거름이 됐고, 월남에서의 준설 공사 경험은 중동 진출의 발판이 됐다. 

남들은 다 안 간다고 하는 중동, 공사하기 가장 좋은 곳 


   
▲ 그린 이무성 한국화가

그 중동진출의 시작을 다시 떠올려 보자.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임자, 달러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난 곳이 있는데,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네. 그래서 나도 정 회장이 안 된다고 하면 포기 하려고…….” 

그곳이 어딥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는데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고 하니…….” 

일단 다녀오고 말씀드리지요.”

이윽고 닷새 만에 돌아보고 온 정주영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갔다.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박 대통령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누구든 공사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하는 중동을 당장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말이다. 

“1년 열두 달 비가 오지 않으니 한해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널려 있으니 골재 조달이 쉽습니다.” 

“50도나 되는 더위는 어떻게 극복하려고?” 

낮에는 천막치고 자고 밤에 일하면 되지요.” 

그러자 박 대통령은 버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현대건설의 중동진출 서막이 이렇게 열렸음은 물론 대박으로 가는 지름길이 놓인 셈이었다. 행동하는 정주영. 그는 이때 인생의 승패는 행동과 시간임을 알았고, “긍정적인 사고에는 실패가 없음을 알았으며,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음을 이미 뼛속 깊이 체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정주영은 갔지만 그가 세운 현대건설은 남았다. 현대건설은 최근 말레이시아 국부편드 카자나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합자투자회사가 15000억 원 규모의 주거, 오피스, 상업 복합시설인 싱가포르 마리나사우스 프로젝트를 GS건설과 공동 수주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리조트형 주거단지로 알려졌으며, 새로운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멀리서 보고 위치 파악에 도움이 되는 대형 건물)가 될 것이란 얘기다. 물론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가 발주한 483674만 달러(49000억 원) 규모의 푸에르토라크루스 정유공장 확장 및 설비개선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또 국내 건설사 최초로 해외수주누계 1000억 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 1965년 국내 건설사 최초로 태국의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해외 건설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48년여만의 쾌거다. 최고를 꿈꾸던 정주영은 지금 없지만 현대건설은 최고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