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KBS 1TV “진품명품”에서는 귀한 붓글씨 작품을 모은 책 ≪근역서휘별집(槿域書彙別集)≫ 네 권이 출품되었습니다. 3·1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한말의 독립운동가·서예가·언론인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7.15 ~ 1953.4.16) 선생이 펴낸 책이지요. 이 책 4권은 출연한 전문가들에 의해 1억 원에 평가되는 기염을 토했는데 서울대학교 박물관 학예사가 특별 출연하여 연예인 출연자들에게 가볍게 웃어가면서 볼 책이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근역서휘별집≫은 ≪근역서휘(槿域書彙)≫의 별책으로 오세창 선생이 고려말에서 대한제국말까지 선인들의 필적을 모아 엮은 서첩(書帖)입니다. 그 값어치가 수십 억 원에 이른다는 ≪근역서휘(槿域書彙)≫에 수록된 글씨는 거의 600여년에 걸치는 것으로, 임금의 어필을 비롯하여 양반은 물론 중인·천민에 이르기까지 각계 유명 인사 1,100여 명의 편지글, 시축(詩軸, 시를 적은 두루말이)들이 모아져 있지요. 특히 이 책에는 “어머님의 병환은 차도가 어떠하냐?"를 아들에게 묻는 조선 초 김종서
“어머니! 날이 몹시 더워서 풀 한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이 내려 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방 속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가뜩이나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는데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건만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심훈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 심훈이 이렇게 편지를 썼던 서대문형무소는 한국의 독립운동사와 떼어서 생각 할 수없는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일제의 침략이 가속화되어 가면서 이에 항거하는 조선인의 의병활동과 국권회복운동이 전국에서 거세게 일어나자 1908년 10월 21일 일제는 조선인 탄압을 위해 서대문구 현저동에 대규모 근대식 감옥을
지난해 12월 14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참사가 발생해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6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 얼마 안 돼 어제 또다시 10대 청소년 2명이 길 가던 여성에게 돈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13개월 된 아기 머리를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는 외신을 접했다. 살해된 아기 어머니의 겁에 질린 모습이 티브이 화면 가득 비추고 지나갔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듯 경찰들이 폴리스라인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서 16세기 일본사회에서 엄포를 놓아 무기 회수를 꾀했던 풍신수길의 ‘무기회수령’이 떠올랐다. 풍신수길은 주군인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가 가신 아케츠미츠히데(明智光秀)의 모반으로 살해당하자 기회를 꿰차 천하를 거머쥐었지만 혹시 모를 백성들의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길까봐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풍신수길은 정권을 잡은 지 오래지 않아 무기회수령(刀狩令, 1588.7.8)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무기 회수령은 다음 3가지 항목을 들어 선포하였다. 1. 백성은 칼(刀, 脇差), 활(弓), 창(槍), 총(砲) 등의 무기 소지를 금한다. 불필요한
누군들 알손가 봄 번개 가슴속을 움 트는 철이라 햇빛은 고맙고만 올 여름 여무는 벼는 차기를 바라느니.
“아아 울음 한 번 크게 울지 못한 누구의 가슴이 저리도 곱게 허무는가 아아 울음 한 번 크게 울지 못한 누구의 가슴이 저리도 곱게 허무는가 천 년을 벼르어 이룬 첫날밤 나 갔다 오리라 그 한 말씀 창문 밖에는 바람소리와 시베리아 모진 바람소리 오직 이 밤을 지키는 것은 그대 오도록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 아아 울음 한 번 크게 울지 못한 누구의 가슴이 저리도 곱게 허무는가“ 이 시는 민용태님이 쓰신 입니다. 첫날밤도 못 치르고 시베리아 벌판에 징용 끌려간 서방님을 기다리는 여인의 한을 검정고무신에 담은 것이지요. 어쩌면 모진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온 우리 선조의 삶을 그린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시는 이병욱이 작곡하고 노래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 검정고무신을 그것도 타이야표 검정고무신은 60~70년대에 유행했지요. 부잣집 아이들이야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녔지만 보통의 아이들은 검정고무신도 감지덕지였구요. 오래 신어 닳으면 구멍이 나고 그러면 때워 신거나 꿰매 신기도 했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구멍을 내고 엿 바꿔 먹다가 엄마한테 매
“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나는데 (宮柳靑靑花亂飛) 성 가득 벼슬아치 봄볕에 아양 떠네 (滿城冠蓋媚春暉) 조정에선 입 모아 태평세월 노래하지만 (朝家共賀昇平樂 ) 누가 포의 입에서 위험한 말을 하게 했나. (誰遣危言出布衣)” 위는 조선 중기의 시인 석주(石洲) 권필(權, 1569∼1612)의 시입니다. 때는 광해군 시절로 유 씨 가문이 득세하였는데 무려 일가 다섯이 동시에 급제하기도 하였고 이는 소위 '뇌물비리'에 의한 것이었지요. 이에 임숙영이라는 선비는 이러한 광해군의 행동을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고 광해군은 격노하여 임숙영의 합격을 취소시켰습니다. 이를 개탄한 권필이 “궁류시(宮柳詩)”라고도 부르는 이 시를 지었고, 매를 맞은 다음 유배길에 오릅니다. 그러나 권필은 사람들이 주는 이별주를 폭음하여 이튿날 죽었는데 시 한편과 목숨을 맞바꾼 것이지요. 시에서 말한 궁궐의 버들은 유씨를 견준 것이며, 포의는 임숙영을 가리킵니다. 권필은 송강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구속받기 싫어하여 벼슬하지 않은 채 삶을 마쳤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구용(具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 지어니 비굴치 말고 당당히 왜놈 순사들 호령하며 생을 마감하라 (중략)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아! 나의 사랑하는 아들 중근아.” 위는 안중근 장군 조마리아 독립투사를 기리는 이윤옥 시인의 헌시 일부입니다. 오늘은 배달겨레의 철전지 원수 이등박문을 쏴 죽인 우리의 위대한 영웅 안중근 장군이 순국한 날이지요. 그런데 우리의 영웅 안중근 뒤에는 안중근보다 더 당당한 어머니 조마리아 독립투사(본명 조성녀, 미상 ~ 1927.7.15)가 있었습니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길 원하지 아니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刑)이니 결코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죽음을 앞둔 옥중의 아들 안중근에게 편지를 보내는 어머니 조마리아는 결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는 1926년 조직된 상해재류동포정부경제후원회(上海在留同胞政府經濟後援會) 위원을 역임하였지요. 또한, 같은 해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창립총회에서
금수강산에 태어나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나라 안 명승지는 많겠지만, 뭍(육지) 안의 섬마을 경북 예천 회룡포(回龍浦)는 꼭 다녀와야 할 가장 아름다운 물돌이 마을로 꼽힙니다. 낙동강 상류의 한 물줄기인 내성천(乃城川)이 350도 마을을 휘돌아 흐르면서 만든 아름다운 이 마을은 350도여서 원이 되다 말았기에 다행스럽게도 완전한 섬은 아니지요. 물길이 구불구불 흘러가면서 만든 땅모양을 지리학 용어로 감입곡류(嵌入曲流)라 하는데 영월 청령포, 안동 하회마을, 상주의 경천대도 그 가운데 하나이지만 회룡포에 견줄 바는 아닙니다.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안동 즈음부터 축 늘어져 한없이 느릿느릿 내키는대로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면서 하회마을과 회룡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낙동강은 흐르기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 회룡포는 회룡대에 올라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멋지다고 합니다. 회룡포 안 마을로 들어가려면 마을 끝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것이 좋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르방다리로 부르지만 여행객들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걸을 때마다 덜컹거린다 해서 ‘뿅뿅다리’라고도
“욕심 때문에 가문과 형제를 버리는 일은 세상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로 시작되는 사이카쿠 쇼코쿠바나시(西鶴諸國ばなし, 권2-7화)의 이야기는 320여 년 전 일본의 이야기지만 21세기인 오늘 한국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시나노 지방에 사는 여든여덟 살 되는 노인이 아들 둘을 불러다 앉히고 유언하기를 집안의 재산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골고루 사이좋게 나눠가지되(작은 왕겨라도 나누라) 특히 집안의 보물인 칼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팔아치우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죽고 첫이레가 되기 전에 재산 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당시 에도시대(1603-1868)의 유산상속은 대개 유언에 따랐으나 상황에 따라 달랐다. 이 두 아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똑같이 재산을 나눴지만 아버지가 아끼던 소중한 칼 한 자루에 이르러 다툼이 일었다. 칼을 두 쪽으로 나눌 수 없기에 둘 중에 하나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집안 문중 사람들이 중재하기를 나머지 재산은 똑 같이 나눴으니 칼은 형인 장남이 갖는 게 좋겠다고 했으며 형 역시 칼이 몹시 갖고 싶었다. 그러나 동생이 승복을 안 하는 바람에 형은 칼 한 자
아가씨 고운 냄을 못 잊다 하는구나 어젯밤 꾸던 꿈을 되새겨 돋궈보니 손바닥 님의 느낌은 상냥만 하는나. * 냄 : 냄새 * 상냥 : 부드럽고 친근하다 일본 사람들은 재일동포들을 차갑게 대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재일동포들로 하여금 더욱 굳건히 살 수 있게 한다. 꽃샘이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는 것이지만 실은 그 덕분에 꽃이 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조는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꽃샘에 견주어 담은 작품이다. (편집자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