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진주박물관에는 보물 제311호 《노인 금계일기(魯認 錦溪日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조 학자 금계 노인(錦溪 魯認, 1566∼1623)이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남원성 전투에서 왜병에게 붙잡혀 일본에서 2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명나라 사절단의 배로 도망해 북경을 거쳐 귀국하게 된 경위를 쓴 일기문입니다. 선조 32년(1599) 2월 22일부터 같은 해 6월 27일까지 약 4달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지요. 이 일기는 책의 앞뒤가 없어지고 글씨도 많이 훼손되어 읽기가 매우 힘들어 대체적인 정황만 알 수 있는데 그가 죽은 뒤 200여년이 지나 그의 7대 후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노인의 시문집인 《금계집(錦溪集)》 속에 이 사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기는 또 중국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학자들과 만나서 그들의 질문에 따라 한국의 교육, 과거, 재정, 군사, 문화, 풍속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 것이 일기에 쓰여 있어 시대상황과 정황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중국에 표류했다가 살아온 기록으로는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 1488년)》이 있으며, 일본에 포로로 갔다가 살아온 기록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대개 사족(士族)이 서인(庶人)과 다른 점은 종의 소유에 있습니다. 지금 조정의 신하로서 종이 많은 사람이 얼마 없는데, 그나마 하루아침에 도망해 흩어져서 사라져버리면 사족이 그 집안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 《성종실록》 14년(1483) 12월 18일 “우리나라 노비에 관한 법은 그 유래가 오래 되었으니 사대부는 이들에 의존하여 살아왔습니다. 대개 농토는 사람의 목숨이고, 노비는 선비의 수족이니, 그 중요성이 서로 같아서 어느 한쪽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 《세조실록》 14년(1468) 6월 18일 위처럼 조선시대 양반들은 종과 말이 없으면 행세를 하지 못했습니다. 양반이 나들이를 할 때 종과 말이 없으면 남에게 빌려오기라도 해야 했습니다. 조선 후기 이덕무(1741 ∼ 1793)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서 이를 빌리는 것조차 힘겨워 했지요. 그는 말합니다. “남의 말이나 나귀를 빌린 것은 단지 예닐곱 차례뿐이고, 그 외는 모두 걸어다녔다. 혹시 남의 하인이나 말을 빌리면 그들이 굶주리거나 피곤할 것을 염려하여 마음이 매우 불편해지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것이 편했다." - 《청장관전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재)세종문화회관 서울시무용단(단장 예인동)은 오는 10월 27일(목), 28일(금) 양일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춤극 신시(神市)를 재공연한다. 재공연에 앞서 26일 늦은 3시 기자들을 위한 프레스콜이 열렸다. 신시는 단군신화를 동기로 한 춤극으로 웅족, 천족, 호족이 갈등과 전쟁 끝에 상생을 이루고 평화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올해 공연은 2015년 서울시무용단이 공연했던 신시-태양의 축제의 완성도를 높여 재공연하는 것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웅장한 축제 장면, 전쟁을 표현한 역동적인 군무, 농염한 사랑무 등 화려한 볼거리를 갖춘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국보급 안무가이자 창작 무용의 거장인 국수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총괄안무를 맡았고, 작곡가 김태근와 유희성 연출가도 다시 합류하며 음악의 선율을 보완하고 뮤지컬의 표현방식을 도입하는 등 한국 무용극의 고정관념을 넘어서고자 한 무용극이다. 또한 이번 신시공연은 한국 무용극에서는 만나기 힘든 발레리나, 발레리노 등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관객에게 신선함을 안긴다. ‘웅녀’역에는 한국 최고의 발레리나 김주원과 서울시무용단 솔리스트 김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7돌이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지난 9월 2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여름경매에 나온 안중근의 ‘행서족자’가 2억 80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7억 3000만원에 낙찰돼 안중근 의사 서예작품 가운데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케이옥션에 따르면 이날 팔린 ‘행서족자’는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적은 붓글씨 작품으로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의 경수계장이던 나카무라의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라고 하지요. 이 족자에는 명심보감 훈자편에 나오는 “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곧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라는 한문 문장이 적혀 있으며, 이 문장 왼쪽에 안중근 의사의 서명과 약손가락이 잘려나간 왼손 손도장(장인)이 찍혀 있습니다. 장인은 인주가 아닌 먹으로 찍혔는데 안중근 의사가 남긴 다른 족자보다 장인이 선명해 더욱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가 남긴 붓글씨 중에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곧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의사가 사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의 술은 붉거나 흰색으로 쌀이나 밀 따위 곡물로 빚어내며, 발효하기 전 단계에 불붙은 숯을 집어넣음으로써 맑은 빛깔을 낸다. 그것은 질적인 면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술을 저만치 따돌릴 만한데, 입천장에서 착착 달라붙는 그 부드러운 맛이 흡사 우리의 포도주를 연상시켰다. 맛이 매우 좋아 친구들을 위해 프랑스에도 좀 가져가고 싶었지만 운반할 수 있게 포장된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장시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 위 내용은 조선에 왔던 프랑스인 샤를 루이 바라와 샤이에가 쓴 《조선기행, 성기수 뒤침, 눈빛, 2001》에서 조선 전통술을 소개하며 극찬했던 말입니다. 그는 조선술이 얼마나 맛있던지 바다 건너 고국의 벗들에게 술맛을 보여주고 싶지만 오랫동안 보관하거나 유통이 어려웠기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정성껏 빚은 술은 오래 두면 발효가 진행되어 식초로 변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 전통주에는 그렇게 빚은 술 말고도 소줏고리에서 중류해 빚은 증류주가 있었는데 프랑스인이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이 증류주를 몰랐을 겁니다. 1766년(영조 42)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보면 증류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세한도(歲寒圖)는 '추운 겨울 정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따스함을 그리워하게 마련이지요. 그리하여 조그만 온정에도 마음 깊이 감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제주도에서 5년째 유배 생활을 하던 가운데, 그의 제자 우선 이상적(1804~1865)이 자신을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에 감격하여 그려 보낸 작품입니다.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 그 감개 또한 그토록 절실하고 절실하셨습니까? 또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와 이익을 따르지 않고 도도히 흐르는 세파 속에서 초연히 빠져나올 수 있겠습니까요? 다만 작은 마음에 스스로 하지 않을 수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물며 이러한 서책은, 비유컨대 몸을 깨끗이 지니는 선비와 같습니다. 결국 어지러운 권세와는 걸맞지 않는 까닭에 저절로 맑고 시원한 곳을 찾아 돌아간 것뿐입니다.” 이상적은 스승의 세한도를 받아보고 곧 위와 같은 감격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지난 11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소월아트홀 대강당에서는 서울특별시 주최, 서울문화재단ㆍ즉흥프로젝트 르뽀엥(Le Point, 대표 문정온) 주관으로 2016 서울문화재단 시민에술대학사업 “룰루랄라 우리의 청춘을 되돌려다오.” 공연이 열렸다. 늦었지만 이 공연의 의미를 짚어본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17일에도 서울 중랑구민회관 대극장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보건복지부 자료인 ‘최근 3년간(2013~2015) 시군구별 65살 이상 노인인구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살 이상 인구는 2015년 677만5101명으로 전체 인구 5152만9338명 중 13.1%를 차지했다. 이렇게 우리사회도 이젠 고령화사회가 되었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많이 부실하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야 하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랴? 이때 즉흥프로젝트 르뽀엥(Le Point,) 문정온 대표는 발 벗고 나선다. 어르신들이 신나게 춤을 추게 하는 것이다. 춤을 춘다면 고령화사회의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 춤꾼이 아닌 어르신들, 그들이 쉽게 춤을 출 수 잇을 것인가? 그러나 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霜降)”이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며,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르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 단풍은 하나둘 떨어져 지고 나무들은 헐벗어 간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이다. 상강이야말로 가을 절기는 끝나고 겨울로 들어서기 직전이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0월 21일 저녁 7시 30분 서울 남산국악당에서는 외팔의 대금명인 이삼스님이 12번째 공연이 열렸다. 이삼스님은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이 마비되었지만 외팔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여음적”을 손수 만들고, 연주법을 개발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님은 정악대금으로는 참으로 드물게 14번째라는 독주회를 연다. 무대가 열리자 먼저 이삼스님은 영산회상 중 세 번째 “세령산”을 독주한다. 스님은 이 곡을 “연인이 헤어질 때 가다가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보고 하는 느낌이다.”라고 했다는데 눈을 감고 들어보니 정말 스님의 설명은 기가 막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정악에 이렇게 속세의 얘기가 끼어도 될까? 이날 공연에서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대금과 범패의 병주였다. 스님의 “영산회상” 대금 연주와 함께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가 종성스님의 소리로 울린 것이다. 쉽게 들을 수 없는 ”범패“, 게다가 대금과의 병주는 내게 신비롭게 다가왔고, 둘의 소리가 이렇게 기막히게도 어울릴 수가 있었다. 역시나 가을에 잘 어울린다고 하는 대금독주 청성곡(淸聲曲)도 빠질 수 없다. 맑고 청청한 소리를 길게 뽑아낸다고 청성곡(淸聲曲)이며, ‘청성자진한잎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23일 일요일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霜降)”입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면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릅니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뀌었지요. 그리고 서서히 그 단풍은 하나둘 떨어져 지고 나무들은 헐벗게 됩니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입니다. 상강이야말로 가을 절기는 끝나고 겨울로 들어서기 직전이지요.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식물, 植物)들은 자람이 멈추지요.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로 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