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용자례(用字例) 일부를 인쇄한 벽지 한 음식점에 갔더니 벽지에 옛한글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반가워서 들여다봤더니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용자례(用字例) 부분이었는데 참 재미납니다. 지금 우리가 우산(雨繖)라 부르는 것은 우리 토박이말로 슈룹이었네요. 그리고 단풍은 단풍나무 풍(楓) 자를 썼는데 싣이라고 했습니다. 또 거북 구(龜)를 쓰는 거북이는 남샹이었고 그것이 변해서 60~70년대 만 해도 남생이란 말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가 하면 연(燕) 자를 쓰는 제비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는 다비였군요. 이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쓰는 말들의 많은 것은 원래 토박이말이 있었지만 한자말에 주인 자리를 빼앗기고 잊힌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 아팠습니다. 조선시대 한문 생활에 익숙하던 양반들 탓일 텐데 그들의 사대주의 한 단면이 아닐까요? 이제라도 우리는 가능한 토박이말을 찾아 쓰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우산(雨繖)은 토박이말로 슈룹, 단풍나무는 싣이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김남주 시인은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에서 이 즈음의 정경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로 겨울이 다가왔다는 손짓이다. 무서리 내리고, 마당가의 감나무 끝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호올로 외로운 때가 입동이다. ▲ 백양사 들머리의 감나무와 까지, 스님들은 아예 까치들에게 모두를 내주었나 보다. 입동은 24절기의 열아홉째이며,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이때쯤이면 가을걷이도 끝나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이며, 겨울 채비에 들어간다. 겨울을 앞두고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때인데 농가에서는 서리 피해를 막고 알이 꽉 찬 배추를 얻으려고 배추를 묶어주며, 서리에 약한 무는 뽑아 구덩이를 파고 저장하게 된다. 입동 전후에 가장 큰일은 역시 김장이다. 겨울준비로 이보다 큰일은 없는데 이 때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큰집 김장은 몇 백 포기씩 담는 것이 예사여서 친척이나 이웃이 함께했다. 우물가나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 배추 씻는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것도 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옥새는 옥으로 만든 임금의 도장이요, 임금의 목소리를 옥음(玉音)이라 하며, 훌륭한 원고를 뜻하는 말로 옥고(玉稿)라는 말도 있듯이 옥(玉)은 매우 귀한 보석의 하나입니다. 옥은 예부터 동양문화권에서는 금, 은과 함께 즐겨 쓰던 대표적인 보석으로 낱말 속에 집어넣어 매우 귀한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쓰기도 했지요. 한편 옥은 음양오행의 다섯 가지 덕인 인(仁)ㆍ의(義)ㆍ지(智)ㆍ용(勇)ㆍ각(角)을 상징하는 꾸미개(장신구)로 쓰였는데 방위신에 예(禮)를 베푸는 예기(禮器)를 비롯하여 사회계급의 신분을 구분하는 드리개(매달아서 길게 늘이는 물건)와 악기인 옥경(玉磬), 약재와 의료용구 등 여러 가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청동기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옥석공예품과 삼국시대의 여러 고분에서 출토된 곱은옥, 구슬옥, 대롱옥과 신라의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였던 진평왕의 옥허리띠를 통해 옥이 상류층의 중요한 꾸미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 장주원(張周元) 선생의 옥 원석을 자르는 모습(문화재청 제공) 옥공예품은 중국을 비롯하여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왕족계열과 특수계층에 한하여 지닐 수 있었지요. 옥공예품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능생이, 허벅대바지, 시불통개(웃동), 허벅등생이, 애기대바지능생이, 애기등덜기, 펭, 버럭지, 옴팍지, 촐래단지, 방춘이, 허벅등덜기, 등덜펭, 대황... 무척 정겨운 이 이름들은 제주 옹기의 이름입니다. 이름이 다양한 만큼 그 쓰임새도 다양한 제주 옹기 가운데 뭍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물허벅’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뭍사람들이 써오던 정감어린 옛 그릇들이 플라스틱이나 스텐리스 또는 현대식 자기에 밀려 사라지듯 제주 옹기 역시 누천년 써오던 그릇들이 산업화의 물결로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 1970년 초입니다. ▲ 촐래단지(반찬그릇)-맨윗줄, 애기등덜기와 펭-가운데, 애기대바지능생이, 애기대바지능생이ㆍ허벅능생이ㆍ시불통개 - 맨아래 그러나 이렇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제주 옹기의 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하여 젊은이들이 그 뜻을 모아 제주 옹기 지키기에 팔을 걷어붙였지요. 이들은 제주시 옛 구억분교 자리에 제주옹기배움터를 만들고 2009년 3월에는 제주옹기박물관을 만듭니다. 제주 옹기는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릇의 기본이 되는 흙을 찾아 다루는 질대장, 그릇을 만드는 도공장, 가마를 축조하는 굴대장, 불을 때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 공표한 날입니다. 대한제국 말기 개화기를 맞은 우리나라는 한글을 공용문(公用文)으로 채택하고, 또 학교를 세워 각종 교과서를 한글로 펴내야 했지만, 통일된 정서법(正書法, 말을 올바르게 적는 방법)이 없어서 정부는 1907년 학부(學部) 안에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를 설치하여 정서법 통일안을 마련하도록 하였지요. 그래서 나온 것이 어윤적이능화주시경권보상송기용지석영이민응윤돈구 등 8인의 위원이 작성한 국문연구(國文硏究)였습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국문연구소도 해체되고 국문연구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이후 조선어학회는 1930년 12월 13일 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총회의 결의로 정하고, 그 첫 원안(原案)을 1932년 12월에 작성하였습니다. 원안작성에 참여한 위원은 권덕규김윤경박현식신명균이극로이병기이윤재이희승장지영정열모정인섭최현배 등 12인이었지요. 그 뒤 3개년에 걸쳐 125회의 회의를 거듭하였고, 그 결과로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당시의 한글날은 10월 29일)을 기하여 이 새로운 안을 세상에 공표하니 이것이 곧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정부는 3일 오는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 고시했다. 또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부합동브리핑에 나선 황교안 국무총리는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선택했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뺀 7종 교과서를 모두 좌편향으로 매도하는 등 극우주의를 방불케 하는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3일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만 고시를 확정하면서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의견 처리 결과를 보면 정부의 고시가 무리한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의견을 제출한 47만3880명 중 반대는 32만 1075명으로 전체의 67.75%를 차지했다. 반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의견은 15만2805명으로 32.24%에 그쳤다. ▲ 지난 10월 17일 열린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범국민대회 모습 ▲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 고등학생이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손팻말을 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여론도 싸늘하다. 2일 내일신문에 따르면, 1일 이 신문과 여론조사 업체 '디오피니언'이 진행하는 정례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은 응답자의 32.3%, 반대는 59.0%였다. 박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동의보감》을 쓴 허준은 어의로서 내의원에서 일했습니다. 내의원(內醫院)은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쓰이던 약을 조제하던 관청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이 내의원과 같은 일을 하던 곳으로 상약국(尙藥局)이 있었습니다. 충북 음성 한독의약박물관에 가면 이 상약국에서 쓰던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이 있지요. ▲ 보물 제646호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 (한독의약박물관 제공) 청자상감 상약국 글씨 음각운룡무늬 뚜껑그릇[靑磁 象嵌尙藥局銘 陰刻雲龍文 盒]은 한 자 이름으로 보통 합(盒)이라 부르며 뚜껑 달린 원통형의 그릇으로, 높이 9.6㎝, 아가리 지름 7.5㎝, 밑지름 6.0㎝의 크기입니다. 고려청자에는 이런 뚜껑그릇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키가 작고 납작한 형태와 키가 크고 원통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뚜껑그릇은 키가 크고 원통형으로 단순한 모양입니다. 그릇 아래쪽과 뚜껑 위쪽 모서리를 비스듬히 깍아내 매우 부드럽고 듬직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요. 뚜껑 위의 둥근 평면에는 정교한 솜씨로 구름과 학 모양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뚜껑그릇에서 주목되는 것은 몸체 윗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악기 가운데 두 줄을 활로 마찰시켜 연주하는 해금(奚琴)은 깡깡이, 앵금 등의 이름으로도 불렀다. 《고려사》 권71(「악지」)에 속악기의 하나로 나오기에 고려시대에 이미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해금은 이후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연주되고 있다. 관현합주에 해금이 편성될 때, 지속음을 내면서 관악기의 선율을 따라 연주하므로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고 하여 연주 특성상 관악기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런 두 줄의 미학, 해금의 중견 연주자 이유라는 오는 11월 7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을 한다. 이날 공연은 "해금 다스름 설레임", "즉흥 시나위", "천자뒤풀이", 김세종제 춘향가로 듣는 이유라의 해금산조"다. 반주는 대금에 국립국악원 단원 김상연, 거문고에 경기도립국악단 수석 허익수, 아쟁에 한무전통예술단장 신재현, 장구와 북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 정준호, 퍼커션에 에스닉 팝 그룹 락 대표 이충우가 맡으며, 판소리는 제25회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을 받은 최건이 해줄 예정이다. 이유라는 난계예술제 문화부장관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유라 독집음반 “The Moment of Lee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2008년 불에 탄 숭례문 복원에 금강송이 쓰였습니다. 금강송이란 소나무 가운데 껍질이 붉고 곧게 위로 뻗는 것을 말합니다. 금강산에서 설악산을 거쳐 경북 울진, 봉화까지 백두대간을 타고 자라는 것으로 잘 갈라지지도 않고 뒤틀리지도 않으며 잘 썩지도 않아 예부터 궁궐 건축이나 배를 건조하는데 쓰였지요. 육지에서 자란다고 하여 육송(陸松)이라고도 불렀습니다. ▲ 660년 된 천연기념물 제160호 제주 산천단 곰솔 무리 그에 견주어 주로 바닷가에 자라 해송(海松)이라고도 불리는 곰솔도 있지요. 곰솔은 보통의 소나무와 달리 잎이 억세고, 겨울눈은 붉은색이 아닌 회백색인 것이 특징입니다.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黑松)이라고도 하는데 곰솔이라는 말도 검은솔에서 왔다고 합니다. 곰솔 가운데는 제주시 516로(어라일동) 산천단에 있는 8 그루의 곰솔 무리(천연기념물 제160호)도 있습니다. 이 곰솔은 나이가 500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평균높이는 29.7m, 평균둘레는 4.35m로 우람하고 신비스럽지요.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날씨가 나쁠 때에는 백록담에 올라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곡이란 무엇일까? 가곡(歌曲)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따르면 소규모 국악 관현(管絃) 반주에 맞추어 남성과 여성들이 부르던 한국 전통 성악(聲樂)이라고 풀이한다. 가곡은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에 속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 그러나 가곡을 서양가곡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이런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가곡을 실제 들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어제 10월 30일 저녁 7시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렸다. 여류가객 강숙현의 가곡(정가)입문 30주년을 기념하는 풍류단 시가인과 함께하는 강숙현의 정가와 노래 풍류, 시절을 노래하다(제6회 강숙현 독창회)가 그것이다. ▲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열창하는 강숙현 가객 ▲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청중이 직접 버나돌리기 체험을 하게 한다. 공연 전 풍물패가 등장한다. 차창호와 천지개벽 남사당놀이패가 특별출연하여 한바탕 신명을 풀어놓는다. 특히 이들은 풍물 가락에 더하여 무동놀이와 버나돌리기로 청중들의 넋을 빼놓는다. 더하여 버나돌리기는 청중 한 명을 무대에 올려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