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국보 ‘청동 은입사 물가풍경무늬 정병‘이 있습니다. 정병은 맑은 물을 담아두는 병으로, 원래 승려가 지녀야 할 열여덟 가지 물건 가운데 하나였으나 점차 불전에 바치는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으로 쓰였습니다. 또 불교의식을 할 때 쇄수게(灑水偈, 관음보살을 찬탄하는 소리)를 행하면서 의식을 이끄는 승려가 솔가지로 감로수를 뿌림으로써 모든 마귀와 번뇌를 물리치도록 할 때 쓰이기도 합니다. 정병은 주로 물가의 풍경을 담아냈는데, 언덕 위로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또는 물 위로 노를 저어가는 어부와 낚시꾼 등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합니다. 이 모든 풍광이 표면에 홈을 파서 은선을 두드려 박는 은입사 기법으로 장식되었지요. 병의 긴 목에는 구름무늬, 동체의 어깨와 굽 주위에는 법회나 설법 때, 뿔이나 대, 나무 따위로 호미 모양으로 만들어 승려들이 지니는 작은 막대기인 여의두 무늬, 귀때(주전자의 부리처럼 액체를 따를 수 있는 구멍)에는 풀무늬가 새겨졌습니다. 은을 돌린 굽은 지금은 파랗게 녹슨 몸체와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요. 청동제의 병에 은상감을 한 이러한 기법이 고려청자에도 쓰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초인 5일 저녁 5시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관 풍류극장에서는 판소리 노은주 명창 제자들의 제1회 발표회 <소리의 맥>이 있었다.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일봉래 이방장과 삼영주 이아니냐 죽장짚고 풍월실어 봉래산을 구경갈제 경포 동령의 명월을 구경하고 청간정 낙산사와 총석정을 구경하고 단발령을 얼른 넘어 봉래산을 올라가니 천봉만학 부용들은 하늘닿게 솟아있고 백절폭포 급한물은 은하수를 기울인 듯 무대에서는 박효순ㆍ서은선ㆍ박경희ㆍ백지수ㆍ김성애ㆍ임윤정 등 6명이 부르는 단가 ‘만고강산’이 울려 퍼진다. 이들은 전문 소리꾼들이 아니다. 그저 가정주부인데 취미로 판소리를 배운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긴 사설을 전혀 틀지지 않고 외워 북장단을 쳐가며, 병창을 해낸 것이다. 청중들은 혀를 내두른다. 게다가 무대에는 자막에 사설을 구구절절이 내보내 준다. 전문소리꾼의 발표회장이 아니고 판소리를 취미로 배운 소리꾼 발표회장에는 판소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이 올 것으로 생각한 노은주 명창의 뜻이라는 후문이다. 아마추어 발표회에 품격을 높여준 것은 무대 열리기 전 축사 순서였다. 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30~48달 된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릴 때부터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때 언어 습득이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하여 영어유치원을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기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목 시간을 빼서 영어몰입교육을 한 초등학교에 중징계가 내려졌다는 기사도 보입니다. 하지만, 영어 교육의 전문가인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학과의 박거용 교수는 "어려서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을 때 영어를 가르치면 안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어인 영어를 가르치기 이전에 자국어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한 다음 영어를 가르쳐도 늦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부모들은 일찍 유학을 보내야만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는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하는 중편소설에 ”고등학교만 마치고 미국에 가면 아들은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잊어버리고 미국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배울 것이다. 미국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귀국해서 한국에서 살면 오히려 평생 부모 또는 사회와 갈등이 생길 것이므로 아들은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 결국 아들은 우리 곁을 영영 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어제 12월 첫날 저녁 5시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 ‘가치하다’에서는 <김연정의 승무와 태평춤 이야기> 강연콘서트 공연이 열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김연정 춤꾼은 무대에 오르자마자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낭송하며, “이날 공연에 오신 분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온 것이다. 저에겐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고백한다. ‘강연콘서트 공연을 하기로 하고선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고민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말했다. “오늘 공연할 승무와 태평춤은 하늘의 춤과 땅의 춤이라 할 것입니다. 승무는 하늘의 이치, 곧 자연과 만물의 변화 원리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춘다면, 태평춤은 땅의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보듬는 마음으로 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춤은 나에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그 말을 관객 여러분께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김연정은 그냥 춤꾼이 아니라 강연콘서트를 해야 할 만큼 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하면서 그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황이 고향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나이가 들었으므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빌었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병이 들었는데 아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예조가 틀림없이 관례에 따라 예식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할 것인데, 너는 모름지기 내가 죽으며 남긴 뜻이라 말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도 비갈(碑碣, 사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글자를 새겨 세우는 것)을 세우지 말라.‘ 하였다.(가운데 줄임) 그로부터 며칠 뒤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위는 《선조수정실록》 4권, 선조 3년(1570년) 12월 1일 기록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조선조 중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나이가 들자,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려 벼슬을 사양하려 했고, 죽기 전 아들에게 나라에서 조의금이나 장례용품 주면 사양하고 받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을 정도였지요. 요즘 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첫눈 편지 - 장인성 첫눈이 내렸습니다 단풍이 다 지기도 전에 홍시가 다 덜어지기도 전에 첫눈이 왈칵 내렸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합니다 천지를 하얗게 덮은 날도 임은 소식이 없습니다 홍시가 익으면 따달라고 했는데 온다는 소식도 없습니다 내심 기다려는 보지만... 한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흰 눈 덮인 홍시는 더욱더 빨갛습니다 임이 안이 오시면 까치밥이 됩니다 임도 첫눈이 온 줄 아실 덴데 그 임이 더욱더 미워집니다. 며칠 전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그 탓에 곳곳에선 교통사고가 나고 출근하는 이들은 지각하기 일쑤였다. 어렸을 때는 눈이 오는 게 그렇게 반갑더니 이제 교통 걱정을 먼저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으니 늙기는 늙었나 보다. 하지만, 첫눈이 오는 소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24절기의 여덟째인 소만(小滿) 무렵 어떤 이들은 손톱에 봉숭아를 물들이고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빠지지 않으면 첫사랑을 다시 만난다고 믿었다. 그래서 첫눈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첫눈은 단풍이 다 지기도 전에, 홍시가 다 덜어지기도 전에 왈칵 내려버렸다. 장인성 시인은 그의 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장령(掌令, 사헌부의 정사품 벼슬) 구치곤(丘致崐)이 아뢰기를, "지금 중의 무리들이 일을 하지 않고 놀면서 먹고 있으니, 백성에게 해독(害毒)을 끼치는 것이 심합니다. 이들을 군대에 편입시킨다면 군사가 어찌 넉넉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평안도(平安道) 백성 가운데 중이 된 사람은 다른 도(道)보다 곱절이나 되니, 청컨대 모두 찾아내어 군대의 정원(定員)에 편입시키소서." (가운데 줄임) "지난 정해년에 호패(號牌)를 시행하였을 때도 중의 무리가 30여 만 명이나 되었으니, 이로써 살펴본다면 지금은 거의 40여 만 명이나 될 것입니다.“ 위는 《성종실록》 111권, 성종 10년(1479년) 11월 29일 치 기록입니다. 중의 무리가 40여 만 명이나 돼 군사가 넉넉하지 않다고 하며, 중들을 군대에 보내도록 하자고 합니다. 불교의 나라 고려와 달리 조선시대가 되자 성리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바뀌면서 불교를 탄압하고 이에 따라 따라서 불교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262칸에 달하던 대가람 경기도 양주 회암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융성하였습니다. 다만, 그렇게 번영했던 회암사는 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무형유산 속에서 길어 올린 지혜가 학문적 성과로 꽃피고, 그 성과가 다시 우리의 삶과 미래를 비추는 하나의 등불이 될 때, 우리는 이를 “무형유산의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형유산학회의 ‘Janelii×임돈희 무형유산 학술상’은 학문적 연구와 전승 현장을 연결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상징적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1월 22일 청주 도시재생허브센터 어반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시상식에서는 프롬히어의 설지희 대표가 첫 수상자로 뽑혔다. 그의 논문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전기 선장의 역할과 선박 기술문화」는 조선 전기 선박 기술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선장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며, 전통 기술문화를 탐구한 연구다. 전통을 살리고, 학문을 이어가는 상의 탄생 자넬리×임돈희 무형유산 학술상은 무형유산 연구의 세계적 대부인 자넬리 교수(Roger L. Janelli, 1943~2021)와 한국 무형유산학의 선구자인 대한민국학술원 임돈희 회원의 뜻을 기리며, 두 학자가 출원한 기금을 기반으로 제정되었다. 이 상은 지난 2년 동안 《무형유산학》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연구
[우리문화신문=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무형유산학회(Intangible Heritage Association)가 지난 21일 국가유산청으로부터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받으며 공식 출범했다. 이는 2024년 8월 18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창립총회를 성공적으로 마친지, 약 3달 만의 결실로, 무형유산 연구와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 사건이다. 무형유산학회는 2015년 임돈희, 함한희 명예교수 등을 중심으로 설립된 세계 첫 무형유산 연구 학술단체다. 설립 초기부터 무형유산을 ‘살아있는 유산’으로 정의하며 학제 간 협력을 통해 학문의 지평을 넓히는 데 주력해 왔다. 2015년 창립 이후 현재까지 한 해에 두 차례 춘계ㆍ추계 학술대회를 꾸준히 열어 모두 20회의 학술대회를 진행했으며, 학술지 《무형유산학》도 2016년부터 해마다년 두 번씩 펴내 모두 18권을 출판하며 무형유산 연구의 깊이를 더해왔다. 사단법인화 과정과 의미 8월 18일 열린 창립총회에서는 발기인 7명(박정석 이사장, 윤동환ㆍ정성미ㆍ이미령ㆍ설지희 이사, 김형근ㆍ오세미나 감사)을 비롯해 약 50명의 위임 동의와 회원들이 참여하여 학회의 법인 전환을 의결했다. 이후 국가유산청의 설립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 아래로 서리서리 넣었다가 우리님 오신 날에 밤이거나 낮이거나 / 굽이굽이 펴드리라 / 언제나 그립고 그립던 님을 만나서 세세원정을 헐거나 헤~~” 무대에서는 아쟁 이태백 명인이 작곡한 ‘육자배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라도 민요 가운데 가장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육자배기와 흥타령을 다양한 장르로 선보인다. 대표적인 남도소리 소리꾼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김나영 명창이 걸쭉한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어제 11월 2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는 <김나영의 남도소리 : 향연> 공연이 무대에 올려졌다. 김나영은 성창순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태백 명인에게 남도잡가, 진도씻김굿 등을 배우며 소리의 영역을 확장하였고 음반 <꽃과 같이 고운님>을 발매하였다. 김나영은 2014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대통령상을 받았고, 2019년 진도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명창이다. 현재 (사)성창순 판소리보존회 이사장과 목원대학교 국악과 교수를 하고 있으며, 활발한 활동과 함께 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