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교목(喬木)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ss에게 -
[한국문화신문 = 미완근 기자] 산 이육사 바다가 수건을 날려 부르고 난 단숨에 뛰어 달려서 왔겠죠 천금같이 무거운 엄마의 사랑을 헛된 항도(航圖)에 역겨 보낸 날 그래도 어진 태양과 밤이면 뭇별들이 발아래 깃들여 오오 그나마 나라 나라를 흘러 다니는 뱃사람들 부르는 망향가 그야 창자를 끊으면 무얼하겠소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화제(畵題) 이육사 도회의 검은 능각(稜角)을 담은 수면(水面)은 이랑이랑 떨여 하반기의 새벽 같이 서럽고 화강석에 어리는 기아(葉兒)의 찬꿈 물풀을 나근나근 빠는 담수어의 입맛보다 애닳어라 정축(丁丑, 1937) 00 야(夜)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황 혼 이육사 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보련다. 그리고 내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텐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한국문화신문 = 미완근 기자] 아미(娥眉) - 구름의 백작 부인 이육사 향수에 철나면 눈썹이 기나니요 바다랑 바람이랑 그 사이 태어났고 나라마다 어진 풍속 자랐겠죠 짓푸른 깁장을 나면서 그 몸매 하이얀 깃옷은 휘둘러 눈부시고 정녕 왈츠라도 추실란가 봐요 햇살같이 펼쳐진 부채는 감춰도 도톰한 손결 교소를 거루어서 공주의 홀보다 깨끗이 떨리요 언제나 모듬에 지쳐서 돌아오면 꽃다발 향기조차 기억만 새로워라 찬젓때 소리에다 웃끈을 흘려보내고 촛불처럼 타오르는 가슴속 사념은 진정 누구를 아끼시는 속죄라오 발아래 가득히 황혼이 내려치오 달빛은 서늘한 원주 아래 듭시면 장미 쩌이고 장미 쩌흩으시고 아련히 가시는 곳 그 어딘가 보이오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자야곡(子夜曲) 이육사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우에 이끼만 푸르러라 슬픔도 자랑도 집어삼키는 검은 꿈 파이프엔 조용히 타오르는 꽃불도 향기론데 연기는 돛대처럼 내려 항구에 들고 옛날의 들창마다 눈동자엔 짜운 소금이 저려 바람 불고 눈보라 치잖으면 못 살리라 매운 술을 마셔 돌아가는 그림자 발자취 소리 숨 막힐 마음속에 어데 강물이 흐르뇨 달은 강을 따르고 나는 차디찬 강 맘에 드리노라 수만 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잖는 무덤 우에 이끼만 푸르러라 * 자야(子夜) : 밤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까지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파초(芭蕉) - 이육사 항상 앓는 나의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芭蕉) 너의 푸른 옷깃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축여 주렴 그 옛적 사라센의 마지막 날엔 기약(期約)없이 흩어진 두낱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들의 잡아 못논 소매끝엔 고은 손금조차 아직 꿈을 짜는데 먼 성좌(星座)와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잊었던 계절을 몇번 눈위에 그렸느뇨 차라리 천년(千年) 뒤 이 가을밤 나와 함께 빗소리는 얼마나 긴가 재어보자 그리고 새벽 하늘에 어데 무지개 서면 무지개 밟고 다시 끝없이 헤어지세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초가 - 이육사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고성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 한 폭 좀이 쳐. 띄엄 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발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뺨 우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강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 오면 바림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에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의 말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꽃 이육사 (李陸史)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쟎는 그 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 (約束)이여. 한 바다 복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 성(城)에는 나비처럼 취(醉)하는 회상(回想)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
[한국문화신문 = 마완근 기자] 독 백 이육사 운모(雲母)처럼 희고 찬 얼굴 그냥 주검에 물든 줄 아나 내 지금 달 아래 서서 있네 높대보다 높다란 어깨 얕은 구름쪽 거미줄 가려 파도나 바람을 귀밑에 듣네 갈매긴 양 떠도는 심사 어딘 하난들 끝간 덴 알리 으릇한 사념을 기폭(旗幅)에 흘리네 선창마다 푸른 막 치고 촛불 향수(鄕愁)에 찌르르 타면 운하는 밤마다 무지개 지네 박쥐같은 날개가 펴면 아주 흐린 날 그림자 속에 떠시는 날쟎은 사복이 됨세 닭소리나 들리며 가랴 안개 뽀얗게 내리는 새벽 그곳을 가만히 내려서 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