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관악영산회상》제1곡 <상령산(上靈山)>을 무용반주 음악으로 변주시킨 음악이 바로 향당교주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변주방법은 각 장고점간의 시가(時價)를 규칙적으로 만들고, 가락이 없는 시작부분에 피리 가락을 채워 넣으며, 낮은 선율은 옥타브 위 음으로 올려서 연주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세 번째 영산회상인 <평조회상 平調會相>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영산회상이란 곧 <현악영산회상>을 뜻하는 말이다. 이를 변주시킨 음악이 바로 <평조회상>이다. 어떻게 변주시켰을까? 전체적으로 4도 아래로 이조(移調)시킨 음악이다. 낮은 악조로 옮겼기에 이름도 <평조 영산회상>, 줄여서 <평조회상>으로 부른다. <현악영산회상>이 높은 조, 즉 웃조(羽調)이고 그에 반하여, 낮은 조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평조회상은 현악영산회상과 동일한 음계이며, 다만 그 중심음이 영산회상보다 4도 낮은 곡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곡을 4도 낮게 연주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악기에 따라서는 음역의 제한으로 인해, 내릴 수 없는 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관악영산회상>은 <대풍류>로 대부분 무용반주로 쓰여 왔다는 점, 상령산은 쌍(雙)-편(鞭)-고(鼓)-요(搖)의 불규칙적 장단이고, 박을 치면 모든 악기가 동시에 시작하지 않고, 북과 장고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피리가 가락을 연주하며, 이어서 모든 악기의 합주가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연음(連音)형식이 특징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와 같은 불규칙 장단의‘상령산’악곡을 무용 반주음악으로 쓸 경우에는 우선 장단을 규직적인 장단으로 바꾸어야 했다. 합주 음악에서는 불규칙 장단이 자연스럽고 묘미가 있지만, 이를 무용의 반주음악으로 쓸 경우에는 원곡 그대로의 활용이 어렵다. 그 이유는 여러 명의 무용수가 동일한 동작, 또는 통일된 춤사위를 표현해야 하는데, 불규칙장단의 음악으로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장고점간의 시가(時價)를 규칙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같은 <상령산>이라 하더라도, 관악의 상령산과 현악이나, 평조회상의 상령산은 그 장단의 형태는 같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악 영산회상이나 평조회상의 상령산 장단형은 雙이 6박, 鞭 4박,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 교수] 지난주에는 <현악(絃樂)영산회상>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가야금, 양금이 중심을 이루며 아명(雅名)은 <중광지곡(重光之曲>이고, 이를 민간 음악계에서는 줄(絃)악기 중심이란 뜻에서 <줄풍류>로 부른다는 점, 영산회상과 줄풍류는 가락이나, 장단, 표현법 등에 차이를 보이고 있어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 영산회상은 원래 상령산이었다는 점,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중령산 이하의 9곡의 모음곡으로 확대 발전되어 왔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현악영산회상이 되었든, 민간의 줄풍류가 되었든 영산회상은 전문가 뿐 아니라, 글공부하는 선비나 고관대작, 지체가 높은 양반들이 교양과 취미로 즐겨 왔던 음악이다. 이번주에는 현악영산회상과 대비를 이루는 <관악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관악이란 관악기(管樂器), 곧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의 합주를 뜻한다. 원래 <관(管)>이란 대나무와 같이 속이 비어 있으면서 동그란 형태여서 이것을 입으로 불어 소리내는 악기의 총칭이란 의미이다. 대표적인 악기들로는 대금이나 피리, 소금, 단소, 퉁소와 같은 악기들인데, 관악영산회상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 지난 주에 영산회상(靈山會相)이란 말은 넓은 의미로 석가의 교설(敎說)이지만,『악학궤범(樂學軌範)』이나『대악후보(大樂後譜)』등에는 음악의 악곡 이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 조선조 후기에는 점차 세속화되면서 가사를 잃고, 기악곡화 되어 현재는 9곡의 모음곡(組曲)이 되었다는 점, 현재는 국악연주회나 개인발표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또한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영산회상은 세 갈래의 음악으로 구분된다. 이 음악은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현악기 중심으로 연주되는 형태와, 관악기 중심으로 연주되는 형태, 그리고 관현악 편성으로 연주되는 형태가 있는 등, 악기 편성이 각각 다르게 연주되고 있는 음악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현악기가 중심을 이루는 악곡의 이름이 바로 <현악(絃樂)영산회상>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관악기들이 중심이 되는 음악은 <관악(管樂)영산회상>이다. 또한 현악영산회상은 웃조로 되어 있는 음악인데, 이를 조금 낮추어 평조로 만들고, 관악기와 현악기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평조(平調)회상>이 있다. 먼저, 현악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또는 <시절 단가>라고도 했는데, 영조 때 이세춘이 처음으로 장단을 배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시조라는 명칭에서 <평(平)>은 가곡 <평거(平擧)>와 같이 보통의 높이로, 중허리시조는 <중거(中擧)>와 같이 중간부분을 들어내는 곡조, 지름시조는 <두거(頭擧)>와 같이 머리 부분을 높이 내는 곡조, 사설시조는 농(弄)시조, 또는 엇시조로, <언롱(言弄)>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시조창보(時調唱譜)』를 펴낸 이양교(李良敎)는 김진홍(金眞紅), 장사훈, 김태영, 한창환 등을 통해 추교신, 임기준, 최상욱 등의 시조가락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전통성이 인정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주에는 기악합주곡으로 널리 알려진 <영산회상(靈山會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영산회상>은 넓은 의미로 석가의 교설(敎說)이다. 홍윤식은『한국불화의 연구』에서 이 말은 불교자체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불교의 상징적인 표상으로서의 뜻을 지닌 말이라고 했다. 의미를 좁혀 영축산에서 석가의 법화경(法華經)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시조의 학습을 위해서는 쉬운 악보의 제작, 지도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내포제 시조의 확산을 위해서는 도내(道內)공직자들과 교사들을 동호인으로 안내해야 하며, 국내외 방문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그러면서 동 보존회는 이제까지 추진해 온 발표회, 경연대회, 강습회 등을 꾸준히 지속시켜 나가야 한다는 당부의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주에는 시조음악에 관한 일반 상식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본래 시조, 또는 시조창은 <시절가>, <단가>, <시절단가>라는 명칭으로 불러온 노래였다. 시조는 조선조 영조 무렵, 신광수(申光洙)의 《석북집(石北集)》 관서악부에 보이는 시구(詩句, 곧 “ 일반 시조에 장단을 배열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李世春)으로부터 비롯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그 악보는 순조 때,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유예지(遊藝志)편에 전하는 시조 악보라는 점에서 200여년을 헤아린다. 이 악보를 해독하여 세상에 알린 장사훈 교수는 이 시조가 현행 경제(京制)의 평시조라는 점을 밝혔으며, 그 이후 평시조는 가곡의 다양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김동석 교수(Don Kim)의 국악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대학 2년 때 조영남, 문호근, 이건용 등과 <서울음대 연극부>를 만들어 공연하기 시작하였고, 3학년 때에는 <중앙여자고등학교>의 가야금 강사로 위촉되어 한 학년 전체 학생들을 지도하였다는 이야기, 군 복무를 마치고 <리틀엔젤스 어린이 무용단>의 음악담당 교사가 되어 미국 닉슨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과 일본에서는 천황 부부가 참석한 자리에서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의 관심은 UCLA에 민족음악학과가 있다는 사실과 그곳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리틀엔젤스와 해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김 교수는 유학 준비를 서둘렀다. 우리말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 오래지 않아 UCLA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았고, 1971년 6월, 꿈에 그리던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외국, 특히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고 녹록한 일이 아니란 점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구구절절한 회고담이 유학 초기의 어려움을 잘 말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 김숙자 명인은 타계하기 전, 수제자인 최윤희에게 이수증을 주고 그 전승체계를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 이수증(履修證)이란 무형문화재 제도에서 전수생 과정을 마쳤다고 하는 하나의 증명서인데, 수여 제도는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다가 보유자에게 일임하기도 하고, 현재는 다시 문화재청이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 최윤희는 선생을 잃고, 평소 동경해 오던 인도로 가서 주위와는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으나 춤꾼이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법, 특히 <도살풀이춤>을 좋아했는데, 이 춤은 긴 수건을 허공에 뿌리며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가는 춤사위가 일품이라는 이야기 등을 지난주에 하였다. 그래서일까, 최윤희는 가는 곳마다 <도살풀이춤>을 추었다. 미국공연을 마친 후에는“ 순백색으로 처절하게 펼쳐지는 살풀이, 그 예술성으로 청중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하다”라는 논평이 신문이나 잡지를 도배하듯 했다. 그렇다. 그가 펼치는 도살풀이 춤사위는 비교적 선이 크고 굵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천근(千斤), 만근의 무게가 느껴지는 춤이며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이 땅으로부터 하늘에 닿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입춤>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입춤>이란 서서 추는 모든 춤의 포괄적 명칭으로 이해해도 된다는 이야기, 즉흥성의 멋과 흥을 위주로 하는 자연적인 곡선의 춤으로 <교방무>, <굿거리 춤>, <수건춤>, <부채춤>, <소고춤> <헛튼춤>, <즉흥무>, <흥춤>, <기본춤>이란 이름으로도 불러왔다는 이야기, 입춤의 명무였던 김숙자의 춤사위는 현재 대전시 예능보유자인 최윤희가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1990년, 국가예능보유자가 된 김숙자 명무는 그 이듬해에 병사하게 된다. 당시의 상황을 최윤희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별안간 저에게 올라오라는 연락을 주셨어요. 저는 무슨 일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지요. 저에게 선생님은 불분명한 목소리로 무슨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더니 몹시 답답해하시면서 방에 있던 딸, 김운선에게 큰소리로 ‘언니에게 이수증 서류를 설명해 줘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숙자의 수제자, 최윤희(본명, 최영순)는 현재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고, 흥이 많았던 소녀로 유홍란을 통해 김숙자 문하에 들어가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5년여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다. 최윤희가 스승 밑에서 열심히 배운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말이다. 이 춤은 예인무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원래 흉살(凶殺)과 재난(災難)을 소멸시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기원과,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된 춤이다. 이 춤은 춤사위가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깊은 뜻이 있는 춤이며, 특히 흰색의 긴 천을 들고 추는 것이 특징인데, 그 긴 천에 의한 공간상의 유선이 훨씬 다양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춤이다. 스승에게 배운 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로 완전히 소화한 뒤, 일반 수강생들 앞에 조교의 역할을 다 하였다고 한다. 매매일을 춤 속에서 살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