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나는 걸어갑니다. 이제는 사뿐사뿐 걸어도 좋고 타박타박 걸어도 좋아요. 이제는 나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 마구 달리지도 않고, 일본 경찰에게 쫓기면서 허겁지겁 도망치지도 않아요. 독립이 된 우리나라에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뚜벅뚜벅 나는 걸어갑니다. 일본 경찰에 쫒기면서 허겁지겁 도망치지 않아서 좋단다. 바로 위 글은 담벼락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쓰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심한 고문을 받아 숨진 김용창 독립지사가 한영미 동화작가의 입을 통해서 한 말이다. 어제 화성시 향남읍 상두리에서 있었던 김용창 애국지사 추모제에서 한영미 동화작가는 올초에 펴낸 자신의 동화책 《낙서 독립운동》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글을 낭독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화성시 작은마을 상두리에서 태어난 김용창 지사는 15살에 상경하여 낮엔 우체국 사환으로 일하고 밤엔 덕수공립상업학교에 다니며 공부했다. 직장에서 일본인들이 행하는 차별과 일제의 노골적인 식민지 정책에 분노하여 스스로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1944년 5월 종로 거리와 건물들의 담벼락에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쓰다가 일본 경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푸르던 청보리밭이 황금물결 보리밭으로 변신했다. 보리알곡이 까맣게 드러나 보이고 짹짹이는 참새소리에 귀가 따갑다. 보릿고개얘기는 상상하기 힘들다. 머잖아 보리 수확하는 콤바인소리 요란하겠지. 다음엔 어떤 작물을 심을지 궁금하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당연시 했던 푸른 하늘인데 오늘 따라 반갑고 감사하다. 모내기 끝난 논물에 비친 푸른 하늘도 아름답다. 더불어 오월의 아카시아향기와 찔레꽃 향기도 더 짙게 느껴진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요즘 농촌은 모내기 전 흙덩이를 부수어 논바닥을 고르는 써레질이 한창이다. 해가 떠올라 더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려는 듯 열심히 트렉터를 움직이고 있다. 예전엔 저벅저벅 이랴이랴 소를 몰아 종일토록 써레질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요즘엔 뾰족뾰족한 철로 만든 써레를 붙인 트렉터로 한 시간이면 족하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오월 아침에 빛나는 보리밭 지난해 가을 들깨 수확 후 씨 뿌린 보리밭 겨울 매운바람 이기고 씩씩하게 자라났다네 오월 아침 산들 바람과 햇살에 일렁이며 빛나는 보리밭이네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제암ㆍ고주리 학살사건 100주년 추모제'가 어제(4월15일) 화성시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서 열렸다. 23인 합동묘역 참배 및 헌화가 있었고 뒤이어 공식행사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정치인 내빈소개는 따로 하지 않고 자막으로 대신했으며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에 이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참여한 어린이들과 함께 목청껏 애국가 4절을 모두 불렀다. 유족대표 안소헌 광복회 화성지회장은 “왜놈은 망하고 인민의 나라 섰으매 거친 밤 촉새되어 울던 노래 그치라.”라는 제암리 마을에 어귀에 서있던 3.1운동순국기념비에 적혀진 박세영 시인의 추도시를 잠시 읊는다. 그리곤 “세월이 묵묵히 흘러 어언 100년. 해마다 3월 1일이 오고 4월이 오면 순국하신 29선열을 생각할 때면 불현듯 그 비문 내용이 떠올라 절절한 심정으로 홀로 읊조리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친 밤 촉새되어 울던 노래 이제는 그쳐야 합니다. 흘러간 세월의 아픔, 질곡의 삶이 지워진 두께가 무척이나 두텁고 무겁기 때문입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안소헌 유족대표의 인사에 이어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이 있었고 추모 및 평화 메시지 작성식과 추모공연이 있었다. 특히 평
[우리문화신문= 양인선 기자] 미국 헌팅턴비치에 자리한 윤패트리셔(차인재 애국지사의 외손녀) 씨의 집은 주위 다른 집들 보다 앞마당이 더 깔끔하고 넓었다. 노란 오렌지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정원수가 기자 일행을 반기는 가운데 집안에 들어서자 화장기는 없지만 건강미 넘치는 얼굴을 한 윤패트리셔 씨가 달려 나와 우릴 껴안으며 반겨주었다. 기자는 지난해 8월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책을 쓰는 이윤옥 시인과 함께 차인재 지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대담을 하고 나서 이윤옥 시인은 차인재 지사에 관한 글을 《서간도에 들꽃 피다》 (9권)에 실었고 이번에 LA방문 시에 이 책을 전달하려고 차인재 지사의 외손녀 집을 방문한 것이다. 거실에 앉자마자 윤패트리셔 씨는 랄프안(안필영, 안창호 선생의 막내 아드님) 선생께 조언을 구해 차인재 지사님이 어떤 경로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남편인 임치호 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이윤옥 시인이 사인해 준 《서간도에 들꽃 피다》 (9권)을 전해드렸더니 고마워하시면서 기뻐하셨다. 뿐만 아니라 아끼는 두 장의 사진(이화학당 사진과 본인이 들어가 있는 한복 입은 한글학교 사진)을 제외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어제 12월 6일 오전 11시 경복궁 영추문 일원에서 문화재청 주관으로 시민 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영추문 개방 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의 기념사와 경과보고, 안민석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손혜원 국회의원, 정세균 전 국회의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등의 축사가 이어졌다. 축사가 끝난 뒤 영추문을 여는 문화퍼포먼스를 했고 문이 열리며 취타대를 앞세운 수문장과 일반 시민들 특히 청운ㆍ효자ㆍ사직동은 물론 세종마을 주민들이 환호를 하면서 들어옴으로서 행사는 끝났다. ‘경복궁 영추문’은 조선 시대 문무백관들이 주로 출입했던 문으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불 탄 뒤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전차 노선이 부설된 뒤 주변 석축이 무너지면서 같이 철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나, 1975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동안 경복궁 출입문은 남쪽의 광화문, 북쪽의 신무문, 건춘문(동쪽의 국립민속박물관 출입문) 등 총 세 곳이었다. 이제 서쪽의 영추문을 개방함으로써 동ㆍ서ㆍ남ㆍ북 모든 곳에서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시민들의 경복궁 접근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남편의 시골 고향집에 내려와 연로한 시어머님과 셋이 살고 있다. 사실 시골이라 할 수도 없다. 빠르게 도시화 되고 있는 도농복합도시라고 해야겠다. 탱자, 은행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산수유, 목련, 개나리 등등 꽤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고 철철이 꽃이 피고진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정성으로 가꿔놓은 유산이다. 남편은 어릴 때 도회지로 떠나 공부하고 직장 다니며 가정을 일구어 살다가 퇴직 후 귀향한 것이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모과가 떨어져 뒹굴어도 활용할 줄 몰랐고 나무가 무성해도 가지치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요령이 생겼다. 남길 가지들을 정하고 난후 무성한 다른 가지들을 미련 없이 쳐 주어야 잘 자람을 알게 된 것이다. 쳐낸 가지들은 잘 말려뒀다가 곰국을 끓일 때 불쏘시개로 쓰면 제격이다. 김장 끝내고 무청 쓰레기 엮어 말려 걸어 두었다. 나날이 날씨가 쌀쌀해져 마당의 개집에 포대기를 덮어주고 얼지 않게 화분도 안방에 들여놓았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다보면 의외로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을 맛볼 기회가 많다.(일명 '소확행') 겨울채비는 대충 끝났으니 오늘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지난 가을 들깨 수확 후 부지런한 농부가 보리씨를 뿌리던 광경이 아직 눈에 선한데 어느덧 보리싹이 뾰록 뾰록 머리를 내민다. 눈을 이불처럼 덮고 꿈꾸듯 엎드려 있을 겨울 보리밭은 또 얼마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울까? 눈보라를 이기고 씩씩하게 자라나 푸르른 보리밭 낭만을 연출할 봄날의 보리밭 그 날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