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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향남일기] 겨울채비 끝내고 사골국 고는 시골집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남편의 시골 고향집에 내려와 연로한 시어머님과 셋이 살고 있다. 사실 시골이라 할 수도 없다. 빠르게 도시화 되고 있는 도농복합도시라고 해야겠다.

 

탱자, 은행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산수유, 목련, 개나리 등등 꽤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있고 철철이 꽃이 피고진다.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정성으로 가꿔놓은 유산이다. 남편은 어릴 때 도회지로 떠나 공부하고 직장 다니며 가정을 일구어 살다가 퇴직 후 귀향한 것이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모과가 떨어져 뒹굴어도 활용할 줄 몰랐고 나무가 무성해도 가지치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랐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요령이 생겼다.

 

남길 가지들을 정하고 난후 무성한 다른 가지들을 미련 없이 쳐 주어야 잘 자람을 알게 된 것이다. 쳐낸 가지들은 잘 말려뒀다가 곰국을 끓일 때 불쏘시개로 쓰면 제격이다. 김장 끝내고 무청 쓰레기 엮어 말려 걸어 두었다. 나날이 날씨가 쌀쌀해져 마당의 개집에 포대기를 덮어주고 얼지 않게 화분도 안방에 들여놓았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마당 있는 시골집에 살다보면 의외로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을 맛볼 기회가 많다.(일명 '소확행')

 

겨울채비는 대충 끝났으니 오늘은 마당에서 사골국을 고기로 했다. 빨갛게 열매가 익어 한창 예쁜 산수유가 운치를 더해준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독에 양은솥을 걸고 마른 낙엽과 말려놓은 나뭇가지들로 불을 지핀다. 탱자나무가시 타는 소리는 타닥타닥 요란스럽다. 잘못 밟으면 신발창을 뚫을 정도로 가시가 날카롭더니 타는 소리 또한 유난스럽다. 호일에 싸서 구운 노릇노릇 구수한 군고구마 맛에 잔솔가지 타는 향내가 더해진다.

 

이틀에 걸쳐 밤늦도록 곤다. 불앞에 모여 앉아 요즈음 우리마당에서 일어난 신기한 이야기 그리고 괴이한 이야기들도 두런두런 이어진다.

 

어느 날부터 꼬꼬꼬 소리 내며 암탉 한마리가 우리 마당과 담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별달리 챙겨 주지도 않았다. 스스로 개밥도 훔쳐 먹고 길고양이에게 준 고양이 사료도 나눠 먹으며 지냈다.

 

 

 

그런데 어저께 낙엽을 태우려 긁어내다가 달걀 다섯 개를 발견한 것이다. 신기해 환성을 올렸다. 앞으론 둥지도 만들어 주고 신경써줘야겠다. 알고 보니 우리 집 담장 밖 공터에 고물상을 하던 부부가 놓아기르던 닭들 중 한 마리였다. 땅주인이 상가 짓는다 하여 이사하면서 이 닭을 미처 데려가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 길고양이들이 우리 마당을 탐내더니 한 놈이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아 길러 마당에 풀어 놓곤 사라졌다. 어쩌다 생각나면 한 번씩 들렸다. 다섯 형제가 똘똘 뭉쳐 이쁘게 자랐었다. 그중 네 마리는 고등어 줄무늬에 여간 귀엽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상간에 그중 네 마리가 한꺼번에 다 죽었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도 없었다. 비오는 어느 날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는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무지개다리를 건너 저세상으로 간 것이다. 거기서도 의좋게 잘 살라고 양지바른 산속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남은 한마리가 애석해서 창고에 보금자리를 따뜻이 마련해주었다.

 

 

보글보글 사골국물이 뽀얗게 잘 끓고 있다. 농사 짓지 않는 우리 집에 수시로 호박, 콩, 파, 가지, 고구마 따위를 가지고 오는 고마운 이웃에게 오늘은 사골국물로 보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