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별신제에 사용하였던 꽃들은 하당굿이 끝나면 무녀가 제관과 주민들에게 나누어 준 뒤 나머지들은 모도 불태운다. 사람들은 무녀로부터 받은 꽃을 집에 보관해두면 좋지 못한 나쁜 액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은산별신제 지화는 그 종류가 많지 않다. 주요 꽃은 연꽃, 모란, 작약 등이다. 연꽃은 연(蓮) 또는 연화(蓮花)라 부른다. 불교에서는 연(蓮)을 가리켜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라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연화(蓮華)라고도 말한다. 연화(蓮華)에서의 화(華)란 꽃을 뜻하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꽃이 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색채, 빛 또는 화려함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꽃(연화)의 의미에는 불교의 궁극적인 곳으로 설명되는 이른바 속세에 때 묻지 않은 청정한 정토(淨土)가 있음을 암시한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인도의 천축(天竺)에는 4가지 연화(蓮華)가 있다. 그것들은 청색(靑色)의 우발라화(優鉢羅華), 황색(黃色)의 구물라화(拘物羅華), 적색(赤色)의 파두마화(波頭摩華), 백색(白色)의 분타리화(芬陀利華)다. 여기에다 미노발라(泥盧鉢羅)를 더해 5가지가 된다고 한다. 위의 다섯 종류의 꽃 모두를 연화(蓮華)라 하지만 통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은산별신제에 차려지는 모든 꽃들은 원칙적으로 종이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근래에 천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만드는 것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종이로 손수 만든 지화이다. 의례에서 종이로 만든 꽃을 사용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종이꽃은 신앙 대상과의 연관 속에서 쓰인다. 그러므로 이를 무교에서는 신령님꽃, 불교에서는 부처님꽃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신앙용으로 꽃이 대상신을 모시는 제단에 오를 수 있으려면 제작된 꽃이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테면, 꽃 위에 나비를 앉힌다던지, 꽃송이를 정해진 수에 맞춘다던지, 꽃의 크기를 조절해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의례에서 필요로 하는 꽃은 대체적으로 상징성을 동반하고 있는 신앙적인 꽃이기 때문에 생화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이를 테면, 수팔연은 식물세계에서는 재배되지 않으며 오로지 가화를 통해서만 존재성을 갖고 있다. 셋째, 지화는 신앙 대상 및 의례형식에 맞도록 필요한 물감으로 채색할 수가 있다. 이러한 것은 오로지 제작되어진 꽃이어야 가능하다. 넷째, 지화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사용되는 의례용이어서 언제 어디서나 필요에 따라 사용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진대’는 마을이나 일 또는 집 등의 공동체, 노동, 삶을 일구는 특정 구역 지킴이의 뜻 ‘지기’와 이를 상징하는 물체로써 하늘로 기다랗게 솟구친 막대기의 ‘대’와 합성된 용어이다. 터를 지키는 깃대가 하늘을 향해 신당 앞에 세우는 것은 곧 영적 존재가 군림하는 천상과 연결됨을 뜻한다. 하늘은 우주를 주재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다스리는 무한대의 영적 공간이기에 땅이 하늘과 소통하려는 것은 이러한 천상의 영적 기운을 인간 삶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하늘 또한 무한한 기운을 받아 생동감을 갖는 땅의 존립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땅과 하늘은 병립적 관계 하에 서로 협력 협조 협심 협동하며 인류 삶의 구심점과 원동력으로 역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진대는 지역에 따라 짐대,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 액맥잇대, 장승, 벅수, 솟대, 조간(鳥竿) 등으로 불린다.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액맥잇대라고 한 것은 이 대가 살을 막아 내거나 액을 막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장승이나 벅수 는 마을이나 공동체 고개 또는 절간 들머리 등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별신제가 행해지는 은산리는 마을 북쪽 편에 조그마하게 펼쳐져 있는 당산(堂山)이 있다. 이 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용머리에 비유된다. 당산 줄기 전체를 놓고 보면 용이 개구리를 잡아먹다 놓친 형국이 된다. 당고개가 용의 목에 해당되고 근처에 있는 조선조 좌의정을 재냈던 이충정공(李忠貞公) 이상진(李尙眞)의 묘 위치가 용의 입에 해당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 당산 혈맥을 끊기 위해 용 목에 해당하는 당고개를 파헤쳤는데 피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마을 원로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당산 아래턱으로는 별신당(別神堂)이 있다. 그런데 이 당을 한편에서는 산제당, 상당, 또는 산신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별신당은 한옥식 목조와 2평 남짓 되는 건물이었으나 1990년 공간을 넓혀 약 4평 남짓하게 키웠다. 이곳 별신당은 은산 마을민들에게 성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계시는 당신(堂神)이 마을을 보호하고 마을의 질병 퇴치는 물론 마을 사람들의 무사태평과 대동단결을 해 준다고 믿어 왔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은 별신당을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름을 달래곤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 별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전통사회에서 천연두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별신을 정성껏 모시고 달래어 놀려 보내는 의례를 지냈다. 이는 별신이 옮기고 다니는 질병을 미리 막고 이미 전염되었다면 퇴치하고자 함이었다. 곧 별신을 정성으로 모셔야 전염병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연두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집 구성원에서 다른 집 구성원으로 그리고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옮겨지는 개인적이고 집단적 전염병이기 때문에 대단히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별신을 모시고 의례를 베푸는 제의가 가족 단위는 물론이고 마을 단위로 행해지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런데 별신이 천연두를 옮기는 신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화재와 수해를 막는 수호신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풍어 풍농 등을 담당하는 신으로도 역할 한다. 따라서 별신제는 마을과 마을민의 안녕을 빌고 풍농 및 풍어를 기원하는 대동적 제의에서 각별히 모셔지는 지역신이면서 또한 생산신이기도 하다. 다음은 별신이 신격 명칭이 아니라 의례를 칭한다는 견해이다. 이에 대한 시초는 원삼국시대부터 음주가무를 곁들인 부족 중심의 의례라고 하고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은산면 은산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향토신에 대한 무속의례이다. 3년에 한 번씩 윤달이 든 해의 음력 정월 또는 2월 중 좋은 날을 택해 마을 북쪽 당산(堂山)의 산제당(山祭堂)에서 거행되는데 최근에는 그 규모가 커지면서 짝수 년의 대제(大祭), 홀수 년의 소제(小祭)로 구분하여 매년 3월 말에 열고 있다.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별신’은 우리나라 전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신앙 용어이다. 이 용어는 신격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앙체계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양자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우선 ‘별신’에 대한 어원 및 그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별신 의례가 언제부터 행해져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별신과 관련된 자료나 문헌 기록이 빈약하여 그 내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현장에서 얻어진 전승자료 및 타 지역 사례들을 예증삼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은산 별신제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진대 베기와 세우기’ 그리고 ‘꽃받이’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진대는 은산 인근의 산에 올라 참나무를 미리 선정하여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한국에서 도교가 활성화되고 초제(醮祭)를 전문으로 맡아보던 재초도감(齋醮都監)이 생겨났는데 이는 북송(北宋, 960∼1126) 휘종(재위 1100~1125) 대관 4년(1110년)인 예종(재위 1105-1122) 5년에 도사 2명이 고려로 직접 와서 복원궁(福源宮)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복원궁은 국가가 마련한 도관으로서 별에 대한 제를 올리는 신앙처였다. 이에 앞서, 고려 현종, 문종, 선종, 숙종 때에는 궁중 안의 넓은 격구장이나 회경전(會慶殿)에서도 초제(醮祭)를 올렸는데 그 대상은 천지만물이 나고 이루어진 근원 또는 우주의 본체를 이르는 태일(太一)이었다. 뿐만 아니라 초제를 고려 정종은 남쪽 교외에서, 예종은 남단에서, 의종은 내전(內殿)에서도 올렸는데 이때는 노인성(老人星)이 제사 대상이었다. 특히 고려 예종 즉위 2년에는 연경궁(延慶宮, 개성 송악산 밑에 있던 고려 시대의 궁궐) 후원에 있는 옥청정(玉淸亭)에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상(元始天尊像)을 모시고 달마다 초제(醮祭)를 지냈고 청연각(淸燕閣)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론토록 하였다. 초제는 조선으로 이어졌다. 소격서(昭格署)에 도사가 배속되었고 그에 의해 초제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도교(道教)는 중국 후한시대 장도릉(張道陵)이 창시한 종교이다. 도교가 애초에 추구하였던 것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었으므로 불로장수(不老長壽)를 이루기 위한 영생사상이 신앙적 목표였다. 그래서 득도에 도달한 사람을 신선(神仙)이라고 말하고, 신선은 곧 죽음을 극복한 존재로 설명되는 게 도교였다(최수빈, 「도교에서 바라보는 저세상: 신선(神仙)과 사자(死者)들의 세계에 반영된 도교적 세계관과 구원」,《도교문화연구》2014, 41/305). 그러나 음양오행(陰陽五行), 복서(卜筮, 점), 무축(巫祝, 신령과 통한다는 박수), 참위(讖緯, 미래 길흉화복의 조짐이나 앞일에 대한 예언 등을 비롯한 도가(道家)의 철학과 불교적 요소 등을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과 같은 삶의 실천 속에서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도가(道家)는 넓은 뜻으로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여 뒤에 성립한 종교 도교(道敎)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한다. 도가는 노자를 비롯한 장자(莊子), 열자(列子), 관윤(關尹) 등이 중심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는 것이며, 좁은 뜻으로 노장철학(老莊哲學)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철학 실천 아래에서 영생사상을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단군신앙의 핵심은 3(三)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진 무속신앙의 근본수이다(박흥주, ❮바닷가 마을굿에서 나타난 3수 원리 분석-당산굿을 중심으로❯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2004). 환웅이 내려온 곳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고, 이는 봉우리 셋을 뜻하는 높고 흰 산을 의미한다(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 1998). 환웅(1)이 자리 잡은 희고 높은 세봉우리(3)는 1이 3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는 1이 3이 됨을 뜻한다. 고로 삼위태백은 봉우리가 셋(3)이고 몸통은 하나(1)인 산을 뜻하는 것이다. 그 몸통에 있는 신단수 밑이 환웅이 펼칠 신시이고 단군의 나라 조선이다. 그러므로 3이 갖춰진 세계에 1의 뜻은 3으로 귀착함을 뜻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3은 3임을 뜻한다. 그리고 1이 3으로 그리고 3이 1로 수렴됨을 말한다. 천부인(天符印) 칼, 거울, 방울 세 개를 주어 지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는데 이는 천자의 위(位)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하늘이 임금이 될 자에게 주는 세 개의 보인(寶印)이며 시작과 창조 등을 상징한다. 인간사의 곡식, 인명, 질병, 선악 등을 주관할 사람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으로 3인이며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단군신앙의 핵심은 삼(三)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진 무속신앙의 근본수이다(박흥주, ❮바닷가 마을굿에서 나타난 3수 원리 분석-당산굿을 중심으로❯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2004). 환웅이 내려온 곳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고, 이는 봉우리 셋을 뜻하는 높고 흰 산을 의미한다(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 1998). 환웅(1)이 자리 잡은 희고 높은 세봉우리(3)는 1이 3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는 1이 3이 됨을 뜻한다. 고로 삼위태백은 봉우리가 셋(3)이고 몸통은 하나(1)인 산을 뜻하는 것이다. 그 몸통에 있는 신단수 밑이 환웅이 펼칠 신시이고 단군의 나라 조선이다. 그러므로 3이 갖춰진 세계에 1의 뜻은 3으로 귀착함을 뜻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3은 3임을 뜻한다. 그리고 1이 3으로 그리고 3이 1로 수렴됨을 말한다. 천부인(天符印) 칼, 거울, 방울 세 개를 주어 지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는데 이는 천자의 위(位)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하늘이 임금이 될 자에게 주는 세 개의 보인(寶印)이며 시작과 창조 등을 상징한다. 인간사의 곡식, 인명, 질병, 선악 등을 주관할 사람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으로 3인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