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무리 겨울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나이가 들어 눈 앞에서 날아갈 듯이 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고는 하지만 한 해를 보내고 새로 맞는 마음에는 늘 비장함이 파고든다. 새해를 맞으며 지난해 가졌던 찬란한 꿈과 희망이 결국에는 또 후회의 반복이라는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 밤의 어둠을 깨고 나오는 새벽, 새해의 첫 해를 정성껏 맞이했다. 예전에는 첫 해에 자신에 관한 소망을 담았다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우리 자식 손주들, 우리 사회와 국가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이 달라진 것이긴 하지만. 한 해를 바꾸는 때를 세(歲)라고 한다. 세모(歲暮)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해가 바뀌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다. 중국 고대의 역사에서 교훈을 알려주는 경전인 《서경(書經)》의 홍범(洪範) 부분을 보면 "임금은 해(歲)를 살펴야 하고, 귀족과 관리들은 달(月)을, 낮은 관리들은 날(日)을 살펴야 한다(王省惟歲 卿士惟月 師尹惟日)"라는 구절이 나온다. 세상이 잘 돌아가고 못 하고는 일 년을 단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임금은 크게 전체를 보아야 하고 그다음 신하들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세월 빠르다. 시간 빨리 지나간다는 말은 하면 바보인 것 같다. 엄연히 뻔한 진리인데 새삼 읊조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터. 그래도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나. 누구처럼 새해가 되었다고 희망을 노래한 것이 언제던가, 벌써 일 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새해를 맞아하려고 했던 몇 가지 일들은 반의반도 시작도 못 하고 또 어영부영 살다가 다 써버렸으니, 여름 장미꽃잎처럼 팽팽하고 빛나던 나의 꿈은 어느새 시들었고 다시 찬 바람에 가시마저도 숨구멍을 닫아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일모레가 섣달그믐이다. 우리가 양력을 쇠니 양력으로 따져볼밖에. 섣달그믐이 어떤 밤인가? 해가 바뀌는 밤이다. 절서(節序)의 빠름은 전광석화와 같고, 시간의 흐름은 달리는 말이 문틈을 스쳐 가거나 뱀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단다. 시인은 해가 저물어 간다고 자신의 감회를 부쳐 읊고, 공자(孔子)는 세월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음을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평생을 내 집으로 생각하며 살던 회사를 나온 지도 벌써 해로 보면 두 자릿수에 가까워진다. 그전에는 선배들이 하던 대로 여행도 가고 놀기도 놀고 또 선배들의 도움으로 개인적으로 좋은 일도 없지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초겨울에 접어든 요즈음에 나는 천 원의 행복 속에 빠져들고 있다. 시중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천 원짜리 전문점을 가주 간다는 뜻은 아니다. 나에게 이 행복을 주는 곳은 동대문 밖 종묘 옆 담자락 주위로 펼쳐진 중고시장이고 그 가운데서도 옛 책들을 파는 몇몇 서점이다. 지하철 1호선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거기서부터 동묘공원 담을 따라서 청계천까지 광범위하게 중고품 시장이 펼쳐져 있어서 대낮에는 엄청난 숫자의 시민들이 오셔서 자기한테 필요한 물건을 골라 흥정하고 사가는 풍경이 정겹다. 그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오른쪽에 하나 또 저 안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두 개의 큰 중고책 서점, 다른 말로 하면 옛 책 서점이 있는데 각 서점 앞에는 길에다 책을 널어놓고 한 권에 천 원씩을 받고 책의 주인을 찾는다. 길에 누워서 주인을 기다리는 이 책들은 베스트 셀러였던 소설류나 수필들, 혹 신변잡기류, 철 지난 자기개발서적, 곧 돈 벌어 성공하는 법, 여행안내서, 요즘 쓸모없는 사전류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미 용도가 끝난, 도서라는 지식유통체계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 같은 그 책 더미 속에 가끔 보물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동지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동지라 하면 팥죽을 생각하게 된다. 팥죽이라고 하니 서울에서 송추로 가는 도봉산 오봉 기슭 석굴암의 팥죽 전설이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인 1792년, 당시 석굴암에는 노스님과 동자승 단둘이서 살았는데 그날은 마침 동짓날이었고, 밖에는 많은 눈이 와서 마을과의 왕래가 끊기었다. 동자승이 아침 일찍 일어나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그만 불씨가 꺼져 있었다. 노스님께 꾸중 들을 일에 겁이 난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지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바로 같은 시간. 석굴암에서 10여 리 떨어진 아랫마을 차(車) 씨네 집에서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당시 50대 초반의 차 씨 부인 파평 윤씨가 인기척에 놀라 부엌 밖으로 나가보니 발가벗은 아이가 눈 위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차 씨 부인이 "어디에서 새벽같이 왔느냐?"고 묻자 동자승은 "오봉 석굴에서 불씨를 얻으러 왔다"라고 대답했다. 차 씨 부인은 하도 기가 막혀 "아니, 스님도 너무 하시지. 이 엄동설한에 아이를 발가벗겨 불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다가 일이 터졌다. 애들 다 출가시키고 둘이서 사는 우리, 지난 주 집사람이 갑자기 김장한다고 해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소식을 전했더니 “도와주어야지, 여자 혼자 하려면 너무 힘들다.”라고 하기에 큰맘 먹고 바깥 일정을 줄이면서 들어와서 배추 속을 만들기 위한 무채 썰기 시작했는데 무 두 개를 썰고 나서 그만 채칼에 오른 손 엄지 끝을 베이고 말았다. 손톱도 조금은 잘리는, 엄지손으로 보면 중상이다. 그냥 지혈로 버텨보는데 지혈이 안 된다. 결국, 집사람의 성화로 자정 무렵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니 당직 의사와 간호원이 고생고생하면서 봉합수술을 해주신다. 집에 오니 새벽 1시 반. 일단은 안심하였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말하자면 오른손 엄지가 없어진 셈이다. 붕대로 감아놓으니 힘을 쓸 수가 없다.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물에 손을 담글 수가 없으니 면도를 하려고 해도 오른손으로 하던 면도기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면도가 안 되고, 머리를 감을 수 없고, 옷을 입으려니 단추를 꿸 수가 없어 못 입겠다. 나는 골프를 안 치니 그립 잡는 것으로 고민할 이유는 없지만, 오른손으로 하는 작업 중에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이 아름다운 싯귀는 시인 나희덕이 11월에 부쳐 쓴 작품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강한 바람에 마지막 매달려 있던 나뭇잎마저 뜯겨 날려 가는 계절을 짧은 글로 나타내고 있다. 계절은 나희덕이 그린 11월을 넘어서 12월로 접어들었다. "어허 벌써 올해도 마지막 달로 접어들었단 말인가?" 이런 탄식이 사람들의 입에서 줄을 잇는 그런 사이에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공원의 나무들은 게으른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계절의 위력에 순응이라도 하려는 듯 마지막 잎까지 날려버릴 준비를 다 하고 있다. "명령만 내리세요, 겨울님!" 그들은 더는 동장군의 위력에 저항할 의지도 버린 모양이다. 그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나는 미국작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보다는 더 마음이 댕기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가수 배호가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 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그런데 이 멋진 노래의 노랫말은 포항출신의 정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요즈음 나를 사로잡은 음악이 하나 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무언가 3번’이란 피아노곡이다. 3분 안쪽의 짧은 곡인데 한 번 듣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포함해서 몇 번이고 듣지만 주로 이 한국인의 연주를 우선 듣는다. 무언가라면 무언(無言). 곧 가사가 없는 노래라는 뜻이겠지. 피아노곡은 원래 노래 없이 연주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라고 하면 무언가 정말 드러내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프랑스 사람인 작곡자 포레가 붙였을 원제목은 불어로 ‘Trois romance sans paroles’라고 해서 ‘무언의 3개 로망스’라고 뜻인데 그냥 무언가라고 부른단다. 포레의 작품번호 17번인 이 곡은 3곡인데 그중에 3번째 곡이 글자 그대로 로망스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로망스’라고 하면 우리는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장조를 처음 듣고 그 두근거림과 달콤함에 곧 빠진 기억이 새로운데 이 곡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런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느낌과 함께 이 곡과 관련된 어느 한 분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계절이 빨리 가는 것 같지만 올해처럼 가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가는 해는 처음이렸다. 연초 겨울에 별 것 아닌 것처럼 시작된 질병이 봄을 망치고 여름을 부질없게 하고 가을까지도 꼼짝을 못 하게 하니 올 한해는 정말 우리가 계절에 따라 자연을 즐기지 못하고 ‘한 번도 일찌기 경험하지 못한’ 한 해를 산 것이 아니냐는 억울함이 이제 가을을 보내면서 진하게 솟아오른다. 우리는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면, 털털 털고 길을 나서곤 했다. 시골길이든 산길이든 호젓한 길을 걷다가 밤이 되면 자연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 홀로 길을 나섰네 안개 속을 지나 자갈길을 걸어가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네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여성 스베틀라나가 20여 년 전에 불러 우리의 애청곡이 된 ‘나 홀로 길을 나섰네’의 노랫말에서처럼 가을은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만나고 자연과 대화하는 계절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가을이다.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며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호소 겸 명령을 거역하기 어려웠기에 어디든 가서 마음 놓고 차 한 잔 음악 한 곡 마음대로 듣기 어려웠고 친구들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다. 나를 다독이시고 나를 기르시며, 나를 자라게 하고 나를 키우시며, 나를 돌아보시고 나를 다시 살피시며, 출입할 땐 나를 배에 안으셨다. 이 은혜를 갚으려면 하늘처럼 망극해 한량이 없구나. 父兮生我 母兮鞠我 拊我畜我 長我育我 顧我復我 出入腹我 欲報之德 昊天罔極” ...《시경》 〈육아(蓼莪)〉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올해로 혼인 70주년을 맞았다. 거꾸로 세어보면 625동란이 나던 1950년 초겨울에 혼례를 올리고 부부가 되신 것이다. 두 분이 혼인하실 당시 아버지는 집의 나이로 18세, 어머니는 한 살 위인 19세셨다. 문경 주흘산 동쪽 계곡의 너른 분지의 윗동네에 사는 할아버지와 아랫동네에 사는 외할아버지가 서로 친구분이신데 두 분이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을 맺어 주셔서 부부가 되고 두 분이 자녀를 3남 2녀를 낳아 그 밑에서 이제 손자 손녀 10명에 우선 증손주 8명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마침 아버지 생신이 늦가을 초겨울이라서 올해 혼인 70주년을 맞아 생신축하 겸 성대한 기념 축하연을 열어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로서 마땅하나 식구들이 모두 한데 모이다가 혹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것도 벌써 근 30년 전의 일이구나. 언젠가 점심을 마치고 영등포역 앞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레코드를 파는 집이 보여 잠깐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장의 CD. ‘줄리에트 그레코’였다. 그날 오후 만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기억도 안 될 정도로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얼른 CD를 걸었지. 옛 축음기가 돌아가는 듯한, 가을비가 내리는 듯한 분위기의 전주 부분에 이어 촉촉한, 비음의 목소리가 거실을 감싸고 돌아온다. 오, 네가 기억해 주었으면 우리 사랑하며 행복했던 시절을 그 무렵 인생은 더없이 아름다웠고 태양은 지금보다 더 뜨거웠지 죽은 낙엽들은 삽 속에 모여 담기는데 추억도 회한도 고엽처럼 모여 담기는데 북풍은 싸늘한 망각의 어둠 속으로 그걸 싣고 사라져버린다. 이런 내용의 이 노랫말이 줄리에트 그레코의 물 흐르는 듯한 목소리에 담겨 흐르는 동안 나의 머리도 근 50년 전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70년대 초 대학생 때 클래식 기타동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기분을 내어 자주 들리던 곳이 있었다. 지금 한국일보 남쪽 이마빌딩 앞 삼거리에 있던 '해심(海心)'이라는 조그만 술집... 의자라야 무척 좁고 낡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