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민족의식’이 단연 으뜸 되는 요소겠지만 다른 또 하나를 들라고 하면 ‘독립자금’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한 인물이 김호(金乎, 1884~1968, 1997년 독립장 추서) 애국지사다. 미주지역에서 활동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 자립형 민족지도자, 털 없는 복숭아인 천도복숭아 개발자, 백만장자 독립운동가 등등 김호 지사에 대한 별칭이 많다. 그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다. 어제(14일) 낮 2시,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독도서관(관장 이병호) 서울교육박물관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독립운동가 김호 지사의 일생을 조명하는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김호> 특별전 개막식 행사가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김호 지사의 외손자인 안형주 선생을 비롯하여, 신임 이종찬 광복회장의 축사가 있었고, 김호 지사가 졸업한 경기고등학교 김우경 교장과 구자철 경기고등학교 동창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임시정부의 든든한 후원자 김호> 특별전은 1900년 고종이 설립한 첫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관립중학교(현 경기고 전신) 제1회 입학생이자 제1회 졸업생인 독립운동가 김호 지사의 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난 6월 9일 금요일 오전 9시 반, 국립서울현충원 납골당인 제2충혼당에서는 아주 특별한 유해 봉안식이 있었다. 아주 특별하다는 것은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배경진 애국지사(1910~1948, 38살로 순국, 1990년 애국장 추서)와 그의 배우자인 이석금(1915~2012, 97살로 작고) 여사가 생이별을 한 지 80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의 납골당(충혼당)에서 비로소 함께 영면에 든 일을 말한다. 이날 배경진ㆍ이석금 부부의 한 점 혈육인 딸 배국희(1943년생, 2살 때 아버지와 헤어짐) 씨는 미국 LA의 공원묘원에 묻혀있던 어머니 이석금 여사의 유해를 직접 모시고 와서 기자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으로 향했다. 배국희 씨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과 함께 찍은 부모님의 흑백 사진 1장이 전부다. 아버지는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중국에서 순국하는 바람에 유해는 찾지 못한 채 위패만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가 이번에 어머니 유해와 함께 80년 만에 충혼당에 함께 모시게 된 것이다. 아버지 배경진 애국지사는 평안북도 신의주 위화면 하단동 출신으로 스물한 살 때인 1931년, ‘위화면 청년단’을 결성하고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 기사는 한국외대 일본연구소에서 개최한 <일본과 동아시아 트랜스내셔널 서벌턴- 민족·재현, 그리고 주체화>라는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류리수 박사의 글이다. 이 글은 발표문 가운데 특히 십 수년간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온 이상갑 변호사의 발표문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 해결 원칙과 과제>를 중심으로 쓴 것으로 거의 논문 수준의 글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지면상 다 싣지 못하고 간략히 요약해 싣게 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 편집자 말- 지난 10일(토) 낮 1시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주최로 <일본과 동아시아 트랜스내셔널 서벌턴- 민족·재현, 그리고 주체화>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김동규 교수)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 피폭자 문제 등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를 한중일과 연대하여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해오는 등 역사의 진실과 그 의미를 밝히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는 야마구치(山口)대학교 고케쓰 아쓰시(纐纈厚)교수의 ‘천황제하 서벌턴으로서 대만, 오키나와인의 위치’, 후쿠오카(福岡)현립대학교 오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인터넷으로 일본의 근현대 아시아관련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는 일본의 국립공문서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과 아시아 근린 제국 등과의 관계에 관련된 공문서, 기타 기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의 개설 경위를 들어보자. “1994년 8월 31일,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이듬해에 맞이하게 될 전후(戰後) 50주년을 기념한 「평화우호 교류계획」에 관한 담화를 발표하면서 그 계획 가운데 「이전부터 필요성이 지적되어온 아시아역사자료센터의 설립을 검토하고자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를 기초로 센터 설립에 관한 구체적인 검토가 각계의 전문가 등이 포함된 15명으로 구성된 지식인 회의에 위임되었습니다. 지식인 회의는 국내외에서의 실상 조사,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 그리고 일반인들을 통해 널리 수집한 요망 사항 등을 근거로 1995년 6월 30일에 「일본과 아시아 근린제국 등 사이의 근현대사에 관한 자료 및 자료 정보를 폭넓게 치우침없이 수집하여 이를 국내외의 연구자를 비롯한 일반에게 널리 제공할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센터 설립을 제언하였습니다.” 일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인의 문상을 위해 어제(3일) 토요일 아침 6시반, 고양시 일산에서 9시간을 달려 경남 고성에 왔다. 예사로운 주말이 아닌 현충일을 낀 연휴 주말이라 그런지 명절 뺨칠 정도로 도로 정체가 심했다. 아들딸 일곱을 훌륭하게 키워낸 지인의 어머니(93세)는, 영정 속에서 넉넉한 웃음으로 이승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야간 운전으로 상경할 엄두가 안나 1박하고 올라갈 곳을 물색하다가 고성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독일마을’로 향했다. ‘한국 속의 작은 독일’로 알려진 남해 독일마을은 1963년 독일로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하여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삼아 푸른 남해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집을 지어 사는 곳이다. 이곳은 2021년 현재, 42채의 집이 완공되어 이 가운데 30채가 부업으로 ‘민박(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경제력이 있는 은퇴자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방 1~2개를 민박으로 내놓는 데 이는 부업 겸 숙박하는 이들과 말동무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하듯, 독일마을의 숙박 시설은 ‘숙박업을 주로 하는 타지역의 펜션’과는 조금 다르다. 규모도 적을 뿐 아니라 별장처럼 잘 가꾼 정원이 일품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구국의 일념으로 일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 저항한 독립유공자, 오덕홍(1997년 애족장), 김일언(2010년 애족장), 정래의(2022년 건국포장) 선생을 〈2023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1907년 8월 일제가 강제한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전남 나주 출생(1885년)인 오덕홍 선생은 1909년 8월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부대원 20여 명과 나주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 9월 기삼연 의병장*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전남 장성에서 봉기하여 호남지역 의병부대들과 직ㆍ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활발히 활동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군이 1908년 4월부터 대대적인 의병탄압을 시작했다. * 기삼연(1962년 독립장, 2001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907년 9월 고창에서 일본군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10월 고창과 정읍, 11월에는 부안에서 연전연승하였으나, 순창에서 일경에 잡혀 순국 이에 맞서 나주지역에서 ‘대동창의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승님이 걸어오신 발자취는 한평생 어렵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가야금을 무릎 위에서 내려놓지 않고 따뜻한 체온을 악기와 함께 느끼면서 가락 하나하나를 마치 한올 한올의 비단을 짜듯 소중한 작품으로 남겨놓으셨습니다. 스승님은 민속음악을 더욱 폭넓게 표현하고자 12현 가야금을 15현으로 개량하여 많은 곡을 남기셨습니다. 예전에 저의 공연이 주로 곡을 외워서 소화해낸 공연이었다면 이번 공연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이는 성금연 가락보존회 대표 지성자 명인의 말이다. 어제(28일) 저녁 4시부터, 서울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에서는 ‘성금연 탄생 100주년 기념연주회’ <지성자의 성금연 15현 음악세계> 공연이 5월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만석의 객석으로 성황리에 막이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3년 5월 7일, 전남 담양 출신인 춘사 성금연(春史 成錦鳶1923~1986) 명인은, 어제 공연한 지성자 명인의 가야금 스승이자 어머니다. 성금연 명인은 ‘옛 소리를 지키며 새로운 소리를 재창조한 천재적인 가야금 연주가’라는 찬사와 더불어 첫 가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지난 3월 3일과 28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탈원전, 반핵 운동 등 사회운동도 앞장섰으며, 대표적 친한파로서 한국에서도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던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이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들의 고뇌와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문화정보실 자료 제공-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 작곡상, 그래미상을 수상한 아시아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의 첫 자서전. 2년 3개월 동안 잡지 《엔진》을 통해 발표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꼼꼼한 보완과 자료를 덧붙여 완성한 그의 첫 자서전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60여 년 전생애와 예술활동을 시대 흐름에 따라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YMO의 멤버로 한국의 팝음악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룹 해산 후 「마지막 황제」의 아카데미상 작곡상, 그래미상 수상 등으로 폭넓은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의 음악 중 'R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문학과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던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가 지난 3월 3일과 28일, 각각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탈원전, 반핵 운동 등 사회운동도 앞장섰으며, 대표적 친한파로서 한국에서도 양심적 지식인으로 존경받아왔던 두 사람의 별세 소식이라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들의 고뇌와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문화정보실 자료 제공-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1935.1.31~2023.3.3 (향년 88세)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만엔원년의 풋볼,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체인지링, 책이여 안녕 등 【작품 3】 《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중 두 번째. 《우울한 얼굴의 아이》는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의 자살사건을 모티브로 쓴 《체인지링》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다. 자살한 고로의 젊은 연인 우라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내 지카시는 베를린으로 떠나고,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유지를 받아들인 소설가 고기토는 아들 아카리와 고향 시코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눈망울이 유난히 큰 검정개, 애교스러운 바둑이, 재롱둥이 흰둥이, 황색 털에 코와 발만 하얀 녀석, 영락없는 완구 모양의 털을 지닌 누렁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귀여운 잿빛 강아지들, 머리털이 눈을 가린 삽사리 등 모두 스물여섯 마리의 개가 등장하는 그림책 《개의 입장 :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박자울ㆍ황동진 지음, 작가정신)이 며칠 전 배달되었다. 털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개들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특히 우수에 찬 커다란 눈망울의 개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에 다가와 들고 있던 책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이 녀석일까? 아니면 저 녀석일까? 스물여섯 마리의 개들을 처음부터 다시 샅샅이 훑어보았다. 실물 강아지라도 만난 듯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느새 50여 년 전에 키우던 해피를 그림책에서 찾고 있었다. 이웃집에서 자매처럼 지내던 친구가 대도시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를 나에게 맡기고 떠났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해피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우리집에 맡기고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친구는 그로부터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