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슬프다. 시대의 선각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딛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孤魂)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외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 살피소서.” 이는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세워져 있는 강평국(姜平國, 1900 – 1933) 지사의 추도비에 새겨져있는 글이다. 지난 11월 8일(금) 낮 1시,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를 찾아간 제주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추도비가 있는 곳은 공원묘지 입구에서 정면으로 나있는 조붓한 길을 걸어가면 나오는데 중간에 성모상이 서 있고 그 뒤를 조금 더 걸어가면 ‘황사평 순교자 묘역’이라는 커다란 봉분이 나온다. 바로 그 봉분 왼쪽 편에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가 작고 아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추도비에는 ‘아가다 강평국 선생 추도비’라는 글귀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아가다는 강평국 선생의 세례명이다. 강평국 지사는 1900년도 제주읍 일도리에서 아버지 강도훈과 어머니 홍소사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효창원에 잠들어 계신 외할아버지(차리석) 무덤에 외할머니(강리성)가 합장되었다는 용산구청의 안내판 수정(2019.8.14)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58년 만에 이뤄진 숙원이라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3시, 늦여름 매미가 세찬 소리로 울어대는 용산 효창원 내 차리석(車利錫, 1881 - 1945) 선생의 무덤에서 만난 차리석 선생의 외손자 유기방(64살), 유기수(61살) 씨는 이렇게 말을 꺼내면서 기자 앞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내놓았다. 흔히 효창원 묘역에 모셔진 분은 3의사 묘역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과 임정요인 묘역에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그리고 김구 선생 이렇게 7인이 묻혀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9인이다. 7인 외에 2인은 다름 아닌 김구 선생의 부인 최준례 여사와 차리석 선생의 부인 강리성 여사다. 차리석 선생의 무덤에는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61년 4월 18일 서울에서 세상을 뜬 부인 강리성 여사가 합장되어 있으며, 김구 선생의 무덤에는 1999년 4월 12일 부인 최준례 여사가 남양주 진건 송정리에서 이장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4월 3일 수요일, 서울에서 이른 새벽부터 나서서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중학교 박형종 교장, 고등학교 정종집 교장)를 찾은 시각은 10시 40분으로 이곳은 김귀남 지사가 다니던 학교이다. 이날 이곳에 함께 한 이는 김귀남 지사의 외손녀인 문지연 씨와 작은 아버지 문홍식 선생이었다. KTX목포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교문에는 4.8만세운동 100주년 ‘제19회 4.8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라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이 높이 걸려있었다. 이날은 미세먼지가 없어 유독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교문 옆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세운 ‘정명여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학생운동지’라는 커다란 선 간판이 놓여 있어 당시 목포지역 만세운동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학교 방문에 앞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박형종 교장 선생님께 시간 약속을 미리 해 놓은 터라 교장실에는 박형종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외손녀 문지연 씨가 “유품을 잘 관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비록 100년 전 일이기는 해도 이 학교 학생들이 선배들의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