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14구간 답사 후기> 제14 구간 답사를 마치고 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김삿갓 문학관을 방문하였다. 김삿갓문학관은 답사 종점에서 24km 남쪽에 있었다. 김삿갓(1807~1863)은 57살의 나이로 전라도 동복(지금의 화순군)에서 객사하였다. 죽고 나서 3년 동안 가묘 상태로 있다가 둘째 아들 익균이 뒤늦게 유해를 영월로 운구하여 하동면 노루목 골짜기에 묻었다. 그의 무덤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는데, 1982년에 영월의 향토사학자 박영국 선생의 노력으로 처음 발견되었다. 2003년에 개관한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지점의 명칭은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였다. 그런데 영월군에서는 2009년에 하동면을 김삿갓면으로 변경하였다. 관광객을 끌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김삿갓면은 날로 인구가 줄고 있어서 큰 고민이다. 김삿갓면의 인구수는 2021년 현재 1,700명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봉평면의 인구수 5,700명에 견주어도 너무 적다. 영월에서 남쪽으로 88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우회전하여 김삿갓계곡으로 들어갔다. 김삿갓계곡은 우리가 걸었던 금당계곡이나 뇌운계곡 못지않게 계곡이 깊고 길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세경대학교 앞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가로수를 심었는데,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져 있어서 그럴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홍 교수와 해당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시가지를 조금 걷다가 오른쪽 길로 빠지자 강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엄청나게 넓은 체육시설이 나타나고 오른쪽으로는 제방 너머로 평창강이 보인다. 이곳에서 평창강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의 이름이 서강대교다. 영월 사람들은 평창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서강이라고 부른다. 영월읍의 동쪽에서 흐르는 강이 동강(東江)이니 서쪽에 있는 강을 자연스럽게 서강(西江)이라고 부른다. 평창군에서 발원했기 때문에 평창강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영월 사람들의 심리로 볼 때 이웃 군의 이름을 강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조금 께름칙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의 왼쪽에 외씨버선길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길 이름이 예뻐서 안내판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외씨버선길은 영월읍의 산책길이 아니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경북의 청송, 영양, 봉화와 강원도 영월의 4개 군이 협력하여 만든 둘레길이라고 한다. 외씨버선길은 모두 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8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평창강 제14구간은 영월읍 하송리 오솔길에서 출발하여 영월읍 덕포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 이르는 4.3km 이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짧아서 걷는 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답사 뒤 종점에서 약 24km 떨어진 김삿갓문학관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낮 1시에 하송리 오솔길 끝에 있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앞에서 출발하였다. 철조망이 처져 있는 이 시설은 아마도 유기견들을 보관하는 시설처럼 보였다. 하송리(下松里)라는 지명의 유래는 영월전매서와 경찰서 부근의 송정개(큰 소나무 숲)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동ㆍ서강이 합치는 지역이므로 대장개, 돌석개 같은 큰 갯벌이 있었으며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이날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기온은 걷기에 적당하여 쌀쌀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가을 햇살이 약간 따사롭게 느껴졌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종은 1457년 10월에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이 있어서 나는 혼란스럽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서 《세조실록》 세조3년 10월 21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노산군(魯山君)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지냈다. (필자 주: 세조는 단종의 장인인 송현수가 금성대군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했다는 혐의로 교수형에 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단종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는 것이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단종을 호송했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에게 사약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세조실록》에는 왕방연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왕방연이 언급된 것은 《숙종실록》 숙종 25년 1월 2일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리를 하나 건너자 드디어 청령포가 보인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가 멀리 보인다. 청령포에 가까이 가자 강변에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소나무 숲 사이에 비석이 서 있다. 가까이 가보니 왕방연 시조비다. 단종 유배길의 호송 책임을 맡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임무를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비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어 이곳에서 청령포를 바라보면서 시조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조가 <단장가>로서 영조 때에 펴낸 《청구영언》에 전한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시조비가 서 있는 울창한 소나무숲을 솔모정이라고 한다. 소나무 숲이 마치 멋들어진 정자를 떠올리게 한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왕방연 시조비는 1984년에 세워졌다. 솔모정을 지나자 왼쪽에 커다랗게 움푹 꺼진 분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영월 강변 저류지’다. 영월 저류지는 홍수가 나면 침수되어 물난리가 나는 방절리 일대를 홍수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영월 저류지 조성 공사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2010년 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형대 박인기 이규석 최경아 최돈형 홍종배, 모두 7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평창강 제13구간은 영월읍 방절리 선돌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에 이르는 7.2km다. 이날 답사에는 시인마뇽과 석주, 해당이 불참하였다. 대신 용평면에 사는 최경아 사장과 강릉에 사는 김형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참여했다. 김 감독은 KBS에서 근무할 당시, 유명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6부작 제작에 참여했다니 다큐멘터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나는 2015년에 평창으로 귀촌하여 봉평성당에 다니면서 한경주라는 분을 만났다. 이분은 보이차 전문가로서 이효석 문학의 숲 앞에서 평화다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감독이 한 원장을 주인공으로 하여 “보이차 인생”이라는 제목의 3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중간에 나는 김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평창강 따라 걷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김 감독은 관심을 보이며 이날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청령포 주차장에서 11시 30분에 만나 영월읍내에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고전 물리학을 완성한 뉴톤이 생각한 시간(time)과 공간(space)은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될 수 없으므로 시공간(timespace)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별이다. 나는 이 주제와 관련하여 두 권의 물리학책을 읽어 보았다. 첫 번째 책은 《우주의 구조》라는 제목의 책으로서 수원대의 박배식 교수가 추천하였다. 2004년에 펴낸 이 책의 저자인 그린(Brian Greene)은 우주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수식을 하나도 쓰지 않고 순전히 말과 그림으로만 설명한다. 두 번째 책은 평창강 걷기를 시작한 뒤에 만난 홍 교수가 나에게 읽어 보라고 준 《우주와 나》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용민 교수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물리학자로서 통일장 이론의 발전에 공로가 크다고 한다.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펴낸 이 책은 조용민 교수가 친필 사인을 해서 홍 교수에게 주었는데, 홍 교수가 내가 우주에 관해 관심을 보이자 나에게 준 것이다. 이 책 역시 수식을 동원하지 않고 일반인을 위해 쉽게 쓴 책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그린은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공간을 다음과 같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강의 동쪽 우리가 걷는 지역은 북쌍리이고 강의 서쪽은 후탄리이다. 북쌍리(北雙里)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북상리(北上里), 북하리(北下里), 평동 일부를 병합하면서 북상, 북하의 이름을 따서 북쌍리라고 하였다. 약 30분 정도 걸어 오후 1시 10분에 아담한 정자에 도착했다. 이 정자가 특이한 점은 반듯한 의자가 7개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정자 앞에는 들골마을 표지석이 서 있다. 들골(坪洞)은 들녘이 넓은 골짜기여서 들골이라고 이름지었다. 신(辛)씨, 이(李)씨, 안(安)씨들의 집성촌으로 농사가 잘되는 부촌이라고 한다. 들골마을 표지석 뒷면에 마을의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마을(들골)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일찍(신석기시대)부터 농경을 하여 고려말 무렵에 촌락이 형성되어 약 15세기경 평동으로 집성촌이 이루어졌다. “여의도서” 편찬 당시 서면 북포리로 불리어 지었으며 이후 서면 북포리의 범위가 축소되면서 서면 평동지역이 커짐에 따라 북포리에서 새로운 리로 분화되었다. 우리 마을은 상평동과 하평동으로 분화되어 왔으며, 상평동은 “윗들골” 하평동은 “아랫들골”로 하였다. 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이규석, 박인기,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6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0월 22일 금요일 평창강 제12구간은 두 구간으로 나누어서 걸었다. 지난번 종점인 영월군 남면 북쌍리 소석 카페 입구에서 남면 북쌍리 평창강 좌안 끝이 12-1구간 도착점이다. 거기서 차로 다음 구간으로 이동한다. 12-2 구간의 출발점은 영월군 남면 서강로에 있는 서강민박집 앞 평창강가고 도착점은 선돌관광지 아래 평창강가다. 강변길이 끊어져 있어서 부득이 차를 타고 작은 산을 돌아 건너편 강가로 가야 한다. 이날 답사에는 시인마뇽과 해당이 불참하였다. 은곡은 도마 사업 때문에 두 번을 빠지고 이날 다시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은곡은 평창군 방림면에 사는데 트럭을 운전하기 때문에 답사 인원이 많을 때는 큰 도움이 된다. 우리 답사팀은 은곡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지난 4월 8일, 평창강 따라 걷기 제4구간을 마치고 그날 밤에 4명이 방림면 여우재 고개 정상 근처에 있는 은곡 집에 갔었다. 본채 앞에 목각 작업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작은 다리(산정교)를 하나 건너자 이제 길은 오르막길이다. 고갯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오른쪽에 가지가 길 쪽으로 늘어진 대추나무가 나타난다. 이 지역은 대추나무가 잘 되는가 보다. 앞서가던 사람이 대추를 따서 먹어 보더니, 맛이 좋다고 소란을 떨었다. 뒷사람도 대추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집주인 여자가 나타나 앙칼진 목소리로 야단을 친다. 남의 대추를 함부로 따먹는다고. 우리는 당황하여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한마디씩 했다. 나도 큰 소리로 ‘미안합니다’라고 외쳤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이 맞는가 보다. 우리가 모두 미안하다고 하니, 주인 여자는 우리를 째려보더니 그냥 들어가 버린다. 휴우, 다행이다. 지나가면서 자세히 보니 대추나무를 심은 집은 살림집이 아니고 ‘한반도 식당’이라는 이름의 간판이 걸려 있다. 장사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인심이 사납다고 생각되었다. 출발한 직후 길가에서 대추를 따 먹었을 때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런데 길가로 뻗어 나온 가지에서 대추를 따 먹는 행동이 죄가 될까? 예를 들어 담장을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서 감을 따 먹으면 어떻게 되나? 궁금할 때는 슬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