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근심걱정 버리고 내 노래를 들어요 세월은 덧없이 흘러흘러 가고요.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너무 많아요 욕심 많은 사람들 마음 착한 사람들. 가파른 한세상 둥글둥글 삽시다. 아직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뜨겁던 태양도 서산에 지네요 ▲ 허림 둥글둥글한 세상 음반 표지 우리는 지난 해 몇 달간을 온통 세월호와 그와 관련된 얘기들로 채웠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 인격이 나타나고, 노름을 해 보면 그 사람의 인간성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사고가 터지고 나면 그 나라와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번 사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선 돈벌이에 눈이 멀어 규정을 어겨가며 제 멋대로 선박의 구조변경을 한 것이나, 운항수칙 같은 것은 무용지물이요 거기에 따른 관리감독이 엉망이었던 점. 사고 이후 선장과 선원들이 보여준 반인륜적 행동과 해군, 해경의 구조체계의 부재,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치권이며, 그러한 국가적 비극마저도 자신들의 목적 달성에 이용하려는 사람들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다만 남의 슬픔도 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중학생시절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루 종일 불화살을 쏘아대던 태양이 예배당 종탑에 걸리고 종탑 그림자가 슬그머니 우리 집 담장을 넘는 걸 보며 학교에서 돌아왔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우리 집 뽐뿌는 더운 날이면 해소병을 앓는다. 그날도 얼마나 기침을 해 댔는지 목구멍에서 쉰 소리가 났다. 목물로 몸에 달라붙은 소금기를 씻어낸 뒤 평상 위에 앉으니 어머니께서 쟁반에 구슬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셨다. 그걸 다 꿰면 푸성귀 몇 단 살 돈이 들어온다. 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삯이지만 그거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려고, 일감을 실은 삼륜차로 부녀자들은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달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조명 꽃이 곱게 피어나는 산 아래 별천지를 내려다보며 구슬을 꿰었다. 구슬 한 알이 꿰어 질 때 마다 라디오에선 음표 하나씩 흘러 나왔다. 구슬이 꿰어져 목걸이가 되고 음표가 모여 노래가 되었다. 그날은 유난히 무너진 사랑 탑이 가슴에 와 박혔다. 뻣뻣해진 목을 풀려고 고개를 젖히니 남인수의 낭랑한 목소리가 밤하늘로 퍼지고 있었다. ▲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 음반 표지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든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진추하 원 섬머 나잇 음반 표지 빛이 영롱한 어느 여름밤 환상 같았던 어느 여름밤의 꿈 그 여름밤 나의 아성은 무너져 내렸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거에요 나는 당신을 위해 매일 밤 기도를 해요 내 마음은 당신을 위해 울겠죠 당신이 떠난 뒤론 태양은 다시 빛나질 않아요 매 순간 당신을 생각해요 내 심장은 당신을 위해 고동치겠죠 당신은 나의 유일한 사랑이에요 자유롭고 싶어요 나무위의 새들처럼 사랑한다 해 주세요 나 자신을 찾고 싶어요 한마디만 해 주세요 어디든 따르겠어요 내가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다시 한 번 주세요 벌써 10년도 훨씬 넘은 일인 것 같다. 먼지 냄새가 풀썩이는 가문 여름이었다. 사람들은 더위에 절여져 숨이 푹 죽어서 다녔다. 가마솥처럼 달아오른 대지는 밤에도 식을 줄을 몰랐다. 너도 나도 바다로 계곡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부부도 탈 도시를 위해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마음이 들뜬 조수석의 아내에게선 콧노래가 연신 흘러나왔다. 가진 거라곤 음반밖에 없는 가난뱅이에게 시집와서 맞벌이 하랴 애 키우랴 정신없이 살아온 그녀였기에 그럴 만도 했다. 우리는 가리산 계곡 가에 텐트를 치고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예전 기자 출신의 어느 언론인이 총리 후보로 지명되었다하여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과거에 언론사 사장이 총리를 지낸 적은 있지만 기자출신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때 지명된 후보자가 국회인준절차를 통과한다면 최초의 기자출신 총리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총리후보자의 학력과 경력, 정치성향에 촉각을 세우지만, 38년간 외길인생을 걸었다는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이 여기서 단절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실 평생 한우물을 판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분야건 그 방면에 명망가가 되면 정치권에서 그냥 두질 않고 꼬드기기 때문이다. 외길인생이라고 꼭 다른 삶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자기만족도는 좀 더 높지 않을까? 필자가 DJ계에 입문한 지도 달걀 넉 줄에 해당하는 햇수가 갔다. 하지만 미몽 속을 헤매다 세월만 보냈다는 느낌이다. 각 분야마다 태산북두 같은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겠으나, 필자가 소속된 한국 방송 디스크자키 협회 최동욱 회장이야말로 DJ로서 일가를 이룬 거성이다. 1960년에 KBS에 스크립터로 입사하면서 그의 음악인생이 시작된다. 국내 최초로 팝 칼럼과 가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근사한 살롱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문화예술인들과 어우러져 고준담론으로 밤을 밝히고 싶었다. 그 소망의 시작으로 음악카페를 열었다.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폐업전문가다. 지천명을 넘긴 뒤에야 나의 소망이 당랑거철(螳螂拒轍, 제 분수를 모르고 강적에게 반항함)이란 걸 알게 되었다. 살롱 주인은 첫째 문학과 역사, 철학과 예술에 해박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이 부족하다. 아주 턱없이. 둘째, 돈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살롱을 찾는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나에겐 그게 없다. 곤궁할 정도로. 그다음이 포용력이다. 그래서 각기 개성이 강한 내방객들을 안아 주어야 한다. 나에겐 그것도 모자란다. 아니 없는 거나 별 차이 없다. 마이케나스는 살롱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여 메세나 운동을 주도했다. 그 덕택에 로마는 문무의 균형이 잡힌 제정(帝政)을 확립할 수 있었다. 코르넬리아는 자신의 살롱에서 두 아들을 훌륭히 키워냈다. 그라쿠스 형제로 회자되는 그 아들들은 농지개혁으로 로마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반대파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하지만 코르넬리아는 전혀 슬픈 내색 없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 강토는 70% 이상이 산악지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고을은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각 지방 지명에 뫼 산자가 들어가는 곳이 가장 많은 이유가 되었다. 필자가 태어난 곳 역시 깊은 산골이어서 지평선이 무엇인지 상상으로만 그리며 자랐다. 우리 학급에서 내가 가장 먼저 기차도 타보고 도회지 구경을 한 아이일 정도였다. 시집 온 후로 장터 외에는 한 번도 바깥세상을 구경해보지 못한 부녀자들이 수두룩하였다. 그러한 지리적 여건들이 우리 민족을 좁은 고을 안에 정주하게 만들었고,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고개는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되었다. 외부의 이방인이나 신문물이 고개를 통해 들어왔고 야망을 품은 남정네들이 고개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기도 하였다. 고개를 넘어간 남정네 가운데는 다시 고개를 넘어오지 못 한 이들도 많았고 그로 인하여 고개는 한(恨)과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나아가서는 고개 안쪽은 현실세계요, 고개 너머는 영(靈)의 세계로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갯마루에 장승을 세우거나 서낭당을 짓고 외부로부터의 잡귀를 막거나 고개를 오가는 이들의 무사안녕을 빌었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천체물리학의 태두(泰斗)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빅뱅 이후 팽창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팽창이 멈추는 시점이 오고 그 뒤엔 반대로 수축하며 따라서 시간도 역전하여 과거와 미래가 뒤바뀐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이 순간으로 다시 올 것이고 우리가 두고 온 그리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젊어서는 꿈을 먹고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추억을 찾아 방황하는 나의 발길은 1970년대로 돌아가 쇼의 열기가 한창인 어느 극장 앞에 멈추었다. TV 보급률이 낮던 그 시절 극장 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쇼가 있는 날은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특히 뒷골목 청년들은 마치 제가 장가라도 드는 양 얼굴이 발개져 들떠 있었다. 극장 쇼의 백미는 유명가수의 순서가 아니라 소위 양아치 클럽이라 불리는 극장 쇼 스타들의 무대였다. 무대에선 정장을 하는 게 통념이던 시절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정원, 트위스트김, 쟈니 리에게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 가운데 쟈니리가 뜨거운 안녕을 흐느끼며 열창하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다. ▲ 쟈니 리의 뜨거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새까만 나날이었다. 산도 까맣고 떡갈나무 잎도 까맣고 길도 까맸다. 옆집 경현이는 미술시간에 개울물을 까맣게 그려 놓았다. 바람마저 까매서 새로 산 난닝구가 금방 검정색이 되었다. 만경대산 꼭대기, 구름이 모여드는 동네라 하여 모운동. 탄광 동네에 가면 그래도 먹고 살 것이 있다하여 어머니는 여덟 살 배기 아들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장사라면 닥치는 대로 무엇이건 떼어다 팔았다. 차비를 아끼려고 영월도 제천도 걸어 다녔다. 어떤 때는 살쾡이에게 미행당하며 머릿짐을 인 채 밤길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혼자였다. 쉰 나물밥 한술 뜨고 엄마가 돌아오는 산길을 건너다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어머이 어머이 어머이 ... 이웃들 모두 잠들고 메아리도 목이 멜쯤이면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일으켜 세우곤 하였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고 꼬옥 안아 주기도 하였으며, 자기 집으로 데려가 이밥도 먹이고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선생님. 웃을 때 눈모양이 초승달 같던 나의 선생님. 간절히 그리운 마음을 To sir with love를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나이는 약45억 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우리 인간의 시간개념으로는 무척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그건 인간의 수명이 지구 나이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매우 짧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는 생성 후 8억년 정도가 흐른 후 원시박테리아에 의해 최초의 생명활동을 시작한다. 그 몇 억년 후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생물인 남조류가 출현하여 산소를 만들어 내면서 동식물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해갔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30억년 가까운 긴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으로부터 6억 년 전쯤 다세포생물의 등장으로 지구는 녹색혁명과 함께 다양한 동식물이 진화하는데, 지질학에선 이때까지 40억년 가까운 기간을 은생누대, 그 이후를 현생누대로 구분 짓는다. 그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우리 인류의 출현은 극히 최근의 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인류의 조상 지위를 부여한다 하더라도 고작 300 만년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도 현생인류가 나타나 문명생활을 시작한 것은 채 일만 년을 넘지 못한다. 그 기간에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거의 고갈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이라는 찰나와도 같은 짧디짧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어슴푸레 윤곽만 보였다. 출입문이 선자령을 마주보는 까닭에, 하오의 역광을 받은 그의 모습은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직 개점준비가 덜된 터라 되돌려 보내려 했으나, 벽면을 빼곡히 채운 음반을 보고 경탄하며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에 얼설픈 청소를 마치고 그를 맞았다. 그는 엉덩이를 채 붙이기도 전에 영화를 만나라는 노래가 있느냐고 물었다. 목이 무척 타는 것 같았다. 수분부족에서 오는 갈증이 아니라 영화를 만나에 대한 목마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짐짓 아끼는 음악일수록 호흡을 가다듬고 들어야지 감동이 배가됩니다.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양 목소리를 깔며 그에게 맥주부터 한 잔 권했다. 그는 그동안 강릉은 여러 차례 다녀가서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았기에 이제는 강릉의 속살을 보고 싶다하였다. 택시를 몇 번씩 갈아타가며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헤매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을 발견하여 행운이라며 흡족해했다. 그의 호흡이 진정되는 것 같고, 약간의 알코올기도 도는 것 같아 나는 예고 없이 사월과 오월의 영화를 만나를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노래가 시작되자 그는 말문을 닫더니 첫 소절이 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