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며칠 전 음악선배 한 사람이 이 칠칠치 못한 후배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지명도가 낮지만 한 때는 내로라하는 유명밴드를 두루 거친 보컬리스트였다.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의 습성을 알고 있는 터라 자동차로 묵호등대를 찾았다. 등대 앞 광장에서 내려다보면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는 이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선배 역시 가슴을 활짝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흡족해했다. 뒤이어 우리는 동해 조망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등대전망대에 올랐다. 파도는 암전하여 간간이 밀려오는 잔물결은 학의 깃털이 날리는 양 평화로웠다. 동해항으로 들어가는 대형화물선도 장난감처럼 작아 보이고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여객선 꽁무니를 갈매기들이 떼 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일까. 영화의 한 장면일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다가 그 선배의 표정을 살피니 의외로 그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싶어 서둘러 내려오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선형 계단에 접어들자 식은땀을 소나기처럼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부축하여 한참 만에 내려오니 그는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금당산이 숨을 크게 한 번 내뱉으니 청량함이 골 안 구석구석을 휘돌고 나간다. 머리 위에선 구름들이 소곤거리고 계곡 바위에선 물이끼 돋는 소리가 사르륵 사르륵 들려온다. 산수유 봉오리가 즐탁하여 병아리 떼가 나뭇가지에서 삐악거리고 떼죽나무 잎은 벌써 회돌이모양으로 삐치고 나왔다. 산사의 아침은 늦게 시작되지만 낮은 빨리 시작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마치고 요사 채 앞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화사한 봄볕에 승복이 하얗게 보인다. 햇살이 가닥가닥 빨래에 부딪쳐 입자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알갱이가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노 주지는 오수에 빠져 이미 삼사라를 떠나 코고는 소리가 대고 거죽을 어르고 운판을 치더니 범종 속을 맴돈다. 낚시 줄에 알밤을 꿰어 다람쥐와 꾀를 겨루는 장 처사 입에선 능글맞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그렇게 고즈넉한 오전이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알록달록한 꽃잎 몇 장이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 이 사장 네구나 당구풍월이라더니 장처사도 신통력이 생겼는지 어떻게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을 알아볼까? 저, 매 바위로 가는 길이 험하다고 하던데 안내 좀 해주실래요? 점심공양 후 뻐근한 허리를 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눈이 부시다. 안과에서 동공촬영 한 만큼이나 눈이 부시다. 내 눈이 부신 건 눈(雪) 때문만은 아니다. 이 눈부심은 마음의 눈부심이다. 기다리던 님이 기척 없이 다가와 등 뒤에서 껴안듯 짜릿한 눈부심이다.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던 겨울이 봄에게 꼬리를 밟혔기 때문이다. 좔좔좔 눈 녹은 물이 얼음을 이고 시내를 흥건히 적신다. 겨우내 물 한 방울 없던 수중보에도 시냇물이 넘쳐 북평 앞바다에서 올라온 황어들이 용솟음친다. 왜가리 날개 짓에도 힘이 실렸다. 기록적인 폭설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그친지 열흘이나 지났는데도 전천 산책로에는 무릎을 넘는 눈이 그대로이다. 상류 쪽은 사람은 커녕 짐승조차 지나간 흔적 없이 설원을 이루고 있다. 시(市) 당국의 무관심 덕택에 처녀설을 밟는 우수리까지 챙기는 운 좋은 날이다. 나는 어릿광대가 되어 새끼노루처럼 겅중겅중 뛰어본다. 중년 나이에 이렇게 촐싹거린다고 벌금 매기는 것도 아닐 테고 설령 매긴들 어떠랴! 취병산 너머로 남풍이 불어오는 오늘, 허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이렇게 첫 봄을 맞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은 인품이란 말처럼 박인희처럼 외모와 행동거지가 일치되는 사람도 흔치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악들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온다. 도치 알집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음악 가운데 대중음악이 숫자 면에서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사랑노래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까? 어떤 이는 군사정권시절에 존재했던 사전검열제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사랑 이외의 노래, 예를 들어 친구라든가 아침이슬, 물좀주소 같은 노래들은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금지곡으로 묶어버리니, 아예 시빗거리를 피하기 위해 사랑타령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이긴 하나 사랑노래가 많은 건 비단 우리뿐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고 보면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군사정권의 대명사인 제3공화국 시절에 왜색, 비탄조의 사랑타령은 국민에게 활력을 주지 못한다 하여 탄압을 가했던 사실을 돌이키면 더욱 그렇다. 또 다른 이는 사랑의 다양성을 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 감정 중 가장 가치가 큰 것으로, 동서는 물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쉽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보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우리네 인생은 내일에 속으며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내일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하지만 내일이 오늘이 되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도 우리는 내일에 기대를 걸고 또 다시 속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아직 그럴 능력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복술에 기대어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점술은 토정비결과 사주로 둘 다 사람이 태어난 때를 기본정보로 하여 점을 친다. 사주는 인간을 하나의 집으로 보고 태어난 년 월 일 시를 네 개의 기둥이라 여겨 사주(四柱)라 한다. 그 사주를 간지로 바꾸면 여덟 글자이기 때문에 팔자라 한다. 토정비결은 사주에서 시(時)를 뺀 세 기둥을 바탕으로 하여 주역의 64괘중 48괘를 풀어 점을 친다. 그런데 사주건 토정비결이건 시간이 언제 시작되었느냐를 알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시간의 시작과, 우주가 태어난 날은 고사하더라도 지구가 생겨난 날 정도는 알아야 사람의 생년월일을 입력시켜 운세를 점칠 것이 아닌가? 비단 사주와 토정비결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점술은 다 마찬가지이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 칼럼니스트]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가수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에서 그나마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하는 가수가 있는 반면,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가수가 훨씬 더 많다. 거기에서도 정상의 꿀맛을 본 가수는 극소수이고, 그들 중에서도 인기와 존경을 함께 얻은 가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오늘은 그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레이 찰스를 추억한다. 타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범죄자가 자의식에 눈을 뜨고 점차 자아를 완성해나가는 인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한 현상이 유독 심한 우리나라는 전과자라면 무조건 백안시했다. 필자 역시 그러한 편향적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다. 하지만 문턱이 닳도록 교도소를 드나들던 사람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순화하고 마침내는 훌륭한 인격체를 이루어낸 사례들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레이 찰스, 자니 캐시, 멀 해거드로 필자의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이다. 특히 레이는 인종차별 철폐운동을 이끌며 존경을 받았다. 2004년 6월 10일 세상을 뜬 레이 찰스는 1930년 조지아주 노동자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공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아 보였다. 어느 청년 기업가의 성공 신화가 입 바람을 타고 떠돌았으나 귀 밖에 머물렀다. 바다 건너에서 전해지는 올림픽 승전보에도 환호하지 못했다. 동물적 투쟁본능의 잔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우중(愚衆)으로만 보였다. 승자와 패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분구도 현실은 더욱 경멸스러웠다.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을 구하다 무력감을 감당치 못해 자학에 빠져 있었다. 유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친구 화실을 찾았다. 좁은 공간에서 풍기는 테레핀 냄새가 화실 밖까지 진동했다. 가난뱅이 딴따라와 환쟁이. 그래도 우린 신기하리만치 밥은 굶어도 술은 안 굶었다. 루핑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릴 들으며 소주잔에 허무를 타서 마셨다. 진아(眞我)라는 명제로 논쟁을 하다 아메바와 에테르를 들먹이기도 하고, 생명의 기원을 찾느라 우주도래설을 논하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선언했다. “나 오늘 유서 썼다. 술 마시다 죽던가, 참된 나를 찾아 떠나던가!” 그리고 다음날 나는 산사 행 버스에 몸을 실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부부의 연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 까닭인지 연인들 가운데 부부의 인연을 맺지 못한 채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쌍들도 많다. 사실 생면부지의 남녀가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각기 다르게 형성된 성격을 맞추어 간다는 게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인가?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기에 헤어짐도 어려웠지만, 요즘은 만나기가 쉬워진 탓인지 헤어짐도 쉬운 것 같다.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剛愎)해진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사고와 가치관이 자신과 다르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자신만이 옳다고 우기고 융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 이기와 독선이 남녀관계라고 다를 바 없어 상충을 거듭하다가 마침내는 결별을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 차이로 헤어지는 경우에는 그래도 마음에 상처가 덜 남는다. 둘 사이의 마음이 잘 맞고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라 할지라도, 부부의 연이 닿질 않아 아픈 이별을 해야 하는 연인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런 경우엔 평생 쓰라림을 달래며 살아가야 한다. 전생에서 수백 번의 인연을 쌓아야 부부가 된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기억 하나요? 한 섬 들목의 바다 새라는 커피숍을. 창문엔 늘 두툼한 커튼 자락이 반쯤 내려져 있고, 희뿌연 전구들이 바닷바람에 한들한들 졸고 있는 그 커피숍을. 손님의 그림자조차 보기 힘든 그 적막한 커피숍을 지나면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산책길이 시작되지요. 오른쪽에는 푸른 바다가 하늘만큼 펼쳐져 있고 왼쪽 언덕에는 해송들이 빼곡한 길. 그 길을 걸으면 비릿한 미역냄새가 나기도 하고 풋풋한 들풀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냄새가. 인적 없는 숲길은 간밤에 내린 겨울비로 처녀림 같은 신비감마저 돌고, 마른 잎 몇이 나뭇가지 끝에서 풍경처럼 간당입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수없이 많은 대화를 눈빛으로 나누었고, 대화의 마지막은 늘 이런 약속이었지요. 그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 내자는. 한순간도 떨어지지 말자는. 같은 날 같은 배를 타고 영원의 항해를 떠나자는. 알고 있나요? 그때 그 길은 지금 나 혼자 걷고 있다는 것을. 밀리는 파도도, 세찬 비바람도 씻어내지 못한 당신과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되짚으며 걷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떠나간 지 어느 덧 다섯 해가 흘렀네요.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현경과 영애 음반 표지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가지엔 눈꽃이 폈네요 참 예쁘네요 간밤에 흰눈이 왔어요 가지엔 눈꽃이 폈네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모두 다 즐거운 노래를 다같이 노래를 불러요 참 예쁘네요 참 예쁘네요 가운데서 강원도 산골의 겨울은 유난히 길다. 예전에는 더욱 그랬다. 동짓달이면 벌써 외부세계와 왕래가 단절되는 마을이 수두룩하였다. 강원도의 눈은 내렸다하면 한 길이 넘기가 일쑤였다. 이듬해 봄까지 꼼짝없이 마을 안에 갇혀 겨울을 나야 했다. 남정네들은 새끼를 꼬거나 돗자리 짜기, 소쿠리 만들기로 하루를 보냈다. 어쩌다 무리지어 나가는 사냥은 비길 데 없이 재미있는 놀이였다. 아낙네들은 엿을 고거나 콩나물을 기르며 명절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단조로운 산골마을에 어쩌다 이야기꾼이라도 찾아들면 마을사람들은 반색으로 모셨다.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이야기꾼의 존재는 오늘날로 치면 저널리스트요, 만능 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