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호 지난 겨울엔 음반 표지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 칼럼리스트] 전설인줄 알았다. 픽션 같기도 하고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 되기도 했다. 그날의 하늘은 예리한 칼날에 베여 벌어진 쌀부대처럼 이팝꽃 송이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태엽이 조여졌다. 시간도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모든 게 앞당겨졌다. 택시부 광장엔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인적이 끊겼다. 조금 전 아베크 한 쌍이 말똥가리가 되어 이팝꽃덩이를 굴리다 뽀르르 사라진 게 인간이 남긴 마지막 잔영이었다. 해일처럼 내리붓는 이팝꽃은 금방 발등을 덮고 무릎을 넘더니 축시를 지나자 빨간 우체통마저 절반이나 묻어 버렸다. 세상이 두꺼운 이팝꽃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 때 나는 고적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이층 카페에 홀로 남아 있었다. 턴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김정호가 살아있었고, 마른멸치 몇 마리를 안주삼아 나의 소망대로 이팝꽃 더미에 묻혀갔다. 까가각 ! 강물 얼 때 얼음 갈라지는 소리처럼 쩡쩡한 까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부비니, 아침햇살이 퇴락의 공간을 환등기처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수돗물 한사발로 사포 같은 혓바닥을 축이며 내다본 창밖 풍경은 양화점 지붕이며 약국 옥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그냥 내버려 두라는 뜻의 불어 레세 페르(laissez faire)는, 18세기 후반 중상주의(重商主義)에 반기를 든 중농주의(重農主義)자들이 각종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그 뒤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경제이론에 인용하면서 자유방임주의 라는 개념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미스는 그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에서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지 않으면 생산과 교환, 분배가 원활한 조절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론이 고도로 복잡다양화 된 현대사회에서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지만, 시장경제뿐 아니라 법률과 제도가 단순한 사회일수록 살기 좋은 세상임에는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군주의 최고덕목은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내 먹으니 임금의 은혜가 무엇이던고?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널리 불리었다는 격양가다. 백성들은 임금의 은혜조차 잊을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간소한 법제도 덕택이었다. 나라는 그동안 법률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를 양산하여 경제활동을 통제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아담 스미스의 이론에 한 번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한때는 전통 차의 반격으로 주춤하던 커피의 인기가, 요즈음 시가지를 걷다보면 두 집 건너 커피점문점이 들어설 정도로 재 반격에 성공한 느낌이다. 아니 이젠 커피가 도심을 점령한 꼴이다. 6세기경부터 이슬람수도승들의 음료로 애용되던 커피가 이젠 전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가 언제부터 우리의 입맛을 그렇게 사로잡았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커피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1895년 아관파천당시 아라사공사관에 피신한 고종황제가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커피 맛을 보았다한다. 그 후 고종은 경운궁에다 아예 정관헌(靜觀軒)이란 다과공간을 짓고 그 곳에서 커피를 즐기며 음악 감상을 하였다. 그 즈음 생겨나기 시작한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당연히 커피를 판매 하였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이거나 고관대작을 대상으로 한 것 일뿐 아직 일반대중들은 언감생심이었다. 커피가 대중의 품으로 들어온 건 1920년대 들어서이다. 후다미라는 곳을 효시로 다방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다방을 하나쯤 여는 걸 커다란 자랑으로 여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우리 국토의 면적은 99,720㎢로 이웃 중국(9,596,961㎢)이나 미국(9,826,675㎢)에 견주면 약 100분의 1 정도이고, 일본(377,915㎢)과 비교해도 3분의1 정도밖엔 안 된다. 똑같이 나눈다면 국민 한 사람당 약 666평쯤 가질 수 있다. 면적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109위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다. 그 좁은 나라에 태어나 반백이 되도록 살면서, 아직 우리나라도 못 가본 곳이 더 많은 필자이기에 세상의 태양은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태양과 정열의 나라라 불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태양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햇볕이 얼마나 강렬한지 마치 주삿바늘에 찔리는 듯 따끔거렸다. 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돌아 다녔는데 그쪽은 남부에 자리 잡아 더 뜨거웠다. 선글라스 없인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자외선 차단크림도 무용지물이었다. 대리석을 깔아놓은 인도는 복사열로 인해 숯불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골목골목 구석구석 배어 있는 역사의 숨결이 모든 육체적 고통을 씻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스페인은 각 지방마다 독특한 지역 색을 지니고 있는데 안달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학년이 바뀌고 처음 맞는 조회시간 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방학 동안에 학생들이 얼마나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웠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작위로 몇 명을 지목하여 교단으로 불러올리셨다. 두 번째 학생이 막 외우기 시작 할 무렵 갑자기 머릿속에서 윙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내가 지구의 자전을 따라가지 못 했는지 아니면 역회전을 하였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잠깐의 우주유영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였을 땐 나는 급우들에 의해 나무 밑으로 옮겨져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내게 물을 먹이고 계셨다. 조회가 끝나자 담임께서는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데리고 가서 얼음처럼 차가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기도 좀 먹고 과일도 먹어야 할 텐데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쉬어.하며 조퇴를 하라고 하셨다. 3월 초라고는 하지만 봄이 일찍 찾아와 벌써 개나리가 노란 물감을 입안에 머금었고 아스팔트엔 아지랑이가 하늘거렸다. 어지럼증 여파로 가로수에 기대어 있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스에 오른 나는 눈이 얼음판에 자빠진 소 눈만큼 휘둥그레졌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이 비 그치면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 짙어오것다 이수복 시인은 왜 풀빛이 서럽다고 읊었는지 모르겠으나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서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착 가라앉고 우울해 지는 건 사실 인 것 같다. 착잡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창밖 화초에 맺힌 빗방울이 바람에 흩어졌다 다시 맺히는 그 순간에도 기억의 편린들로 제작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지금이야 흔한 게 우산이지만 1960년대와 70년대엔 비닐우산도 귀했다. 그 시절엔 보슬비 정도는 맞으며 걸어가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우산을 든 사람은 비를 맞고 가는 사람에게 우산 씌워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 했었다. 그때 나는 귀밑솜털이 채 벗겨지지 않은 중학생이었다. 벚꽃낙화가 거리를 하얗게 색칠하던 봄비 내리는 날, 난생처음 사랑의 열병이란 걸 경험하게 된다. 하교 길에 버스에서 내린 나는 우산이 없어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돌아보니 내가 가끔 들르던 문방구집 딸이었고 그녀는 이미 여고생이었다. 심장은 마구 뛰었고 머릿속은 텅 빈 듯하였다. 한 가지 분명한건 그녀는 자기 집을 훨씬 지나쳐 우리 집까지 나를